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심영섭 칼럼] 바람직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 정책목표 세우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가장 과학적인 정책수단을 찾는 역할은 정부와 의회에 맡겨져 있다. 그러나 사회 각 분야에서 국가와 민간의 영역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거나 역할이 중첩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또, 사회 환경은 불확실성이 증가하는 추세이다. 시민들로부터 국가권력을 위임받는 정부나 의회가 단독으로 책무를 수행하는 데 한계가 발생하고 있다. 그래서 국가와 시장, 사회가 서로 감당할 수 있는 역량을 나눔으로써,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바람직한 미래 사회’를 만들어가는 협치가 더욱 중요해졌다.

한국ABC협회 내부관계자의 공익제보로 신문 산업의 불투명하고 부정확한 유통현황은 감독관청인 문화체육관광부의 사무검사를 통해서 사실로 밝혀졌다. 한국ABC협회 사태는 우리나라 언론 산업이 겪고 있는 총체적인 위기상황의 원인이 언론내부에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시민을 염두에 두지 않고 본인들의 왕국에서 안주하면서 자정기능을 잃었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한국ABC제도를 처음 도입한 것은 신문업계였다. 1974년 중앙일보가 우리나라 일간지로는 처음으로 발행부수를 공개하면서 시작되었다. 1985년 시사영어사가 영국ABC협회에 가입함으로써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공사제도에 참여했다. 이러한 노력들이 밑거름이 되어 1989년 5월 신문사, 광고주, 광고사, 조사회사가 참여해 한국ABC협회를 설립하였다. 하지만 2009년 국무총리훈령으로 정부광고집행 기준으로 ABC협회 가입을 강제할 때까지 한국ABC협회가 제대로 작동한 적은 없다. 여러 차례 광고주, 광고대행사를 중심으로 개혁 노력이 있었지만, 신문사들이 협조하지 않았다. 그나마 2009년부터 가입회사가 늘어났고, 형식적으로 국제ABC협회의 기준을 준수해 나갔다. 정부광고집행 기준의 하나로 ABC협회 가입이 강제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도자체는 파행적으로 운영되어 왔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2009년 이명박 정부는 참여정부가 경영난을 겪고 있던 언론을 지원하기 위해서 설립했던 신문발전위원회,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신문유통원에 대한 정부의 일반예산 지원을 최소화하는 대신 언론진흥기금을 통해 ‘좋은 저널리즘’을 장려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수정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일반예산이 아닌 정부광고집행을 대행하는 기관을 지정하고, 이 기관에서 정부광고수수료를 전체금액의 10%씩 징수하여 언론지원을 위한 기금으로 활용할 수 있게 제도화했다. 당시로서는 정부 곳간을 책임지는 기획재정부도 만족하고 지원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도 만족할 수 있는 대안이었다. 또한, 정부광고(특히 지방행정기관에서의)로 연명하는 언론사 난립문제도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해결하는 효과도 있었다.

사실 종이신문에 게재되는 광고에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홍보담당자는 없다. 심지어 홍보담당자 심층인터뷰에서는 광고효과가 ‘0’에 가깝다는 전문가도 있다. 하지만, 홍보효과는 조금 다르다는 평가이다. 지방행정기관이나 공공기관 홍보담당자들은 공보목적으로 어떤 식으로든 메시지를 시민들에게 전달하여야 한다. 예컨대 지방행정기관이 직접 관보나 반상회보, 인터넷방송을 만들 수는 있지만, 실익보다는 폐해가 더 클 수 있다. 그래서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매체 가운데 도달률과 신뢰도가 높은 매체를 통해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2020년 집행된 정부광고예산을 살펴보면, 지방행정기관일수록 행정정보를 알리는 데 효율적인 매체로 인쇄매체(전체 예산의 24.8%)와 온라인매체(전체 예산의 22.0%)를 선호했으며 방송은 22.7%에 머물렀다. 반면 전국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국가행정기관은 방송매체(32.4%) 선호도가 가장 높았고, 이어서 온라인(26.4%), 옥외광고(11.8%) 순서였다. 인쇄매체에 대한 정부광고비 집행은 11.7%에 불과했다. 이는 지방행정기관일수록 정부광고를 공보효과에 더 많은 비중을 두었고, 국가행정기관일수록 광고PR효과에 더 많은 기대를 걸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수천개가 넘는 기관들이 저마다 공보 목적에 따라 정부광고를 집행하기도 하고 언론사가 수행하는 사업을 후원하기도 한다. 특히, 광고보다는 후원(협찬)을 통한 지원사업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문제는 정부광고비가 집행되는 기준이나 과정이 투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정부광고의 42.5%를 집행한 지방행정기관 대다수는 정부광고 집행에 대한 조례나 규칙 없이, 자체 관행이나 지자체장의 ‘호의’에 따라 정부광고비를 집행한다는 점이다. 특히 지방자치단체가 보조금사업으로 공개입찰을 통해서 지원하는 사업예산은 후원성이 강하다 하더라도, 정부광고예산에 포함되지 않는다.

또, 이러한 예산은 지자체 홍보예산보다는 자치행정 예산에 포함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지자체장이 특정한 언론사에 보조금사업을 주고 싶으면, 자투리 예산을 긁어모아서 정보홍보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산하기관을 통해서 집행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지역매체를 경영하는 사주나 보도책임자와 지역, 혈연, 학연이 깊은 지자체장일수록 매체 영향력과 관계없이 정부광고 예산을 아무런 기준 없이 집행하는 것이다. 유통부수가 5만부인 지역일간신문과 유통부수가 5천부인 지역일간신문의 뒷면전면광고 가격이 동일하게 배당되거나, 후자가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진 것이다. 가장 어이없는 건 지자체에서 협찬을 많이 받는 매체일수록 지역에서 권위 있는 언론처럼 부상하고, 이러한 허명을 각종 이권에 개입하는 근거로 악용한다는 점이다.

문제는 정부광고법(정부기관 및 공공법인 등의 광고시행에 관한 법률)에도 있다. 정부광고법에 지자체는 정부광고 집행을 위한 조례를 제정할 의무도 없고,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정부광고비를 집행하는지 감독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할 의무가 없다. 오직 정부광고법 시행령 제13조(정부광고자문위원회)를 통해서 정부광고의 효율성과 공익성 향상에 관하여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의 자문에 응할 수 있는 정부광고자문위원회 정도만 둘 수 있게 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광고 매체선정의 공정성과 객관성, 예산집행의 투명성을 감시할 수 있도록 지역조례를 제정하도록 명시하고, 국가행정기관과 공기업, 특수법인도 정부광고 집행규칙을 제정하도록 강제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정부광고자문위원회도 실효적으로 정부광고의 공정성, 객관성, 투명성을 살펴볼 수 있는 위원회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 물론 완벽하게 부패 고리를 끊는 건 사실상 어렵다. 그러나 제도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상업광고와 달리 정부광고는 기본적으로 국민의 세금에서 지출되는 공적자원이기 때문이다.

* 심영섭 언론인권센터 정책위원 칼럼은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 '언론인권통신' 제 925호에 게재됐으며 동의를 구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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