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화살>처럼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지구촌 곳곳을 돌아다니며 글을 쓰던 모험심 강한 벤자민 미는 갑자기 직장을 그만두고 이사를 결심합니다. 아내와의 사별 이후 좀처럼 활기를 찾지 못하던 자신과 아이들에게 변화를 줄 요량이었습니다. 부동산업자와 한참을 돌아다닌 끝에 간신히 맘에 쏙 드는 집을 찾았는데, 벤자민 가족이 이곳에서 살기에는 한 가지 커다란 문제가 있습니다. 황당하게도 이 집이 속한 부지일대가 동물원인 것입니다. 계약조건에도 동물원을 인수해야 한다는 사항이 있어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눈물을 머금고 다른 집을 찾거나 어쩔 수 없이 동물원을 운영하거나. 갈등하던 벤자민은 결국 동물원 운영에 도전하기로 결심합니다.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만약 설 연휴기간에 영화를 단 한 편만 봐야 하고, 더군다나 여러분이 어린이를 키우는 학부모이며, 아이들이 자막을 읽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면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를 택하시기 바랍니다. 곧장 이 영화를 추천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일단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는 동물원이 배경입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아주 환장하는 장소이지 않나요? (요즘은 아닐 수도 있겠군요)

이 동물원 안에는 당연히 동심을 물씬 자극하는 귀여운 털복숭이 동물로 가득합니다. 생각만 해도 절로 미소가 지어지지 않나요? 그저 호랑이, 사자, 곰돌이를 마구마구 쓰다듬고 함께 뒹굴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벤자민의 딸인 로지를 연기하는 매기 엘리자베스 존스는 숫제 말하는 인형으로 보일 만큼 깜찍한 아이입니다. 이런 아역이 갖가지 영화에서 종종 어떤 역할로 등장하는지는 다 아시죠? 외모와 어울리지 않게 어른스러운 면을 보일 때는 아주 그냥 깨물어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벤자민이 동물원을 운영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이가 로지이기도 합니다. 아이 특유의 자연친화력(?)으로 공작새와 대화를 하는 걸 보고 결심을 굳히는데, 그걸 보고 절로 공감이 되더라니까요.

매기에 이어 이제는 언니의 아성에 도전할 수도 있을 엘르 패닝도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에 출연했습니다. 와~ 서양인은 엄청 빨리 성장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눈으로 확인할 때면 매번 놀랍기만 합니다. 엘르 패닝은 작년에 <슈퍼에이트>에서 봤던 것보다 훌쩍 성숙해졌습니다. 키와 미모로 언니에게 절대 지지 않아요. 게다가 연기도 잘합니다.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에서 맡은 해맑은 소녀 역할은 엘르 패닝의 실제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제아무리 꽁꽁 싸매도 온 몸에서 철철 흘러넘치는 섹시미를 숨길 수 없는 스칼렛 요한슨은 어떤가요?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에서는 주임 사육사로 나와 노출이 전혀 없지만, 본디 그럴수록 진정한 섹시함이 진가를 발휘하는 겁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스칼렛 요한슨은 사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배우이지 않습니까? 특히 고전영화 블론디의 재림인 그녀를 외면할 수 없을 겁니다. 점 하나 찍힌 얼굴도 얼굴이지만 몸매도 딱이죠.

자, 이것으로 매력적인 배우들을 소개하는 건 끝났고 다른 파트로 넘어가겠습니다. 잠깐만요. 네? 누구요? 아~ 맷 데이먼인가 밋 데이먼인가 하는 친구? <굿 윌 헌팅>으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하면서 파란을 일으키더니 승승장구했고, 근래에는 <본 시리즈>로 액션영화마저 훌륭하게 소화했다는 그 남자배우? 몰라요. 전 남자배우 따위에는 관심 없어요.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를 추천하는 마지막 이유는 연출을 맡은 카메론 크로우입니다. <제리 맥과이어, 올모스트 페이머스, 엘리자베스타운> 등에서 인물과 드라마를 다루는 데 능숙한 솜씨를 보여줬던 감독이죠. 제가 이 영화를 관람하기로 했을 때, 다른 건 몰라도 카메론 크로우가 연출한 이상에는 동물만이 아니라 사람의 냄새가 나는 이야기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설사 할리우드의 전형적인 가족주의에 기반한 영화라고 해도 괜찮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판단은 거의 빗나가질 않았습니다. 여러 가지 소재와 연출이 맞물린 덕에 웬만큼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아, 한 가지가 더 있군요.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의 음악을 맡은 이가 다름 아닌 욘시입니다.작년에 '김나진의 세계도시여행'에 출연했을 때 추천곡으로 골랐던 <Sinking Friendship>을 바로 욘시가 불렀습니다. (이 곡은 영화에도 흘러나옵니다) 오프닝 크레딧에서 그의 이름을 보고 반색하면서도 신기했습니다. <드래곤 길들이기> 등에 삽입곡이 실린 적은 있지만 전체 음악까지 작업할 줄은 몰랐거든요. 2010년에 발표한 앨범 <GO>와 쏙 빼닮은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의 음악은 영화와 아주 잘 어울립니다. 라디오에서 제가 이 곡을 고른 이유를 "우연히 처음 들었을 때 북유럽의 자연이 절로 떠올랐다"라고 했었죠. 동물원이라는 공간을 다룬 이 영화와 어우러지기에도 제격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한데 더해진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는 최소한 그만큼의 총합을 보여줍니다. 미국 박스 오피스 소식에서 말씀드렸듯이 이 영화는 더 볼 것도 없이 가족주의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다른 건 기대할 수도 없고 기대해서도 안 됩니다. 저는 단지 흔하디흔한 가족주의라도 과연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만을 눈여겨봤습니다. 이 말인즉슨 카메론 크로우의 연출을 믿고 기대했다는 의미입니다. 결과는 아쉽게도 전작에 미치지 못하는 무난한 연출을 보여주지만 그 와중에도 종종 그의 역량이 발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동물원을 운영하기로 결심하는 장면이 그렇습니다. 당사자인 벤자민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지만 맷 데이먼의 연기와 카메론 크로우의 연출이 절묘한 순간을 잡아냅니다.

가족주의 영화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는 아내이자 어머니의 죽음으로 균열된 가족을 봉합하는 과정을 다룹니다. 물론 타겟 관객층이 자명하기 때문에 진중한 고민이나 깊은 갈등은 없습니다. 하지만 카메론 크로우가 벤자민 가족의 상처에 덧대기 위해 택한 은유와 상징을 담은 장면이 있어 마냥 가볍고 시답잖은 영화는 아닙니다. 벤자민이 마주하는 것조차 꺼려할 정도로 극심했던 상실감을 욘시의 음악과 함께 극복하는 장면도 의외의 울림을 전합니다. 끝으로 벤자민과 두 아이들이 다시 화합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를 말하는 결말에도 온기가 서려 있습니다.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는 걸작은커녕 수작은 아니더라도 도저히 미워할 수는 없는 영화였습니다.

★★★★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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