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축구에서 참 아름다웠던 은퇴 경기를 꼽는다면 2008년 9월 있었던 독일의 전설적인 수문장 올리버 칸의 은퇴 경기였습니다. 당시 올리버 칸의 소속팀이었던 바이에른 뮌헨과 독일 축구대표팀 간 경기로 치러진 이 경기는 칸의 공적을 높이 기리기 위해 뮌헨과 독일축구협회가 한마음 한 뜻으로 은퇴 경기 추진을 결정, 독일 축구팬들의 높은 관심을 끌어냈습니다.

뮌헨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치러진 이 은퇴 경기에서 칸은 75분간 뮌헨 골문을 지켰고, 1-1 무승부를 이끌어내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플레이를 펼쳤습니다. 그리고 교체를 알리는 휘슬이 울러퍼진 후반 30분, 독일 축구 뿐 아니라 세계 축구계에도 길이 남을 '아름다운 10분'이 선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관련 영상: http://www.youtube.com/watch?v=L-dQv7Ek9NA ) 갑자기 경기장 조명이 어두워지고 'A Time to Say Goodbye'가 울려 퍼지면서 6만 9천여 관중과 모든 선수들이 기립해 단 한 선수만을 위한 박수와 응원을 보낸 것입니다. '천하의' 칸조차 "지금이 내 축구 인생에서 가장 훌륭한 순간"이라면서 화답했고, 홀로 눈물을 글썽였을 정도로 이 장면은 아름다움과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선수와 선후배, 코칭스태프, 축구인, 축구팬 모두가 한 마음이 돼서 한 선수를 아름답게 보낸 최고의 순간이었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영웅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몸소 보여준 독일인들이었습니다.

기억남을 은퇴 경기, 이제는 많아져야 한다

이렇게 한 선수만을 위해 특별한 은퇴 경기를 치르는 것은 사실 매우 어려운 면이 많습니다. 활약상이 엄청나고 큰 공적을 지닌 선수들조차도 특정한 날을 잡아 은퇴 경기를 치르는 것이 드물 정도입니다. 그렇기에 이런 은퇴 경기는 선수 개인에게 매우 영예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이렇게 특별한 은퇴 경기를 치른 적은 있습니다. 1999년 11월, 부산 대우에서 은퇴한 김주성(현 대한축구협회 사무총장)이 자신의 고향인 강원 속초에서 K리그 올스타-부산 경기로 치러진 것이 유일했습니다. 대부분 클럽별로 시즌 마지막 경기를 은퇴 경기로 정해 치르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국가대표 선수로는 이운재(전남 드래곤즈)가 지난 2010년 8월, 나이지리아와의 A매치를 은퇴 경기로 정해 전반을 뛴 뒤 간단한 은퇴 행사와 은퇴식을 벌인 정도가 큰 행사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물론 국가대표 선수 가운데 자격 요건이 갖춰지면 특정한 날을 지정해 전반 하프타임에 은퇴식을 치러주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기억에 남을 축구 선수 은퇴 경기가 많지 않은 것은 참 불행한 일입니다. 한국 축구를 위해, 또 많은 팬들을 위해 최선을 다한 선수였다면 마지막도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야 마땅합니다. 자격이 있고, 충분히 그럴 만 한 공감대가 있다면 당연히 치러져야 합니다. 그러나 '전설의 선수들'이 그에 걸맞은 은퇴 경기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선수 생활을 마치는 사례가 계속 생겨났습니다.

특히 은퇴 경기가 부담스럽다며 본인이 고사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간단하게 은퇴식만 치르고 선수 은퇴를 했습니다. 그러나 '화려한 마무리'는 분명 또 다른 후배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습니다. 또 팬문화, 축구 문화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공감대만 있다면 충분히 이런 은퇴 경기가 새로운 축구문화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부산 아이파크에서 뛰었을 당시 안정환 (사진: 부산 아이파크 구단 홈페이지)
안정환은 충분히 은퇴경기 받을 자격 있다

지난달 31일, 현역 선수 은퇴를 공식 선언한 '판타지스타' 안정환이 자신을 위한 은퇴 경기를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안정환은 "(은퇴) 경기를 뛰고 싶지만 지금 시점이 한국 축구에 굉장히 중요한 순간이다. 개인적인 바람 때문에 중요한 대표팀의 경기를 앞두고 (은퇴 경기를) 한다는 것은 한국 축구 발전에 해가 되는 것 같은 생각"이라면서 은퇴 경기 거절의 뜻을 밝혔습니다. 대한축구협회 차원에서 제안이 이뤄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현재로서는 안정환 스스로 시의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본선 진출을 확정지은 이후에 또 한 번 제안이 들어온다면 생각해보겠다는 뜻을 보이며 가능성을 열어뒀습니다. 일단 조건을 달아놓은 상황이지만 공감대도 형성됐고, 본인의 의지도 있는 만큼 화려한 은퇴 경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습니다.

안정환은 충분히 '특별한 은퇴 경기'를 받을 자격이 있는 선수입니다. 두 차례 월드컵에서 결정적인 순간마다 한국 축구의 쾌거를 이뤄낸 주인공이 그였습니다. 여러 나라를 전전하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14년 프로 생활을 했던 그의 발자취는 후배 선수들에 귀감이 될 만한 면모를 보였습니다. 그랬던 그에게 동료 축구인들과 그를 응원했던 축구팬들에게 영예로운 행사를 자발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꼭 이뤄져야 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방법은 여러 가지, 새로운 축구 문화를 만들어보자

은퇴 경기를 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일단 한일월드컵 10주년 기념행사로 국가대표팀과 올림픽팀 경기, 또는 현 국가대표팀과 2002 레전드팀 이벤트 경기로 치를 수 있습니다. 국가대표팀이 여의치 않다면 K리그 올스타전을 통해 K리그 올스타-부산 아이파크 식으로 경기를 치러도 괜찮은 그림이 될 수 있습니다. 안정환이 처음 선수 생활을 시작해 최우수선수(MVP)도 받았던 팀 부산과 오늘날의 안정환이 있기까지 가장 큰 경험을 줬던 국가대표팀이 꼭 매치에 들어간다면 더없이 안정환에게 의미 있는 은퇴 경기가 될 것입니다. 올리버 칸의 은퇴 경기처럼 말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안정환의 은퇴 경기는 치러져야 합니다. 소속팀 없이 은퇴했다 해서 무조건 짧게 국가대표 은퇴식만 치르고 마는 것은 산전수전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최고의 선수 생활을 했던 안정환의 업적을 욕되게 하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안정환이 은퇴 기자회견에서 단 조건처럼 오는 29일 열리는 쿠웨이트와의 월드컵 3차예선 경기를 잘 치른다면 축구계 전체적으로 안정환을 위한, 혹 이것이 힘들다면 2002년 월드컵 10주년을 기념해 당시 4강 신화를 이뤘던 선수 전체를 위한 기념 경기를 꼭 추진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는 은퇴한 축구인들, 현역 선수들, 그리고 모든 팬들을 위한 엄청난 '빅이벤트'가 될 것이며, 은퇴한 선수를 존중하고 업적을 기리면서 우리 축구 문화에도 적지 않은 기여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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