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손바닥에 임금왕(王)자를 쓰고 TV토론에 참석한 일이 논란이다. 유력 언론들도 사설을 써 이 일을 비판했다. 윤석열 전 총장 측은 지지자가 응원의 의미로 적어준 글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지지자가 적어준 글을 굳이 지우지 않고 별 생각없이 토론에 참석했다는 것이다.

이것 자체로도 문제이긴 하다. 가령 동아일보는 4일 사설에서 “백성 위에 군림하던 지배자를 뜻하는 글자를 공개석상에 나와 거리낌 없이 드러냈다. 그 ‘생각 없음’이야말로 과연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으로서 기본적인 인식과 자질이 있는 것인지 의심케 하는 대목”이라고 했다. 한겨레 사설도 “전근대적 통치를 상징하는 ‘임금 왕’ 자를 손바닥에 써 반복적으로 노출한 것은 국민에 대한 예의라고 할 수 없다”고 평가하고 있다.

지난 1일 MBN 주최 TV토론에서 윤석열 전 총장이 손을 흔드는 장면 (MBN 유튜브 캡처/연합뉴스)

신문들은 해프닝에 그칠 일이 아니라고 하지만, 이슈가 또다른 이슈로 매일 같이 덮이는 선거판에선 손에 무슨 글자가 써있었다는 얘기 자체는 하루짜리 해프닝이다. 앞에서도 봤듯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순 없지만 손바닥에 임금왕자를 썼다고 해서 그 사람이 전근대적 왕정을 선호한다는 증거가 될 순 없다. 한국적 맥락에서 보면 손바닥에 그런 글자를 써주는 고령층 지지자의 존재는 충분히 있을법한 일이다.

문제는 이 논란이 결과적으로는 ‘하루짜리’에 그치지 않을 일이 됐다는 것이다. 두 가지 점에서 그렇다. 첫째, 한국의 유권자들은 박근혜 시대 최순실 씨의 전횡을 아직 잊지 않고 있다. 손바닥에 적힌 글자가 어떤 주술적 의미일 수 있다는 해석이 설득력 있게 제시되는 이유가 이것이다. 둘째, 다른 대권주자보다도 윤석열 전 총장이 특히 이 대목에서 취약하다.

가령 홍준표 의원의 지적을 보자. 홍준표 의원은 3일 페이스북에서 이 논란을 두고 윤석열 전 총장을 비난하면서 몇 가지 알려진 사실을 거론했는데, 김건희 씨의 학위 논문이 운세 서비스 이용자의 행태에 따른 관리를 논한 것이라는 점, 윤석열 전 총장이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과의 만남에 역술인을 대동한 일이 있다는 것 등이다. 이런 사실은 윤석열 전 총장의 손에 적힌 글자에 주술적 의미가 있다는 의심의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이것 뿐일까? 윤석열 전 총장과 김건희 씨를 연결해준 인물은 ‘무정스님’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최근 언론 보도를 보면 ‘무정스님’은 정식 승려라기보다는 통속적인 아마추어 철학자, 즉 점술가에 가까운 인물로 보인다. 지난 3월 조선일보 기자 출신 최보식 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사이트에 ‘윤석열 멘토’를 자처하는 인물이라며 수염을 기른 ‘인플루언서’를 인터뷰 한 내용을 올리기도 했다. 과거 뉴스타파 등은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이 역술인을 대동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던 윤석열 전 총장을 만났다고 보도했다. 이런 사실까지 묶어서 보면 윤석열 전 총장의 손에 적힌 글자도 다르게 보인다.

홍준표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이 이 문제에 목소리를 키우고 있는 이유는 이런 대목을 겨냥하고 있는 걸로 볼 수 있다. 따라서 ‘하루짜리’ 해프닝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는 이 사건은 결코 ‘하루짜리'일 수 없는 거다. 당장 예정된 TV토론에서도 다시 거론될 것이다. 그렇다고 본다면 윤석열 전 총장의 해명도 ‘해프닝’에 대응하는 수준을 벗어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뉴스타파 2020년 8월 19일 <윤석열과 홍석현의 심야회동... 목격자들 "홍, 역술가 대동했다">보도 화면 사진

사실 따지고 보면 무속인이니 하는 논란에서 자유로운 정치인은 없다. 윤석열 전 총장 측이 홍준표 의원의 특정 색깔에 대한 집착이라든가 개명 등을 물고 늘어지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의혹들도 그렇듯 이 문제도 사실관계라는 차원의 해명이 중요한 게 아니다.

대선은 어차피 5% 싸움일 것이다. 지금과 같은 방식이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는 어렵다. 윤석열 전 총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국민의힘 2차 컷오프에 주목한다. 윤석열 홍준표 유승민이라는 2강 1중 구도에서 마지막 한 자리를 누가 차지하느냐에 따라 이후 경선 판도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가 4등을 할 경우 합리적 토론이 가능할 거라는 기대가 있다.

반면 황교안 전 대표가 4등을 하면 이후 경선의 주요 이슈에는 국정농단과 탄핵, 부정선거 등의 비중이 높아질 가능성이 커진다. 그렇잖아도 국민의힘 지지층의 눈치를 보는 윤석열 전 총장도 이쪽으로 끌려 들어갈 것이다. 거기에 ‘무속인’ 논란까지 덧칠된다고 생각해보라.

그러나 요행을 바랄 일이 아니다. 결국 자신이 경선 이슈를 주도하는 것만이 해결책이다. 사실이 아니라는 방어적 해명이나 ‘너는 뭐 다르냐’식의 반격이 아니고, ‘윤석열 정권’에서는 비합리적 의사결정이 없고 통치 전반이 합리적 수준에서 이뤄질 거라는 믿음을 유권자들에게 주는 게 중요하다는 거다.

이게 가능하려면 정치 전반에 대한 자기 메시지가 명확해야 한다. 보수가 어떻게 업그레이드 돼야 하는지 좌표를 제시해야 하고, 본인이 그걸 어떻게 달성할 수 있는지에 대한 로드맵이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그런 걸 제시한 바 없고, 오히려 120시간, 부정식품, 건전한 페미니즘, 아프리카, 치매환자 등 실언 시리즈도 제대로 해명되지 않고 있다. 그러기는커녕 입당한 지 십수년 된 사람처럼 행동하니 손바닥 왕자 논란이 커지는 거고 ‘무야홍’ 같은 현상도 일어나는 거다.

여당의 유력 대권주자 이재명 지사는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본선 직행을 거의 확정짓는 분위기다. 대장동 개발 의혹에도 이재명 지사 지지율이 흔들리지 않는 이유는 후보 본인이 비리에 직접적으로 관련됐다는 증거가 아직은 나오지 않았다는 점, 특유의 돌파력과 추진력이 다소의 흠을 덮는 캐릭터의 소유자라는 점, 여당 지지자들 입장에서 이제 와서 기수를 바꾸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점 등을 꼽을 수 있지만, 앞서 논란으로 보듯 보수정당의 유력 후보가 불안 요인을 안고 있다는 점도 함께 작용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

윤석열 전 총장과 이재명 지사는 지금 시점에선 적대적 공생관계인 것이다. 이 공생관계에서 먼저 탈출하는 사람이 최종 승자가 될 것이다. 그 타이밍을 찾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그러나 ‘임금왕’ 논란은 윤석열 전 총장이 그 타이밍을 찾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더하고 있다. 이게 이번 사건으로 보는 윤석열 전 총장의 가장 큰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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