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언론사 내부 세대갈등, 젠더갈등이 표면화되고 있다. 저연차 기자들이 언론을 떠나 다른 업계로 이직하는 사례도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3년차, 5년차, 18년차, 퇴직한 29년차 기자가 머리를 맞대고 언론사 내부의 민주주의를 진단했다.

29일 열린 한국언론진흥재단 2021년 저널리즘주간 컨퍼런스 ‘다시, 저널리즘’에서 이희정 한국일보 기자가 ‘뉴스룸 민주주의’라는 주제로 보도국 내 다양성을 짚었다. 이 기자는 지난해 6월 29년간의 기자 생활을 끝으로 한국일보를 퇴사했다.

29일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주최한 '2021년 저널리즘주간 컨퍼런스'의 '뉴스룸 민주주의' 세션 (사진=한국언론진흥재단 유튜브 채널)

이 전 기자는 ‘뉴스룸 민주주의’가 정착되기 위해 ▲조직 인력 구성의 다양성 ▲다른 목소리를 허용하고 치열한 논쟁을 통해 합의를 끌어내는 포용적 문화 ▲제도적 장치와 선순환 구조 ▲이를 지속하게 만드는 리더십이 뉴스룸 내부에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오래전부터 언론계에는 언론조직 내 다양성(Diversity), 공정성(Equity), 포용성(Inclusion)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마감시간 압박, 효율성을 앞세운 상명하복식 기사 생산 구조 등에 밀려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뉴욕타임스의 경우, 2017년 발간한 <2020 그룹 보고서>에서 구성원의 다양성 확보에 주력하겠다고 밝힌 뒤 매년 <다양성과 포용> 보고서를 통해 점검하고 있다. 이를 통해 2020년 현재 간부를 포함해 전제 직원 중 여성이 52%, 22~37세 직원이 전체의 49%를 차지했다. 인종 다양성 역시 2015년에는 백인이 73%였다면 2020년에는 63%로 줄었고 유색인종은 27%에서 33%로 늘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는 “유색인종 간부는 부족”하다는 판단하에 2025년까지 흑인과 라틴계를 50%로 늘리기로 결정했다.

뉴욕타임스의 2020년 '다양성과 포용' 보고서 (자료제공=이희정 기자)

한국 언론은 변화가 더디다. 한국기자협회가 지난해 1월 조사한 결과, 신문기자 96% 이상이 대졸자 이상의 학력을 가졌고, 뉴스 정보원의 55%가 50~69세였다. 여성 기자 수가 늘었다고 하지만 2019년 국내 여기자 성비는 29.1%에 그쳤다. 여성기자 보직 현황을 다룬 ’2021 여기자‘ 기사의 첫 문장은 “2019년에 비해 의미 있는 진전은 확인할 수 없었다”로 여 기자의 고위직 발탁은 일부 언론사에 그쳤다.

세대갈등 문제 역시 심각하다. 이 기자는 수집한 15년 차 이하 기자들의 다양한 원성을 전했다. “언론사 중년남성 기득권의 인식이 박물관에 갖다놔야 할 만큼 낡디 낡았다. 더 심각한 건 스스로가 낡았다는 걸 알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나라 걱정, 세상 걱정에 과몰입해 정작 우리의 미래는 걱정하지 않는다”, “현장 기자들도 출입처를 통해 동기화돼 ‘A신문, B방송은 더 해’ 식으로 서로가 서로의 면죄부가 되고 있다” 등이다.

29년 차 김영희 한겨레 문화부 선임기자는 언론사 내부에 민주주의 정착을 위해서는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기자는 “뉴욕타임스는 더 많은 사람의 공감을 일으킬 보도와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 보고서를 쓰는 등 인위적으로 내부 구성원의 변화를 꾀하는데 한국 언론은 왜 변화해야 하는지 모르는데다 문제가 그저 수습 기자 채용 시스템에 있다고 본다”고 꼬집었다.

김 기자는 “내부에서는 과거부터 같은 방식으로 사람을 뽑는데 과거와는 다른 애들이 들어왔다고 느끼는 것 같다”며 “세대 갈등으로 문제가 발생하거나 성명이 나왔을 때 제도나 시스템을 바꾸자고 하기보다는 큰소리가 나면 안 된다는 식의 미봉책 관리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이어 “언론이 독자층의 니즈를 잘 파악하지 못하는 것도 원인”이라며 “우리의 콘텐츠 변화가 독자에게 잘 전달되는지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 막연하게 우리가 올바르고 민주적이라고 생각한 가치를 쓰면 모든 사람들이 좋아할 줄 알았는데 독자층이 다양해지고 서로가 말하는 진실이 달라지다 보니 언론계가 뒤늦게 이를 알아차리고 당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뉴스룸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못하는 다양한 이유

3년차 한성희 SBS 보도본부 사회부 시민사회팀 기자는 엘리트 위주의 기자 구성을 지적했다. 한 기자는 “편집국이나 보도국 인적구성이 다양하지 않다. 우선 출신 대학들이 모두 비슷해 또래 기자들을 만나면 대화 주제, 주장이 비슷하다보니 기사도 동일한 사건만 다루게 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 기자는 “구글의 ‘다양성 보고서’에 따르면 인종, 성별, 성적 정체성뿐 아니라 다양한 배경을 가진 구성원이 모인 기업이 경제적 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게 입증된 바 있다”며 “뉴욕타임스 등 해외 언론과 비교하면 우리나라 언론 구성은 다양해질 필요가 있다. 언론사 인적 구성의 다양화는 시청자와 독자에게도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5년 차 최미랑 경향신문 뉴콘텐츠팀 기자는 하루빨리 기자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신문사의 경우 기자를 제외한 개발자, 디자이너, PD 인력은 비주류에 해당되는데 이들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최 기자는 “옛날에는 기자가 기사만 잘 쓰면 됐지만 이제는 독자들이 원하는 다양한 방식의 콘텐츠를 제공해야 하기에 이를 구현해주는 PD, 개발자, 디자이너가 없이는 아무것도 못한다”고 밝혔다. 최 기자는 이어 “PD를 채용해달라고 하면 윗분들은 시혜적인 측면으로 생각하는데, 이는 언론사 사활이 걸린 문제”라며 “저널리스트 마인드를 가진 PD와 개발자 수가 적은 데다 이들의 기피 직장은 언론사라서, 콘텐츠 제작자들이 보기에 언론이 매력적인 곳이 못 되면 언론은 도태되게 된다”고 경고했다.

18년 차인 위재천 KBS 디지털뉴스1부 팀장은 "사내에 투명하지 못한 소통구조가 시급한 문제가 아닌가 싶다"고 밝혔다. 위 기자는 "편집회의는 간부들이 들어가 결정하기에 일선 기자들이 아이템을 볼 수 없다"면서 "얼마 전 노태우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전하며 노태우 씨로 할 것인지 전 대통령으로 할 것인지 호칭 문제에 대한 논의가 내부에서 이뤄지지 않은 채 결정됐으며, 범죄피해자의 진술을 어디까지 신빙성 있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서로에게 생채기만 낸 채 뚜렷한 답없이 지나갔다"고 말했다.

어떻게 하면 바뀔 수 있을까

이희정 기자는 “경영·편집 리더십의 혁신이 가장 중요하다”며 “시작은 우리의 자화상부터 솔직하고 깊이 있게 들여다봐야 한다. 뉴욕타임스처럼 언론사별 <다양성과 포용 보고서> 발간을 정례화해 내부를 돌아보면 좋겠지만 개별 언론이 하긴 어려워 언론재단, 신문협회, 방송협회 등 언론관련 기관 단체들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최미랑 기자는 “소통데스크, 젠더데스크, 디지털부문 담당 등 기존 관성과 싸우기 위해 많은 일을 해야하는 자리에 혜택을 줬으면 좋겠다”며 “'해당 부서를 거쳐야만 국장을 갈 수 있다'던지, '디지털부서를 경험하지 않은 이는 국장이 될 수 없다' 등의 제약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한 최 기자는 지금의 채용시스템을 대체할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재천 기자는 “인적 구성의 다양성이 지적 다양성을 가져올 수 있다는 걸 믿는다”며 “보도국을 오픈해 소통이 자유롭게 하고, 지금은 내부구성원들만 편집회의에 참여할 수 있지만 가디언처럼 외부에 공개하는 수준으로 높이거나, 아니면 편집회의에 기자가 아닌 외부인이 함께 포함되는 방향으로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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