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정희] 『죽는게 뭐라고』에서 사노 요코는 자신의 삶이 이제 2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의사에게 통보받고 나자 우울증이 단박에 사라졌다고 했다. 파도 위에 던져진 조각배처럼, 우리를 괴롭히는 우울은 바로 삶의 불투명함에서 기인한다. 그런데 그 불투명한 미래에 죽음이란 도장이 꽝꽝 찍히니 더는 번민할 이유가 사라진 거다. 가장 확실한 미래, 죽음을 받아선 사람만큼 삶에 대해 진솔해질 수 있을까? 영화 <당신얼굴 앞에서>를 통해 홍상수 감독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그렇다.

죽음 앞에 선 상옥

영화 <당신얼굴 앞에서> 스틸 이미지

영화에서 주인공 상옥을 만난 감독(권해효 분)은 그녀가 과거에 출연했던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특별한 장면이 아니다. 택시를 타고 가며 창밖을 내다보는, 혹은 공원에서 비둘기들을 바라보는, 삶의 처연함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표정. 그 찰나의 표정으로 인해 감독은 오랜 시간 동안 배우로서 상옥을 잊을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언제나 그래왔듯, 현장에서 마주한 배우를 통해 작품의 영감을 받는 홍상수 감독. <당신얼굴 앞에서> 속 이 대사는 주연을 맡은 이혜영에 대한 감독의 고백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그만큼 <당신얼굴 앞에서>는 홍상수 감독의 다른 작품과 달리, 이혜영이란 배우가 가진 결에 온전히 의지한다.

굳이 동생의 대사가 아니더라도 진짜 아픈 게 아닐까 싶은 모습. 대화를 나누지만 어쩐지 무대에서 독백을 하는 듯한 분위기. 살아온 시간이 녹록지 않음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서늘한 눈빛. 종착역을 앞둔 사람만이 내미는 담담한 온기를 배우 이혜영은 그대로 보여준다.

한때 영화배우로도 활약했던 젊은 시절의 상옥. 하지만 동생의 말대로, 느닷없이 외국행을 선택한 그녀는 오랫동안 고국과 가족들과 연을 끊다시피 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 삶에서 그리 길지 않은 시간만이 남았음을 알게 된 그녀는 아주 오랜만에 고국을, 동생을 찾는다.

영화는 '시한부' 운명을 맞닥뜨린 한 여성 상옥이 보내는 '하루'라는 시간을 담는다. 아침에 눈을 떠서 하루를 보내고, 다시 또 새로운 하루를 보내는 그 일상의 시간. 하지만 거기에 시한부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색채가 달라진다.

영화 <당신얼굴 앞에서> 스틸 이미지

종착역을 앞에 둔 상옥은 그래서 눈을 뜨자마자 온전히 감사한다. 고통 없는 하루를 주심을, 그리고 이 하루를 온전히 지낼 수 있기를. 신을 향한 독백, 그 기도의 너머에는 아직은 무너지지 않는 삶에 대한 의지가 있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는 너무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서 서로가 무엇을 좋아했는지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한 동생을 ‘연인'처럼 지켜본다.

그저 오랜만에 온 언니라고만 생각하는 동생은 편하게 브런치를 즐기고 산책을 하고, 언니에게 이제는 고국에 정착하라며 새로 지어질 아파트를 권한다. 그리고 함께 아들의 가게에 가서 떡볶이를 먹는다. 이 평범한 일상. 하지만 언젠가 상옥이 더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시절이 오면, 동생에게 이 하루는 상옥과의 마지막 추억이 될 것이다.

그렇게 동생과 오붓한 시간을 보낸 상옥은 오랫동안 그녀에게 작품에 대한 구애를 하던 감독을 만나러 간다. 그리고 가는 길에 오래전 그녀가 살았던 집에 들른다. 감독을 만나는 일, 그리고 옛집에 들른 일도 모두 그녀에게 더는 시간이 허락되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다.

현재주의자 홍상수

거기까지라면 여느 시한부 삶을 사는 주인공의 회고담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런데 홍상수가 누구인가. 오랜 시간 전에 본 영화 속 한 장면을 운운하며 상옥에게 자신의 작품 출연을 권하던 감독은 섭외와 수작의 경계선을 오르내린다. 그런 감독에게 상옥은 자신에게 시간이 없음을 토로한다. 그런 상옥의 현실을 상옥보다 더 비통해하던 감독, 술잔에 술잔을 더하던 감독은 당장 내일이라도 함께 단편 영화라도 찍자며 '짧은 동행'을 간청한다.

생의 마지막 길에서 여전히 자신을 배우로서, 여성으로서도 알아봐 주는 그 누군가라니 얼마나 멋진 이벤트인가. 하지만 그런 깜짝쇼는 현실이 되지 않는다. 예의 홍상수 감독 작품 속 남자들처럼 다음날 술이 깬 감독은 꽁지가 빠져라 내뺀다. 상옥은 감독이 영화에서 발견한 젊은 날 상옥을 잊지 못했던 그 한 장면처럼, 삶의 페이소스가 고스란히 배어 나오는 웃음으로 한바탕 웃고 말 뿐.

오랜 옛집을 찾은 상옥은 그곳에 앉아 지나온 시간을 회고해 보다가 괜히 왔다고 후회한다. 회자되는 <쿵푸 팬더>의 명대사가 있다. 지나간 과거는 히스토리, 미래는 미스터리, 현재는 '선물(present)'라는 문구다. 옛집을 다시 찾아 괜히 왔다는 상옥의 말은 그리 길게 남지 않은 시간을 히스토리에 천착하고 싶지 않은 상옥의 의지가 아니었을까.

영화 <당신얼굴 앞에서> 포스터

상옥은 시한부이다. 그러나 홍상수 감독은 연민 대신에, 시한부의 하루를 의연하게 살아내는 상옥을 통해 삶의 현재성을 강조한다. 삶이 몇 개월 남지 않았다 하더라도, 당장 주어진 건 오늘 하루다. 우리는 늘 오늘 하루를 살아낼 수밖에 없으면서, 과거도 미래도 다 나의 영역인 양 짊어지고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그 하루, 죽음이 다가온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닥친 오늘 하루는 뜻밖의 제안을 받을 수도, 혹은 여전한 구애를 받을 수도 있는 시간이다.

그 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기 위해 상옥은 이국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고국으로 돌아와 오랫동안 연을 끊다시피 했던 동생을 본다. 아마도 죽음이란 특별한 이벤트가 다가오지 않으면 하지 않았을 선택이다. 죽음 앞에서였기에 상옥은 감독의 헛짓을 자존심 상해하는 대신 웃음으로 넘길 수 있지 않았을까.

사실 상옥만이 아니라, 길고 짧을 뿐이지 우리는 모두 시한부다. 우리 인생에서 분명한 것 하나는 죽음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분명한 미래를 오지 않을 그 언젠가의 시간이라 여기며 삶의 현재성을 흘려보낸다. 스테디셀러 <인생 수업>이 주는 교훈은 딱 하나다. 늘 당신이 삶의 마지막 순간을 앞에 두고 있는 것처럼 살라는 것. 홍상수 감독의 <당신얼굴 앞에서>는 <인생 수업>의 또 다른 버전과도 같다.

17살 죽고 싶었던 시절, 서울역 앞에서 지나가는 사람들 얼굴 앞의 '광채'를 발견하고 그 빛이 너무도 아름다워 삶의 의지를 되찾았다는 상옥의 후일담. 그건 상옥의 입을 빌려 감독이 우리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가 아닐까.

<당신얼굴 앞에서>를 보고 나니 새삼 홍상수 감독은 '현재주의자'였구나 싶다. 그가 젊은 시절부터 꾸준히 해오던 영화, 그 영화를 통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지금 여기 우리의 삶, 그 삶에 온전히 자신을 담근 이들의 이야기였구나 싶다. 아이러니하게도 홍상수가 그렇게 꾸준히 해오던 주장이 시한부 삶을 온전히 살아내려는 상옥을 통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내일 세상이 끝난다 해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듯이, 다가올 죽음 앞에서도 ‘오늘'은 우리에게 선물처럼 주어진다. <죽는게 뭐라고>에서 유방암에 걸려 죽음을 앞둔 사노 요코는 그래서 말한다. '힘차게 죽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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