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방송부터 시청률 대박을 치더니 그 여세를 몰아 국민드라마급인 30%의 시청률을 바라보는 '해를 품은 달'이 중대 고비를 맞았습니다. 그동안 탄성을 자아내는 호연으로 극의 몰입을 이끌었던 아역배우들이 물러나고 새로운 성인배우들이 전면에 나섰기 때문이지요. 사실 주연의 캐스팅을 두고 방송 전부터 논란이 있었는데요, 주연 커플인 김수현과 한가인의 나이차 때문이었습니다. 6살 연상인 한가인이 김수현과의 러브라인에 어울릴지 많은 우려가 있었습니다. 직전 드라마인 '나도꽃'에서 이지아와 윤시윤의 언밸란스한 조합도 많은 지적을 받은 걸 보면 상당히 부담스러울 만했지요. 그런데 첫 출연한 성인연기자들의 면면을 보니 의외로 언밸란스한 조합은 따로 있었습니다.

어제 첫선을 보인 김수현의 연기는 무난했습니다.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는 외척들에 둘러싸인 무력한 왕으로서, 때론 과장되게 분노하고 때로는 무력하게 고뇌하기도 하는 외로운 청년 군주의 캐릭터를 매끄럽게 연기했습니다. 1년 전 KBS드라마 '드림하이'의 초창기에 연기에 익숙지 못한 아이돌 사이에서 발군의 몰입을 유도했던 연기력은 여전했지요.

그리고 많은 우려를 자아냈던 한가인 역시 비주얼 면에서 심각할 정도로 어색하지는 않았습니다. 극의 마지막에 잠깐 얼굴을 비쳤을 뿐이지만, 연우가 가지고 있던 단아한 기품을 나름의 인형 같은 외모로 이어갈 듯 보였지요. 역시나 세계최고 수준의 스타일리스트가 즐비한 대한민국에서 6살의 나이 차이는 극복할 수 있을 법도 합니다.

그런데 몰입에 치명적인 부담을 가져온 미스 캐스팅은 따로 있었습니다. 민화공주였지요. 그녀는 연우의 오빠 허염과 결혼하고자, 대비 윤씨의 계략에 동참했고, 연우를 죽이는 흑주술의 비밀도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흑막을 알고 두려움에 떨었지만 기어이 연우의 오라비 허염과 함께 살고 있지요. 그렇기에 민화공주는 극중 복잡한 심리를 밀도 있게 보여줘야 할 조연이기도 합니다. 허염을 너무나 사랑해 그와 결혼했지만, 그 과정의 핏값을 이고 있으니 말입니다. 허염과의 삶은 행복하지만, 슬픔도 안고 살아가야 하는 비운의 캐릭터지요.

극의 전개상, 연우가 무녀가 되는 과정에 드리워진 흑막이 드러나면 민화공주의 곡절 많은 삶 또한 극의 구성에서 무척 중요한 볼거리가 될 텐데요. 하지만 지금의 민화공주를 맡고 있는 남보라의 연기는 대책 없이 가볍고 쾌활할 뿐입니다. 말 그대로 시트콤 속 연기지요. 어제 방송에선, 상처 입은 중전을 찾아가 염장을 지르는 시누이의 역할이 주어졌는데요. 공주에게 주어진 대사는 분명 여우같이 얄미운 시누이의 딴청이었으나, 공주가 행한 연기는 한편의 가벼운 콩트였습니다. 절절한 상처의 여운이 이어지던 극의 전개에 찬물을 끼얹었지요.

민화공주의 아역인 진지희 또한 하이킥에서의 방꾸똥꾸 이미지를 연장해 철없고 막무가내 캐릭터를 구현했지요. 이는 그 나잇대 모습과 잘 어우러져 민화공주의 안하무인 캐릭터를 잘 살려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성인이 된 민화공주는 감당하기 어려울 비밀을 간직한 채 사랑하는 낭군의 아픔을 곁에서 지켜보며 겉으로는 한없이 밝아야만 하는 이중적인 캐릭터입니다. 하지만 이날 보여준 연기는 이러한 다중 캐릭터를 기대할 수 있을지 상당한 우려를 자아내게 했습니다.

덧붙여, 아역 당시 꽃다운 미모를 자랑했던 허염의 급격한 노화역시 상당히 낯설었습니다. 친우인 양명과 함께 있으면 과연 동년배가 맞을지 의문스러울 정도였지요. 또한 공주의 남편이라기보단 공주의 아빠 같았습니다. 혹시 허염이 유배를 다녀왔던 동안 어마어마하게 고생했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담긴 캐스팅이었을까요? 또한 왕을 지키는 호위무사 운의 비주얼 역시 상당히 어색했습니다. 특히 궁궐의 정식 무사답지 않은 더벅머리는 왕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야할 근위병이라기보다는 험준한 산골을 지키는 사병같았지요.

성인배우들이 무난한 연기를 펼친다한들, 아역의 호연에 몰입됐던 많은 시청자들은 낯설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김수현의 열연이라면 이러한 낯설음도 이내 익숙해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하지만 연기자 교체의 그늘은 여전히 치명적인 부담으로 남아있습니다.

주연 김수현은 드라마 속 이야기에서, 왕권을 농락하는 신하들에게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 바깥에선, 치명적인 비주얼의 역풍과 시트콤 연기에 둘러싸여 있는 셈이지요. 한창 잘나가던 '해를 품은 달'이 처한 위기지요.

연예블로그 (http://willism.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사람속에서 살지만, 더불어 소통하고 있는지 늘 의심스러웠다. 당장 배우자와도 그러했는지 반성한다. 그래서 시작한 블로그다. 모두 쉽게 접하고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것에서 시작했다.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소통을 시작으로 더 넓은 소통을 할 수 있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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