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농성장 ⓒ송선영

2008년 4월 4일. 여의도는 봄기운이 완연했다. 길가는 벚꽃의 꽃망울로 가득했고 여의나루 역 근처 한강 공원은 봄을 즐기기 위해 나들이 온 사람들과 연인들로 북적였다. 따스한 봄 햇살을 받은 모든 것들이 평화로워 보이는 봄날의 오후였다.

봄기운을 느끼며 몇 발자국 걸었을까. 조금 걷고 나니 눈 앞에 주렁주렁 매달린 현수막과 천막집이 보였다. 평화로워 보이는 여의도의 분위기와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었다. 그 곳은 '직접 고용'과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코스콤을 상대로 200일 넘게 싸우고 있는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천막 농성장이었다.

이들을 처음 본 것은 지난 해 12월이었다. 당시 여의도에 볼 일이 있던 나는 갑작스레 이동하는 전경과 의경의 움직임에 놀랐고, 누군가 스쳐가는 말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농성 중임을 알려주었다. 또 그들만의 투쟁이겠거니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 나는 친구들과의 약속 장소로 향했다.

▲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농성장 ⓒ송선영

좋은 곳에서 좋은 음식으로 시간을 보낸 뒤 다시 그 곳을 지날 때 작은 난로에 서로의 몸을 기대가며 컵라면을 먹고 있는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추운 겨울에 차가운 길거리에 앉아 컵라면을 먹는 모습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고 '코스콤 사태'를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난 뒤 '미디어스'에 입사했고 처음으로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취재하게 됐다. 추운 겨울 컵라면을 먹던 그들은 계절이 바뀌어 봄이 다가왔지만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무심코 지나쳤던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취재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고, 사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는 데 더욱 놀라고 말았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길게 늘어진 천막 농성장 사이를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길에 늘어선 현수막과 사진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은채 바쁜 걸음을 재촉했다.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박한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는 우리 언론의 모습이 함께 스쳐지나갔다.

▲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농성장을 지나가는 사람들 ⓒ송선영

인터뷰 도중 코스콤 비정규지부 김주신 사무국장은 이런 말을 했다. "30분만 차를 타고 가면 따뜻한 집이 있는데 누가 여기에서 이러고 싶겠느냐"고. 그는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 문제에 귀 기울여달라는 당부의 말을 거듭 건넸다.

봄을 맞은 여의도는 평화로웠지만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 마음 속엔 봄이 오지 않았다.

다음에 이 곳을 찾을 땐 부디 가벼운 마음으로 올 수 있길. 농성장을 지키던 사람들도 제 자리를 찾아 따뜻한 집과 일터로 돌아갈 수 있길. '사람과 사람이 만드는 풍경' 본연의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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