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서 귀화를 통해 다른 국적을 달고 대표 선수로 활약한 경우는 이미 퍼진 지 오래입니다. 물론 그 유형은 다양합니다. 한 국가가 해당 선수의 귀화를 원해서 이뤄진 경우도 있고, 본인의 강한 의지로 귀화를 하고 이후 실력을 쌓으면서 더 좋은 활약을 펼친 경우도 있습니다. 기존 국가의 대표팀 운영에 불만을 품고 다른 기회를 찾기도 하고, 결혼, 가족 문제 등 개인적인 일로 귀화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미 유럽, 북중미 지역은 보편화되다시피 했고, 아시아 지역 역시 일본, 중동 등지에서 귀화 국가대표 선수들이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우리나라 역시 탁구, 농구 등에서 귀화 국가대표 선수들이 활약을 펼치면서 그 비중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축구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물론 신의손, 이성남, 이싸빅 등 몇몇 선수들이 귀화를 하기는 했지만 국가대표 선수로는 귀화 선수가 발탁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 마시엘, 샤샤 등 몇몇 선수들이 국가대표 문을 두드렸지만 여러 가지 문제로 국가대표 선수로 발탁되지 않고 귀화 추진도 없던 일이 됐습니다.

▲ 에닝요 (사진: 김지한)
그러나 최근 축구계에 국가대표 귀화 선수 문제가 뜨거운 이슈로 떠오를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수원의 라돈치치가 '한국을 너무 사랑한다'면서 귀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는 데 이어 전북의 에닝요 역시 한국 국적을 취득할 생각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K리그에서 비교적 오래 몸담으면서 저마다 빼어난 기량을 갖고 있는 선수들이어서 한국 축구대표팀 발탁도 노려볼 만한 선수들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대표 발탁이 대표팀에 도움이 될지, 그리고 진정성 있는 귀화를 하는 것인지 여부 등이 검증돼야 한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의 이들의 행보뿐 아니라 귀화 선수에 대한 뜨거운 찬반 논란이 여러모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무작정 외국인 출신 선수는 안 된다는 선입견을 깬 지 오래입니다. 우리 사회에 다문화 가정이 많아지고 있고, 외국인에 대한 거부감 역시 어느 정도 사라진 덕이었습니다. 다른 종목에 불고 있는 귀화 국가대표 선수 바람, 그리고 다른 나라 국가대표팀에 귀화 선수들이 좋은 활약을 펼치는 사례를 많이 접하게 된 것도 선입견을 깬 요인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물론 라돈치지, 에닝요 모두 충분히 대표팀에서 뛸 만한 자격을 갖춘 선수입니다. 에닝요는 전북 현대에서 뛴 지난 2009년부터 3년 동안 매 시즌마다 발군의 기량으로 소속팀의 상승세를 이끈 주역이었습니다. 지능적인 플레이를 즐겨하고, K리그 최고의 프리킥 능력을 갖춘 그가 대표팀 선수로 활약할 경쟁력은 충분히 갖추고 있습니다. 라돈치치 역시 오랫동안 K리그 무대에서 활약하면서 큰 키와 유연한 몸놀림을 활용한 공격력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선수였습니다. 한국어를 어느 정도 유창하게 할 줄 알고, 친근한 인상과 매너로 한국팬들의 지지를 얻고 있기도 합니다. 많은 팬들 역시 이들의 실력을 인정하면서 대표팀에 뛰면 좋겠다는 여론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귀화 선수라 해서 차별하는 일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며 기대감을 표시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외국인 선수면 다 된다는 식의 관념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팀에 도움이 될 만 한 능력 을 갖추고 있는지 뿐만 아니라 품성, 행동 등 외적인 요소에서도 국가대표 선수가 될 만 한 자격이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판단해야 할 일이라는 겁니다. 한 국가를 대표하는 팀에 오르는 만큼 그만 한 기본적인 조건들을 어느 정도는 갖추고 있어야 진정한 국가대표의 자격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최소한의 한국 대표팀에 대한 목표 의식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 한국 사회에 대한 인식도 갖추고 있어야 대표 선수의 자격을 줄 수 있습니다. 무조건 국가대표가 되고 싶어서 귀화를 허용하고 발탁하는 식이라면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외국인 선수면 무조건 안 된다는 식과는 완전히 다른 얘기입니다. 지금도 국가대표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다른 선수들을 위해서라도, 이전에 귀화한 외국인 출신 선배 선수들의 순수성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귀화 국가대표 선수에 대한 면밀한 판단과 종합적인 검토가 뒤따라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강희 축구대표팀 감독이 "검토할 문제가 많다"면서 신중하게 판단하겠다는 자세를 보인 것은 긍정적인 일입니다.

귀화 국가대표 선수가 월드컵 같은 큰 무대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저 역시 그런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하는 사람 중에 한 명입니다. 하지만 국가대표는 동일한 잣대를 놓고 검증된 선수들을 모은 최정예 팀입니다. 외국인 출신 선수라 해서 차별하지도, 그렇다고 특혜를 줘서도 안 되는 자리가 국가대표팀입니다. 실력 뿐 아니라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자부심과 명예, 진정성 있는 애정을 갖춰야만 합니다. 프로 선수들이 가져야 하는 의식 이상으로 이는 중요합니다. 물론 거창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자격들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귀화를 추진한다면 이에 따른 후폭풍은 거세게 일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귀화를 추진 중인 두 선수뿐 아니라 앞으로도 생겨날 사례까지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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