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민영 지상파방송 소유·겸영규제 완화를 위한 논의에 착수했다. 첫 논의부터 규제 철폐론에 가까운 주장이 제시됐다. 그러나 언론시민사회는 규제완화의 명분인 민영방송 대주주의 콘텐츠 투자와 소유·겸영규제 완화의 인과관계가 설명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13일 방통위는 한국언론학회와 공동으로 '시청각미디어 시대의 소유·겸영규제, 쟁점과 대안은 무엇인가' 토론회를 주최했다. 방통위는 "방송법상 소유‧겸영규제는 대규모 자본과 특정사업자 등에 의한 언론의 독과점 방지, 방송의 다양성 구현 등을 위해 도입된 제도로 2008년 이후 큰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다"며 "그러나 최근 OTT 영향력 확대 등 미디어 시장의 변화가 가속화 되면서 이에 대한 재검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고 토론회 취지를 설명했다.

(사진=미디어스)

이어 방통위는 "이번 토론회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라며 "수렴된 의견에 대해 심도있는 논의를 거친 후 방송의 공공성과 공정성, 다양성을 제고하면서도 미디어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소유·겸영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근 대기업 집단으로 지정되는 민영방송 대주주가 늘어나면서 소유·겸영규제를 풀라는 요구가 이어져 왔다. 방송법상 지상파방송사의 대주주가 대기업 집단으로 지정되면, 이들 기업은 방송사 지분을 매각하거나 다른 계열사를 매각하는 등의 방법으로 자산규모를 줄여야 한다. 현행법상 대기업 집단 지정 기준은 자산총액 10조 원 이상 기업이다. SBS·KBC(광주방송)·UBC(울산방송)의 대주주인 TY홀딩스·호반건설·삼라마이더스그룹(SM그룹)이 이에 해당된다.

이들 기업의 요구는 규제완화다. 방송법 시행령 제4조는 '자산총액 10조원 이상'의 대기업을 소유제한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 시행령 조항을 완화해달라는 요구다. 글로벌 OTT 기업이 국내 시장에 진입하면서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고 있는 반면 한국은 소유‧겸영규제에 자본력이 있는 기업들의 방송사 소유가 가로막혀 콘텐츠 투자를 원활하게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는 게 주요 논리다.

토론회 발제를 맡은 김용희 오픈루트 전문위원은 대기업 소유제한은 물론 1인 지분율 제한, 외국자본 제한 등 지상파 소유·겸영 규제를 사실상 철폐하자고 주장했다. 김 전문위원은 "소유·겸영규제는 100% 자율에 맡기고, 사후적으로 방통위가 관리하면 된다. 지분도 섞고 자본도 확충할 수 있어야 유의미한 경쟁자로서 (민영방송사가)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며 "개인 소견이지만 모든 소유·겸영규제는 다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13일 방송통신위원회와 한국언론학회가 공동 주최한 '시청각미디어 시대의 소유·겸영규제, 쟁점과 대안은 무엇인가' 토론회에서 김용희 오픈루트 전문위원이 발표하고 있다. (사진=방송통신위원회 유튜브 채널)

김 전문위원은 "우리나라 10조 이상 대기업이 넷플릭스 등과의 규모를 검토하면 과연 큰 기업인가"라며 "아주 기초적인 법들 때문에 시도조차 못하는 상황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 전문위원은 "우리나라 GDP는 빠르게 성장 중이고, 초국가적 미디어기업의 출현으로 서비스 경쟁이 일어나고 있다"며 "이제는 국가 단위의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요즘같은 시절에 지분제한 규제가 무슨 필요가 있나"라고 밝혔다. 다만 김 전문위원은 대기업 기준을 20조원으로 늘리거나, GDP의 1% 수준으로 연동해 설정하는 내용을 대안으로 제안했다.

윤호상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최다액출자자 사업규모 확대 등으로 방송산업과 연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자 퇴출이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며 대기업의 소유제한 자산총액 기준을 17~20조원 수준으로 변경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변호사는 "2008년 10조원 상향 당시와 비교해 GDP가 75% 성장했다. 지금은 17조원이 되는 게 수치적으로 맞다"며 "2008년 10조원 이상 기업은 17개였는데 2019년도에는 34개다. 17개 기업이 기준이라면 20조원으로 시행령 개정을 시급하게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언론시민사회 관계자들은 대기업의 방송사 지분과 콘텐츠 투자는 비례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김동원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협력실장은 "현재 사업자 지분구조나 미디어전략을 고려하면 쉽게 허용하기 어렵다. 과연 이들 기업이 콘텐츠 투자를 위한 다양한 플랫폼 수익전략을 만들고, 투자유인을 제공할 것인가"라며 "분명한 건 방송법상 소유제한과 대주주의 콘텐츠 투자 부분은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분은 출자를 말하고, 콘텐츠 투자는 전혀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동원 실장은 "태영이 2011년부터 재산총계 10조원에 가까이 이르는 동안 SBS 오리지널 콘텐츠 투자는 4600억원에서 5300억원으로 9년 간 15% 밖에 증가하지 않았다"면서 "9개 지역민방을 보더라도 9년 동안 방송사업매출액과 프로그램 제작비 변화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기업들이 방송사 지분을 유지하려는 이유를 '무형의 이익', '사회적 자원'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지역민방 회장이 새로 취임하면 꼭 그 지역의 상공회의소 의장이 되고, 개발협의회 회장이 되고, 연례 때 국회의원 만나 인사를 한다"며 "결국 방송사라는 게 수익이 아니라 기업집단을 가진 대주주가 자신의 사회적 자본과 지위를 확대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사주에게만 유리한 소유규제 완화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라고 밝혔다.

김동원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협력실장(왼쪽), 한석현 서울 YMCA 시청자시민운동본부 팀장 (사진=방송통신위원회 유튜브 채널)

한석현 서울YMCA 시청자시민운동본부 팀장은 "오늘 발표가 규제철폐 쪽으로 이뤄져 당황스럽다. 규제완화와 철폐는 완전히 다르다"면서 "규제가 완화됐을 때 방송사를 운영하는 최다액출자자나 대주주의 변화 없이 방송이 안정적으로 돌아가서 좋은 점이 있는 반면, 지금도 방송사유화나 거짓으로 허가를 받는 등 별의별 일이 다 있다"고 지적했다.

한 팀장은 "기본적으로 방송사가 변하지 않기 때문에 단순히 경제규모와 시장상황이 달라졌다고 해서 사전규제가 철폐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의문이 든다"며 "지금의 소유·겸영규제가 잘 작동되었는지부터 먼저 진단할 필요가 있다. 방송사 매각과 규제완화를 언급하는 사업자들이 미래비전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사회적으로 점검할 수 있는 보완책을 만들어야 규제완화 등을 논의할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또한 김 실장과 한 팀장은 'OTT 시장 활성화에 따른 소유·겸영규제 완화'라는 토론 전제에 대해 의문을 나타냈다. 김 실장은 "서로 수익모델이 다른 레거시미디어 시장과 플랫폼 OTT시장이 서로 획정·구분될 수 있는가"라며 "또 언제나 정부는 규제완화를 통해 통 큰 미디어그룹을 만들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겠다고 말하는데, 북미·유럽시장 경쟁을 말하는 건가, 아니면 국내 글로벌OTT와의 경쟁을 말하는 건가"라고 물었다. 글로벌 경쟁을 위한 방안으로 소유·겸영규제 완화는 타당성이 없다는 비판이다.

한 팀장은 "규모의 경제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소유·겸영규제를 완화하면 우리 미디어그룹들이 정말 국내에서 경쟁력을 가지고, 해외까지 진출해서 성장할 수 있는 것인가"라며 "정책목적이 뚜렷하지 않아 규제를 왜 철폐해야하는지 의문이 든다. 규제완화로 시청자의 문화향유 기회 확대라는 목적이 달성될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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