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월드컵의 아름다운 추억이 흐른지도 벌써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태극전사들이 터트리는 한 골마다 환호했고, 강호들을 쓰러트리며 4강까지 올랐을 때는 크게 열광했습니다. 축구가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사람들을 하나 되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것 역시 이때 처음 제대로 알았습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을 비롯해 23명의 태극전사들, 코칭스태프 모두 우리들의 영웅이었고, 스타였습니다.

이후에도 '2002년의 영웅들'은 제 몫을 다하며 한국 축구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박지성, 이영표는 네덜란드를 거쳐 나란히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무대에 진출하며 해외 진출의 물꼬를 틔웠고, 이들보다 먼저 유럽에 입성했던 설기현은 10년동안 유럽 생활을 하며 나름대로 성과를 냈습니다. 골키퍼 이운재는 오랫동안 대표 생활을 하며 맏형의 면모를 과시했고, 골키퍼 김병지는 K리그 최고령 출전 기록을 연달아 갈아치우며 후배들에 귀감이 됐습니다. 홍명보, 황선홍, 최용수, 유상철, 윤정환, 최진철, 이민성 등은 지도자로 제 2의 축구 인생을 시작하며 저마다 무난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풍부한 경험과 기존의 틀을 깨는 신선한 리더십으로 색깔을 드러내며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낸 지도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선수 생활을 하고 있는 선수 가운데 마지막을 앞두고 있는 이들의 막판 운명은 엇갈렸습니다. 16강전 이탈리아전 승리의 주역 안정환은 여러 팀을 전전하는 '저니맨' 신세가 됐다 은퇴를 고민하고 있고, 이천수는 각종 구설수에 K리그 임의탈퇴 신분까지 전락하며 다른 나라에서 선수 생활을 마쳐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됐습니다. 하나둘씩 현역 선수 생활을 은퇴하면서 2002 영웅들의 활약상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도 사라졌고, 기억도 조금씩 멀어져만 갔습니다.

▲ 설기현-김남일 (사진=인천 유나이티드)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은 두 베테랑

설기현과 김남일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들은 지난해 울산 현대, 러시아 톰 톰스크와의 계약이 끝난 뒤 어느 곳으로 갈 지 적지 않은 시간동안 고민해야 했습니다. 모두 2002년 4강 신화에 큰 공을 세웠고, 2006년 독일월드컵 때 역시 주전급 선수로 활약하며 A급 선수들로 추앙받았지만 흐르는 세월을 거스를 수는 없었습니다. 3회 연속 월드컵 본선 출전을 노렸던 설기현은 부상으로 남아공월드컵 출전기회를 놓쳤고, 김남일은 조별 예선에 모두 출전하기는 했지만 3차전 나이지리아전에서 반칙으로 패널티킥을 내줘 동점의 빌미를 제공, 많은 이들의 비판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동안 쌓아온 것이 한번의 모습으로 모두 무너져 내렸고, 이들을 주목하는 시선 역시 하나둘씩 거둬졌습니다.

그래도 둘은 크게 방황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경험을 갖고 있는 베테랑다웠습니다. 예전처럼 화려하지는 않아도 묵묵하고 꾸준하게 맡은 바 역할을 다 했습니다. 설기현의 경우, K리그 입성 2년만에 리그 준우승, 컵대회 우승이라는 성과도 냈습니다. 그래서 30대 초중반의 적지 않은 나이에도 함께 하자는 팀의 러브콜이 꾸준하게 나왔습니다.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향해가는 시점에서 사실상 '마지막 팀'이 될 수 있는 팀을 골라야만 했고, 적지 않은 고민도 했습니다.

많은 이익을 가져다 준 이들의 선택

그런 상황에서 이들은 결국 인천 유나이티드라는 시민구단을 택했습니다. 허정무 감독과의 의리, 그리고 선수 은퇴 이후 지도자 보장 같은 여러 가지 부분들이 이들의 마음을 잡았기 떄문입니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겠지만 이들은 최고의 선택을 했고, 그랬던 이들에게 많은 팬들은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의 마지막이 K리그 무대가 될 가능성이 훨씬 높아졌으며, 이를 통해 얻는 개인, 팀, 리그 전체에 가져다 줄 소득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이들의 존재감만으로 인천 유나이티드는 큰 자산을 얻었습니다. 인천 창단 멤버였던 배효성이 강원으로 이적하면서 이렇다 할 프랜차이즈 스타가 없어진 상황에서 인천에서 태어나 줄곧 자랐던 김남일이 들어옴으로써 진정한 프랜차이즈 스타를 얻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껏 유병수 정도를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큰 스타'가 없었던 인천은 설기현, 김남일의 가세로 스타급 선수를 보유할 수 있게 됐습니다. 자연스레 이는 후배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풍부한 경험을 지닌 베테랑 선수들을 통해 여러 가지 노하우를 직접 전수받을 수 있게 됐기 때문입니다. 그뿐 아니라 이들의 존재감 자체만으로도 든든함을 얻고 좋은 귀감이 될 수 있습니다. 이는 인천 뿐 아니라 이들과 상대할 K리그 15개 팀 선수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이며, 결과적으로는 리그 전체에 효과를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두 전설들에게 큰 박수와 격려가 필요한 때다

물론 이런 여러 가지 효과, 자산 같은 말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시선도 있습니다. 김남일은 인천에 입단하면서 "나한테는 기대를 많이 안 하셨으면 좋겠다."면서 "나이도 있고 운동장에서 서 있는 수준밖에 안 될 것이다. 10년 전에는 스타였을지 모르지만 지금의 주인공은 젊은 선수들이고 나는 주연들을 빛나게 하는 감초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전성기를 지난 나이에 K리그에 복귀했다가 기대에 못 미치는 모습을 보고 실망시키지 않을까 부담스러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껏 한국 축구에 공헌한 것 자체만으로도 이들은 충분히 박수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꾸준한 자기 관리가 없었다면 지금 선수 생활을 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 모습 자체에 팬들은 환호할 준비가 돼 있고, 후배 선수들은 기꺼이 최고의 경기력으로 보답할 것입니다.

어쨌든 설기현, 김남일은 탁월한 선택을 했습니다. 공교롭게 2002년 월드컵을 치룬지 10년이 지난 시점에 나온 것이어서 이들의 선택은 더욱 주목받았습니다. 2002년의 추억도 떠올리고, 팀과 리그의 미래에도 적지 않은 도움을 준 이들은 분명 올 시즌 빛을 발할 것입니다. 경기에서 잘 하든 못 하든 이들이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도록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응원하고 격려해주는 것이 더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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