[미디어스=김혜인 기자] 여성 기자가 남성 기자보다 디지털 괴롭힘에 많이 노출됐으며 직접적인 위협을 넘어 기자직 포기(이직)로 이어지기도 한다. 박아란 한국언론진흥재단 책임연구원이 언론인 404명을 대상으로 디지털 괴롭힘 실태를 파악하는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10월 29일 한국언론진흥재단 2021년 저널리즘주간 컨퍼런스에서 결과를 소개했다.

(자료제공=박아란 한국언론진흥재단 책임연구원)

‘디지털 괴롭힘의 유형’은 주로 ▲공격적, 모욕적 언어 ▲반복적 댓글달기 ▲명백한 욕설 ▲기자 개인정보나 기사 박제 ▲위협적 표현 등이다. 디지털 괴롭힘은 평기자가 부장급보다 경험 빈도가 높았다. 평기자는 이름과 이메일을 밝히고 기사를 작성하는 반면, 데스크는 온라인 노출이 적기 때문이다. 언론사의 정치적 성향이나 신문사·방송사에 따른 괴롭힘의 경험 정도는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박 연구원은 “진보, 보수 성향 상관없이 동일하게 디지털 괴롭힘에 노출돼 있다"고 말했다.

성별에 따라 디지털 괴롭힘의 정도가 달랐다. ‘외모 공격’을 당한 경험을 밝힌 여성은 62.5%, 남성은 47.1%였고, ‘성희롱적 발언’을 들을 여성은 76.5%, 남성은 40.2%였다. ‘음란문자와 사진’을 받은 여성은 12.0%, 남성은 8.8%였다. 여성기자의 경우, 심리적 외상은 물론 이직으로 연결되는 상관관계를 보였다.

괴롭힘의 경로는 댓글, 이메일, 소셜미디어, 특정 사이트나 커뮤니티, 전화 순이었다. 괴롭힘이 나타나는 기사 주제는 사회적 갈등이슈, 정파적 이슈, 특정집단 관련 이슈, 기사 주제와 무관하거나 젠더이슈 순이었다. 괴롭힘 이유에 대한 인식은 ‘기사 방향이 마음에 들지 않음’, ‘정치적 성향과 맞지 않음’, ‘이해관계와 어긋남’, ‘소속 언론사를 싫어함’ 순으로 나타났다.

디지털 괴롭힘이 기자 심리에 미치는 영향은 ‘부당한 댓글에 화가남’, ‘기자 업무에 회의가 듬’, ‘댓글을 자주 읽지 않음’, ‘성별/얼굴을 숨기고 싶음’ 등이다. 괴롭힘에 대한 대처는 ‘선배·동료에게 알림’, ‘회사에 보고’, ‘전문가 상담’, ‘경찰에 신고’ 순이었다.

(자료제공=박아란 한국언론진흥재단 책임연구원)

심층 인터뷰에서 경제지 A기자는 “비난성 댓글은 일상적이다. 주로 기사 내용이 기업 광고처럼 보인다는 이유, 기업 주가에 부정적이라는 이유, 특정 정당에 호의적이지 않다는 이유가 가장 많았다”고 밝혔다. 일간지 L기자는 “특정 정치인에 대한 기사를 쓴 뒤 각종 커뮤니티에 기사와 함께 욕하는 댓글이 달렸고 메일주소가 공유됐다. 쉽게 검색되는 증명사진뿐 아니라 인턴기자 시절 소감문, 대학생 때 사진, 출신학교와 동아리까지도 모두 커뮤니티에 공개되며 조롱의 대상이 됐다. 지인들 사진도 모자이크 없이 올려놨다”고 말했다.

여성 기자의 경우 디지털 괴롭힘이 직접적인 위협으로 이어졌다. 일간지 F기자는 “특정 사건을 다룬 뒤 관련 업체에서 온라인에 신상정보를 공개하며 협박해 퇴근 시간에 맞춰 가족이 회사로 마중나왔다”고 했다. 일간지 G기자는 “네이버 페이지에 기자 사진이 들어가기 때문에 외모 평가나 성희롱 발언을 자주 접한다. 젠더 기사를 쓸 때 주저되고, 같은 기사라도 남성이 써야 신뢰도를 더 얻는다는 점에서 좌절을 느낀다”고 했다. 전문지 H기자는 “젠더 관련 이슈를 최대한 피해서 기사를 쓰려고 하는 제 모습을 발견한다”고 말했다.

무대응이 대부분이었다. 종합편성채널 K기자는 “회사의 지원이 부족하고 대응할 여유나 시간을 주지 않아 SNS 계정을 폐쇄했다”고 말했고 전문지 H기자는 “댓글란에 접근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일간지 L기자는 “팀장이나 선배들에게 이야기했지만 대체로 제가 예민하다는 반응이 나온 뒤 회사에 얘기하지 않는다”고 했다. 기자들은 괴롭힘에 필요한 조치로 심리상담 지원, 기자협회나 언론진흥재단 차원의 법률서비스 제공, 법률서비스 제공이나 심리치료를 권장하는 분위기 등을 원한다고 답했다.

박아란 연구원은 “언론의 신뢰회복과 저널리즘 품질 제고를 위한 노력이 반드시 따라야만 괴롭힘이 줄어들 수 있다”며 “독자들도 댓글이나 이메일을 통한 의견표출이 정당한 범위를 벗어날 경우 위법성이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공유할 경우 초상권 및 사생활 침해에 해당된다”고 지적했다.

박 연구원은 “기자 답변 중에 ‘팩트에 기반한 비난은 도움이 된다’, ‘공격받지 않기 위해 팩트를 꼼꼼히 챙긴다’는 응답이 높은 것을 보면, 사실에 기반을 둔 비판의 경우 언론에 도움이 되며 언론인도 이를 수용할 의사가 있음을 알 수 있어 언론과 이용자 간의 건설적 피드백과 커뮤니케이션의 선순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설문조사는 7월 21일부터 8월 15일까지 언론인 404명 (남성 204명, 여성 2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응답자들은 신문사 268명(66.5%), 방송사 66명(16.3%), 통신사 37명(9.2%), 인터넷 언론사 33명(8.2%), 연령별로는 20대 29명(7.2%), 30대 212명(52.3%), 40대 이상 163명(40.3%)이다. 직급별로는 평기자 299명(56.7%), 차장급 113명(28%), 부장급 이상 62명(15.3%)이 응답했다. 해당 조사 결과를 정리한 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서 <언론인과 디지털 괴롭힘>은 12월 발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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