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산업은행(회장 이동걸)이 기자를 상대로 제기한 거액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기사를 작성한 게 해당 기자가 맞느냐'는 사실조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기자를 상대로 한 소송은 기사의 저작권이 회사에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성립될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산업은행 측은 기사 작성자를 확인하자는 동문서답식으로 대응했다.
지난해 11월 산업은행은 스포츠서울 권오철 기자를 상대로 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나섰다. 권 기자는 당시 <[취재석] 이동걸의 이상한 논리 "키코, 불완전판매 했으나 불완전 판매 아니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작성했는데 해당 칼럼이 허위사실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동걸 회장은 지난해 10월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키코는 불완전 판매가 아니다"라면서도 "가격정보를 제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권 기자는 "상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고도 불완전판매가 아니라는 이 회장의 논리는 '술을 마시고 운전을 했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라는 말과 동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썼다. 산업은행은 이 회장이 "불완전 판매했다"고 말한 적 없기 때문에 기사가 허위사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산업은행, 기자 '입막음 소송' 지적했더니 "기자가 쓴 기사 맞냐"
28일 미디어스 취재결과 산업은행은 스포츠서울에 해당 칼럼을 권 기자가 작성한 게 맞는지 사실조회를 요청했다. 산업은행이 요구한 사실조회사항은 ▲칼럼을 권 기자가 작성한 것인지 ▲칼럼 제목과 제목 수정은 누가 작성·결정했는지 ▲만약 권 기자가 작성한 것이 아니라면 누가 작성한 것인지 ▲스포츠서울 편집국장·부장·차장이 칼럼의 제목과 내용 중 어느 부분을 변경했는지 등이다.
또한 27일 열린 재판에서 산업은행은 기사 작성자와 관여자가 누구인지 확인한다는 취지의 사실조회를 스포츠서울 법인에 보내 답변을 독촉중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권 기자 법률대리인 조상규 변호사(법무법인 주원)는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산업은행이 사실조회를 신청하겠다고 법원에 얘기했을 때, 판사도 우리도 황당했다. 당연한 걸 사실조회했기 때문"이라며 "우리의 주장사실 중 하나는 미디어회사가 자기 명의로 내보낸, 저작권을 가지는 기사는 명의자(회사)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랬더니 이런 사실조회를 한다"고 전했다. 지난 6월 재판부 역시 언론사를 상대로 소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점을 산업은행에 질문한 바 있다.
조 변호사는 "기자가 썼다고 기사가 기자 것인가"라면서 "안해도 될 사실조회를 하고있다. 전형적인 보복성 소송, 봉쇄소송임을 자신들이 인정하고 있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조 변호사는 "형사고소나 언론중재위를 거치지도 않고 기자만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겁나서 기사 쓰겠나"라면서 "산업은행의 소송비용은 국민혈세다. 이런 막무가내식 민사소송은 국책은행이 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권 기자는 산업은행이 스포츠서울에 요청한 사실조회를 확인했다. 스포츠서울 박현진 편집국장은 사실관계확인서에서 "2020년 10월 18일자 <[취재석]이동걸의 이상한 논리 "키코, 불완전판매 했으나 불완전 판매 아니다"> 제목의 기사는 당시 본지 경제산업부 금융담당이었던 권오철 기자가 작성했고 부서장이었던 제가 데스크를 본 뒤 송고했다"고 밝혔다. 박 편집국장은 "이후 산업은행 측의 이의제기를 접수하고 직접 인용으로 오인할 수 있는 겹따옴표(“ ”)를 홑따옴표(‘ ’)로 수정했다"며 "이는 일상적인 기사 작성과 송고 과정으로 절차상 어떠한 하자도 없었다고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이동걸 회장, 국감에서 재판지연 지적받자 "기자가 지연시켜"
권 기자측은 이 회장의 국정감사 위증을 추가로 제기하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 15일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해당 재판이 지연되는 책임이 산업은행에 있다는 더불어민주당 이용우 의원 지적에 "저희가 지연시키고 있는 게 아니라 상대편 기자가 지연을 시켰다"고 발언했다.
그러나 산업은행측이 재판기일을 변경신청했다. 이 사건 재판 제출서류 접수내용과 기일내용을 보면, 재판기일 변경은 7월과 9월 두 차례 이뤄졌다. 7월은 코로나19 확산으로, 9월은 산업은행측 요청으로 기일변경이 이뤄져 이달 27일에 재판이 재개됐다. 조 변호사는 "우리가 쓴 준비서면에 대해 6개월동안 답변도 하지 않고 재판연기 신청까지 했다"며 "누가 재판을 연기한다는 건가"라고 따져 물었다.
"국가기관 산업은행, 이런 소송 계속되면 한국 언론자유 어떻게 되나"
민주당 이용우 의원은 산업은행의 이번 소송을 언론에 대한 전략적 봉쇄소송이라고 지적했다. 국정감사에서 이 의원은 산업은행이 국가기관인지 이 회장에게 물었고, 이 회장은 "국가기관이다"라고 답했다. 이어 이 의원은 "작년 국정감사 기사를 두고 손배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 판례를 보면 정부 또는 국가기관은 형법상 명예훼손죄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며 "판례에 의하면 성립하지 않을 소송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소송 주체인 원고는 산업은행이다. 만일 이 일로 패소했을 경우 그 책임을 명확히 해야할 것"이라며 "언론보도에 대한 봉쇄소송의 가능성을 심각하게 봐야한다. 이런 소송이 계속될 때 우리나라의 언론자유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고민해주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또 이 의원은 "칼럼의 제목은 데스크에서 잡는다. 기자를 대상으로 했을 때 이 소송의 과정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우려된다"며 "산업은행은 변론요지서를 내지도 않았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 회장은 "법원에서 판단할 사항"이라며 "제가 하지 않은 말을 했다고 했기 때문에 바로잡기 위해 소송을 한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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