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 사고가 났지만, 아무도 사고가 났는지 조차 모르는 방송

지난 17일, 동아일보 종편 채널A에서 심각한 방송사고가 발생했다. 예정대로라면 밤 10시에 방송되었어야 할 메인뉴스 ‘뉴스A'가 10시 55분에 방송됐다. 1시간의 치명적 공백이 발생한 것이다.

메인뉴스는 방송사 전체의 간판 프로그램이다.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절대 시간 고수가 이뤄지는 프로그램이다. 당일 채널A는 뉴스 시간을 변경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뉴스가 미뤄진 그 시간에는 같은 화면의 영상 클립이 10여 차례 정도 재방송됐다고 한다. 직접 시청한 사람에 따르면 “한 마디로 꼴불견”이었다고 한다.

▲ 1월 17일자 채널A의 메인뉴스 '뉴스A'는 예정된 시간인 10시가 아닌 10시 55분에 시작해 1시간 여의 방송사고가 났다.

하지만 시청률 조사기관의 편성표에는 ‘천상의 화원 곰배령’이 재방송되었다고 나와 있다. 채널A 홍보실에 문의를 했다. 하지만, 정확히 어떤 프로그램이 재방송되었는지 홍보실에서조차 확인되지 않았다. 본 사람을 수소문했다. 직접 방송을 봤다는 한 방송사 관계자는 “개국쑈 등 5~6분 정도로 편집된 화면이 한 10번 정도 반복돼서, 화면을 다 외울 정도였다”며 “통상적으로 방송사에서 예비로 만들어 놓는 영상화면(방송계 속어로 ‘쿠션’)을 계속 튼 것 같다”고 전했다. 엄청난 방송 사고가 났지만, 사고가 났다는 사실 조차 잘 확인되지 않는 방송. 그 시간의 채널A 시청률은 0.149%였다.

채널A, 디지털 방송의 핵심 시스템인 ‘스토리지 서버’ 다운

이런 문제는 왜 벌어진 것일까? 복수의 경로를 통해 확인해 본 결과, 이날 채널A의 방송 사고는 ‘스토리지 서버’(storage server, 저장장치)의 다운 문제라고 한다. 스토리지 서버란 기억 장치 또는 저장 장치로 방송 시스템에선 화면 데이터와 송출 명령어를 저장하기 위해 사용된다. 뉴스가 디지털 시스템으로 전환된 이후 가장 핵심적이고 총체적인 중앙 시스템 장비이다.

취재 결과 채널A의 방송 사고는 스토리지 서버 증설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였다. 방송 종료 후 스토리지 서버를 증설했어야 했는데, 시간에 쫓기다 보니 방송 도중에 스토리지 서버 증설 작업에 들어갔고 이 과정에서 스토리지 서버가 다운 돼, 저장된 정보를 인식하지도 데이터를 읽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진 것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17일 사고 이후 아직까지 스토리지 서버가 복구되지 않고 있단 점이다. 2만 여개의 비디오클립이 날아갔고, 큐시트에 맞춰 디지털화 된 화면을 자동으로 연결하는 것도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한다. 채널A에 스토리지 서버를 설치한 업체는 미국 회사인데 아직 입국조차 하지 않았고 “복구가 불가능하다”는 입장만을 전달했다고 한다. 채널A의 엔지니어들은 현재 ‘패닉 상태’에 빠져있다고 한다.

▲ 지난 해 12월 7일자 '동아일보'는 1면에서 자사 종편 채널의 뉴스 시청률이 1위라고 선전했다. 하지만 치명적 방송사고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아는 사람도 없고, 알려지지조차 않았다. 결국 시청률이 사실상 0% 이다보니, 메인뉴스 시간에 한 시간씩 방송 사고가 나도 아무도 모르고 방송국도 쉬쉬할 수 있는 셈이다.

방송사고 이후 개별 USB에 리포트 담아 뉴스 송출 중

스토리지 서버가 다운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지기에 그러는 것일까? 이에 대해 한 방송 기술 전문가는 “스토리지 서버는 디지털 방송 장비의 핵심이다. 스토리지 서버가 없다면 기자들이 만든 화면을 일일이 컴퓨터를 옮겨 다니며 복사를 해서 손으로 날라 방송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지금 채널A의 기자들은 취재한 화면을 편집해 USB에 담아 스튜디오 부조실로 전달하고 있다고 한다.

방송 기술 전문가는 “스토리지 증설은 원래 방송 종료 후에 해야 하고, 오류가 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예비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지적하며 하지만 “채널A의 경우 방송 도중에 증설 작업에 들어갔다고 하는데 이는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고 개국 준비 부족이라고 밖에 설명이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스토리지 서버가 다운되면 영상 편집 및 화면 구성의 체계화가 전혀 이뤄지지 못한다. 현재, 방송 시스템은 촬영 테이프를 비디오 데크에 넣는 것이 아니라 촬영한 화면을 파일로 전환해, 컴퓨터에 입력해 뉴스 전체를 아예 하나의 비디오 파일로 만들어 큐시트에 맞게 배열해 전송하는 방식이다. 스토리지 서버가 다운되면 이 작업을 전혀 수행할 수 없다. 그래서 앞서 말한 대로 취재한 리포트를 USB에 담아 각각 부조실에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스토리지 서버가 다운되면 중계차 연결 등 속보성 방송은 전혀 불가능 하다. 하나의 파일로 편집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각각의 리포트를 일일이 편집해서 별도의 저장장치에 담아 손으로 날라야 하기 때문이다.

시스템 복구 불가능? 2만 여개 비디오 클립 삭제, 데이터베이스 무력화

문장으로 설명해선 잘 체감되지 않지만, 방송이 시스템이란 점을 감안하면 실로 엄청난 사고인 셈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시스템의 복구가 현재로선 불가능해 보인단 점이다. 이에 대해 채널A의 한 엔지니어는 “시스템 설비의 특성상 설치한 업체가 와야만 자세한 상황을 알 수 있겠지만, 현재로선 복구가 불가능해 보이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그렇다면 스토리지 서버 안에 저장되어 있던 2만 여개의 비디오클립 역시 사라져버려 채널A가 구축한 데이터베이스가 사실상 붕괴되는 최악의 상황이 오게 된다.

이런 일은 왜 벌어진 것일까? 방송 기술 전문가들은 “개국을 워낙 촉박하게 졸속으로 하다 보니 시스템 구축과 정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발생한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지상파의 경우 시스템 구축 후 충분한 시험을 거치고도 예비 시스템까지 구축해놓는다. 그래도 사고가 발생한다. 얼마 전에는 KBS에서 사고가 발생해 방송통신위원회가 조사를 하고, 관련자를 중징계하는 일이 있었다.

하지만 종편 채널들의 경우 동시 개국을 하며, 미국 업체 한 곳이 동시에 4곳의 설비를 그것도 촉박하게 구축했다고 한다. 그리곤 시험방송조차 없이 개국에 돌입했다. 이에 대해 한 방송 기술 전문가는 “종편의 방송 사고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다만, 이번 사고의 경우 일회성 사고가 아니라 ‘재난’수준이라는 점이 문제인데, 그나마 백업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졌다면 모를까 방송국의 존폐가 걸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방송의 경우 네트워크 장비 경험이 많은 엔지니어가 필요하고 오랜 시간 시스템의 예행연습이 필요하지만 종편 채널들은 그 과정을 무시하고 생략했다.

사실상 0%의 시청률, 그 안타까움과 조롱 사이

방송사 메인 뉴스는 방송국의 신뢰와 직결되는 프로그램이다. 그 시간에 무려 한 시간이나 방송 사고가 났는데도 아무도 몰랐다는 것은 그 자체로 채널A 나아가 종편 채널의 사회적 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소수점 몇 자리까지 따져, 시청률을 측정해주고 있지만 결국 시청률이 사실상 0% 이다보니, 한 시간씩 방송 사고가 나도 아무도 모르고 방송국도 쉬쉬할 수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한 방송 관계자는 “지금 채널A의 사기가 말이 아니다. 지상파 방송에선 오디오 싱크만 몇 초 틀려도 난리가 난다. 근데 채널A는 1시간이 통으로 사고가 났는데도 아무도 모른다. 내부에서 무슨 생각을 하겠느냐. 채널A 내부 분위기가 엉망”이라고 전했다.

어찌되었건 방송사에서 치명적 사고가 발생했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그런 사고를 아무도 모르고 또 쉬쉬할 수 있는 상황은 또 어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사고의 안타까움과 0% 시청률에 대한 조롱 사이에서 견딜기 힘든 자괴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채널A 기자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어쩜 열심히 리포트를 USB에 저장하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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