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고성욱 인턴기자] ‘성적 수치심’이라는 표현이 피해자다움을 강요해 근절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해당 표현 대신 가해자 행위가 강조되는 표현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28일 한국여성민우회가 개최한 토론회 <‘성적 수치심’, 괜찮지 않습니다. 시민들의 목소리로 퇴장을!>에서 류벼리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설문 결과에 따르면 해당 용어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잘 쓰이지 않았다”며 “여성들은 ‘성적 수치심’ 용어가 자신 혹은 다른 사람의 피해 상황을 적확하게 설명하는 단어라고 느끼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여성민우회는 506명을 대상으로 ‘성적 수치심’ 용어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응답자 과반은 ‘성적 수치심’이 기사나 재판 판결문에서 사용되는 용어라며 여성들이 일상에서 쓰는 표현은 아니라고 답했다. ‘성적 수치심’ 표현을 일상에서 사용해본 적이 있다고 답변한 응답자는 일부에 불과했다.

‘성적 수치심’ 용어가 농담거리로 사용되고 있다는 응답도 있었다. 류 활동가는 “응답자들은 해당 용어가 ‘미투운동을 조롱거리로 삼을 때’, ‘성폭력의 폭령성과 심각성을 옅어지게 만들기 위해 희화화시키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고 밝혔다”며 “피해자의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가해자의 행위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피해를 단편화시키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류 활동가는 ‘성적 수치심’ 용어가 사라져야 할 이유로 ▲일상적 용어가 아니라는 점 ▲성폭력 피해 감정은 ‘부끄러움’이나 ‘당혹감’이 아닌 보다 다양한 감정이라는 점 ▲성차별에 기반한 단어라는 점 ▲사건 자체가 아닌 외부적 시선을 표현한 단어라는 점 ▲일상에서 희화화되어 사용되고 있는 점 ▲반페미니즘적인 단어라는 점 ▲피해 경험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단어라는 점 등을 꼽았다.

최원진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사무국장은 성폭력특별법 일부 조항이 개정된 것은 성과라면서도 여전히 법률에 ‘성적 수치심’ 단어가 핵심적으로 인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최근 양성평등정책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내부 일부 규칙에 있는 ‘성적 수치심’ 용어를 ‘성적불쾌감’으로 개정했다. 최 사무국장은 “공공기관에서 공식적으로 ‘성적 수치심’이라는 문구를 삭제한 것은 처음”이라며 “하지만 ‘성적 수치심’ 용어가 법에서 삭제된 것은 아니기에 한계는 여전하다”고 말했다.

최 사무국장은 “‘성적 수치심’은 여성들이 국가와 제도, 기존의 관습과 부딪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지적했다. 최 사무국장은 앞으로 필요한 변화로 ▲가해자 행위에 무게를 싣는 용어 설정 ▲판결문에서 성적 수치심 용어 사용 제한 ▲집단 내 성폭력 사건 해결 과정 점검 등이 있다고 설명했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 소장은 단순히 용어를 바꾸는 것은 답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권 소장은 “문제는 피해·차별 경험 자체가 아니라, 경험의 위치가 놓여지는 방식”이라며 “‘수치심’은 약자의 감정이다. 그러므로 수치심을 느껴야 인정해준다는 법 언어에 저항하는 동시에 공적인 장에서 성원권을 가지지 못한 이들의 감정과 경험이 보여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두나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성적 수치심’과 관련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성적 수치심은 수사·재판 과정에서 성폭력을 설명하고 판단하는 하나의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다”며 “자신의 피해 감정과 경험을 성적 수치심으로 표현하고 진술하는 것이 피해를 인정받기 용이한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김 변호사는 “성폭력 법적 판단에서 성적 수치심이 범죄 성립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다뤄지지 않는다면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 감정과 경험을 성적 수치심이라는 협소한 개념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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