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지 '밀레니엄'의 기자인 미카엘은 한 대기업이 무기밀매에 관련됐다고 보도했다가 도리어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합니다. 이 재판에서 패소해 사면초가에 몰린 상태에서 한 남자가 접근해 사건을 의뢰합니다. 그는 한때 대기업 총수였던 헨리크 방예르인데, 각별한 애정을 가졌으나 40년 전에 갑자기 사라진 손녀를 잊지 못해 미카엘을 고용합니다. 조사에 착수한 미카엘은 방예르 가문의 구성원들에게 미심쩍은 구석이 많다는 사실을 알아차립니다. 이내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파헤치기에는 버거워지자 탁월한 해킹 솜씨를 지닌 리스베트를 조수로 불러들여 함께 일을 진행합니다.

데이빗 핀처의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스티그 라르손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모국인 스웨덴에서 이미 2009년에 영화화가 됐습니다. 그걸 할리우드에서 재차 영화로 제작했습니다. 이 얘길 들으면 자연스레 한 영화가 떠오르지 않나요? 그건 바로 2010년에 국내에 개봉했던 맷 리브스의 <렛 미 인>입니다. <렛 미 인> 역시 욘 아이비드 린퀴비스트의 소설이 원작이었고, 스웨덴에서 먼저 2008년에 토마스 알프레드슨의 연출을 통해 영화로 제작했었죠. 둘 다 국적이 같은 걸 보면 최근에 할리우드가 스웨덴을 주목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군요.

그와는 별개로 이 대목에서 맷 리브스의 <렛 미 인>이 개봉했을 때와 같은 의문을 가질 법도 합니다. 데이빗 핀처의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스웨덴 버전의 리메이크일까요, 아니면 동일한 원작을 가진 독자적인 영화일까요? 관람하고 난 지금은 후자에 가까워 보입니다만, 뭐 정답이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이래나 저래나 결국 두 영화는 저울에 올라가게 될 테니까요. 사실 저도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을 보면서 스웨덴 버전과는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주목했습니다. 언제나 성미가 급한 분들을 위해 결론부터 던지자면, 두 영화의 색깔은 적잖이 다릅니다.

미국 박스 오피스 등에서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을 언급하면서 스웨덴 버전은 "미스터리나 스릴러보다는 드라마에 더 가깝다"라고 했습니다. 가급적 평이한 흐름을 유지하고 있어 개인적으로 조금 심심했던 터라 할리우드 버전을 기대했습니다. 감독이 다름 아닌 데이빗 핀처고, 그에게는 <세븐>과 <조디악>이 있었잖습니까. 최근작 <소셜 네트워크>만 해도 미스터리의 유전자가 듬뿍 담겨 있었죠. 따라서 데이빗 핀처가 빚는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제가 스웨덴 버전을 보며 갈구했던 부분을 충족시켜줄 수 있을 것이라고 봤습니다. 다행히 이 기대는 적중했습니다.

할리우드 버전의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타이틀 시퀀스부터 'Directed by David Fincher'를 역력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말인즉슨 액면 그대로 'A David Fincher Film'이라는 글자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뮤직 비디오 감독 출신답게 자극적이고 파격적인 화면으로 구성됐다는 의미입니다. 007 시리즈 특유의 영상미가 가미된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의 타이틀 시퀀스는, 삼부작으로 구성된 원작 전체를 채 3분도 되지 않는 시간에 함축하여 담아내고 있습니다. 보통 감독이 타이틀 시퀀스까지 작업하진 않지만 그가 전혀 관여하지 않았을 리는 만무할 겁니다. 레드 제플린의 명곡 <The Immigrant Song>을 '나인 인치 네일스' 스타일로 리메이크한 것도 영상과 절묘하게 어우러졌습니다.

물론 달라진 것은 타이틀 시퀀스만이 아닙니다. 강렬한 영상을 선사한 도입부를 지나면 스웨덴 버전과는 약간 다른 인상의 미카엘을 만나게 됩니다. 전 처음에 다니엘 크레이그가 미카엘을 연기한다고 했을 때 의구심을 품었습니다. '제임스 본드'로 각인된 그의 이미지가 선뜻 미카엘과 겹쳐지지 않았거든요. 막상 영화를 보자 데이빗 핀처가 왜 그를 택했는지 금세 알 수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스웨덴 버전의 미카엘이 강직하지만 부드러운 외유내강형이라면, 할리우드 버전의 그는 보다 단호하고 과감한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재판에서 지고 나오는 미카엘을 보면 둘이 확연하게 대비됩니다.

이처럼 할리우드 버전의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이 캐릭터 묘사입니다. 원작을 읽지 못해 아쉽습니다만, 데이빗 핀처와 스티븐 자일리언은 스웨덴 버전과는 사뭇 다른 캐릭터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할리우드 버전은 미카엘과 리스베트를 스웨덴 버전보다 한결 다층적인 캐릭터로 그립니다. 예를 들어 미카엘은 자신의 신념을 따르는 곧은 의지를 가진 기자지만 편집장과 불륜관계를 맺고 있어 도덕적으로 불완전한 자입니다. 그의 이러한 진면을 할리우드 버전의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스웨덴 버전보다 더 직접적으로 관객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리스베트는 한술 더 뜹니다. 이 시리즈의 주인공은 두 명이지만 삼부작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이야기의 핵심에 놓인 인물은 어디까지나 리스베트입니다. 그만큼 중요한 캐릭터를 할리우드 버전이 다루는 방식은 스웨덴 버전에 비해 꽤 독특합니다. 스웨덴 버전은 리스베트의 여성성을 거의 완벽하게 거세한 채로 독립적이고 거침없으며, 때로는 육박전도 불사하는 다혈질에 호전적인 성향을 지닌 남성성을 부각시켰습니다. 예컨대 동성과의 관계에서 리스베트는 남성 역할임이 틀림없어 보이는가 하면 '겨털'을 제모하지도 않았습니다. 별안간 미카엘을 덮친 후에 보여주는 태도는 또 어떻고요. 심지어 이튿날 아침에 식사와 커피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은 리스베트가 아니라 미카엘입니다.

데이빗 핀처의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또한 기본적으로 리스베트를 남성성으로 포장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합니다. 외모도 여전히 고스룩을 하고 있고요. 하지만 스웨덴 버전과는 달리 여성성을 깨끗하게 지우고 남성성만을 대두시키진 않습니다. 이건 특정 장면을 비교하면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두 영화 모두에는 리스베트가 지하철에서 해코지를 당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스웨덴 버전은 서너 명의 남자가 시비를 걸고, 할리우드 버전은 한 명의 남자가 가방을 훔쳐 달아납니다. 여기서 리스베트의 대응이 각 영화가 이 캐릭터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를 대변합니다. 전자에서는 겁도 없이 미친개처럼 달려들면서 악을 쓰지만, 후자에서는 가방만 되찾은 채로 얼른 자리를 피하죠. 또한 앞에서 말한 갑작스런 섹스에서의 체위도 그렇고, 이후에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스웨덴 버전과 달리 리스베트가 아침식사를 준비합니다.

더 나아가 그녀는 강하고 두려울 것이 없는 존재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확실히 스웨덴 버전의 리스베트는 뼛속까지 분노와 증오가 가득한 여자로 보입니다. 반면에 할리우드 버전은 그와 더불어 홀로 살아가기 위해 내면에 간직한 불안과 공포를 스스로 부정하면서 애써 감추려고 하는 인물에 가깝습니다. 이것을 드러내기 위해 할리우드 버전이 삽입한 일부 장면, 그러니까 후견인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리스베트가 보이는 반응과 그를 찾아가 대화하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습 등은 스웨덴 버전에서는 없었던 장면입니다. 아예 이 후견인은 등장하지조차 않았습니다.

데이빗 핀처의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에서 보이는 이와 같은 리스베트의 이면은 '유약한 여성성'보다는 '불안정한 유아성'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할 수도 있겠습니다. 실제로 극 중에서는 리스베트가 굳이 '해피밀'을 먹는 장면이 몇 차례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복합적인 심리를 그린다는 의미에서 할리우드 버전의 리스베트는 <렛 미 인>의 뱀파이어 소녀를 연상시킵니다. 아울러 미카엘과 리스베트의 관계에는 좀 더 유대감이 깃들어 있습니다. 이는 리스베트가 미카엘의 남성성에 끌렸다기보다는, 그를 믿고 의지하거나 자신을 품어줄 수 있는 존재, 즉 결핍된 부성애를 향한 갈구가 만든 결과로 읽힙니다. 그리고 이것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가서 아주 큰 효과를 발휘하게 됩니다.

스웨덴 버전과 할리우드 버전이 묘사한 리스베트는 각기 다르지만 둘 다 설득력이 있습니다. 관점과 해석에서 생긴 이견일 뿐이라 캐릭터의 성장과정을 헤아리면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 힘들 정도로 나름의 매력과 당위성을 갖췄습니다. 연출 톤을 보면 왜 이렇게 다른 것인지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죠. 다만 제가 방금 "둘 다 설득력이 있다"라고 한 것은 이미 스웨덴 버전을 봤기 때문입니다. 할리우드 버전은 리스베트가 이런 캐릭터를 형성하게 된 배경을 부연하려는 노력이 부족합니다. 일례로 리스베트의 과거를 플래쉬백으로 삽입하지 않은 것이 대표적입니다. 이는 아마도 자신들이 리스베트에게 부여한 여성성(유아성)을 보호하기 위한 방책이었을 듯합니다. 특히 살인마를 처단하는 과정의 차이점에서 이것이 명백하게 보입니다. 둘 다 결과는 같지만 스웨덴 버전은 적극적으로 개입시킵니다. 반면에 할리우드 버전은 한 발 물러서게 하는데, 이걸 보면 스티븐 자일리언이나 데이빗 핀처는 리스베트를 굉장히 애지중지하는 것만 같습니다.

캐릭터 외에도 스웨덴 버전과 할리우드 버전을 비교할 수 있는 점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공간배경만 하더라도 두 영화가 카메라에 담아 활용하는 방식이 아주 다릅니다. 둘 다 같은 나라에서 촬영했지만 전자에서의 스웨덴은 쓸쓸하고 적막했다면, 후자에서의 그곳은 황량하고 으스스한 분위기가 물씬하죠. 물론 이것은 할리우드 버전과 스웨덴 버전이 각각 지향하고 있는 장르적 틀에 공간배경을 충실하게 맞춘 데서 온 차이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이 또한 어느 쪽이 더 훌륭하게 묘사했는지를 논할 것은 못 됩니다. 서두에서 말씀 드렸듯이 두 영화는 색깔이 적잖이 달라 직접적인 비교는 큰 의미가 없고, 다행히 각 개성이 모두 맘에 들어 우열을 가늠하긴 쉽지 않습니다. 유감스럽게도 딱 하나만 제외하면 그렇습니다.

데이빗 핀처의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에서 돋보이는 건 단연 미스터리와 스릴입니다. 컷을 정교하게 쪼개 이어붙인 편집과 카메라 워킹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면서 그는 본인의 장기를 마음껏 발휘합니다. 트렌트 레즈너와 아티쿠스 로스의 음악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와 더불어 헨리크의 손녀가 사라졌을 당시의 상황을 플래쉬백으로 자주 삽입하고, 우연찮게 그녀가 찍힌 사진을 연결해 흐릿한 기억을 투사한 영상처럼 보이게 하며, 공간배경을 활용하는 것 등에서 데이빗 핀처의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미스터리와 스릴이 전면에 나섭니다. 미카엘이 궁지에 빠진 순간을 묘사하는 것에도 공을 들이고 있어 훨씬 살벌합니다. 그 와중에 잠시지만 1인칭 시점으로 보여준 것도 효과적이었죠. 이것이 할리우드 버전이 스웨덴 버전에 비해 갖는 장점이라면, 단점은 역시 서사의 깊이입니다.

원작자인 스티그 라르손은 기자 출신답게 스웨덴의 암면을 소재로 자신의 책을 썼습니다. 기업비리, 가정폭력, 여성학대, 나치주의, 신앙숭배 등을 하나의 줄기로 엮어 '북유럽의 복지천국'이라는 스웨덴의 이미지와 대립하는 이야기를 만들었죠. 이건 책을 읽지 않아도 스웨덴 버전의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만 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바입니다. 그만큼 영화에 잘 녹여져 있었다는 의미인데, 동일한 기준에서 할리우드 버전은 상대적으로 조금 회의적입니다. 아무래도 서사가 영상미와 그 영상미를 앞세운 장르적 효과에 묻힌 모양새를 갖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데이빗 핀처의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할리우드 버전이 보여줄 수 있는 최상급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에서 자기만의 관점을 유지하면서도 경솔하지 않았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더 많이 남아 있지만 벌써 지나칠 정도로 길어졌으니 이만 줄이겠습니다. 아무튼 재미있고 괜찮은 영화입니다!

★★★★

덧 1) '나인 인치 네일스'는 오래 전부터 트렌트 레즈너가 조직하여 활동하고 있는 그룹입니다. '인더스트리얼 록'이라고 하는 장르를 연주하는데,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의 타이틀 시퀀스에 쓰인 곡이 나인 인치 네일스의 음악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참고로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마릴린 맨슨을 발굴한 사람이 바로 트렌트 레즈너입니다. 어쩌다 보니 국내에서는 그보다 덜 유명하지만 이쪽 장르를 대표하는 뮤지션 중 한 명입니다.

덧 2) 데이빗 핀처는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의 마지막 장면에서 리스베트를 <소셜 네트워크>의 마크 주커버그와 동일선상에 놓습니다. 최근에는 현대자본주의사회에서 인간이 겪는 고독에 관심이 많은 걸 수도 있겠습니다.

덧 3) 사건을 해결한 후에는 에필로그가 이어집니다. 그건 스웨덴 버전도 동일한데 할리우드 버전은 유독 장황하게 묘사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의 리스베트의 퇴장이 더욱 처연하게 비칩니다. 약간 다른 의미에서 애지중지한 것이죠.

덧 4) 누미 라파스가 연기한 리스베트와 루니 마라가 연기한 리스베트가 보이는 구도는 잭 니콜슨이 연기한 조커와 히스 레저가 연기한 조커의 그것과 같습니다. 둘 다 조금씩 다른 캐릭터에 부합하는 훌륭한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덧 5) 맷 리브스의 <렛 미 인>과는 달리 이 영화를 반드시 스웨덴에서 촬영을 해야 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더군다나 원작과 동일한 이름을 가진 캐릭터가 나오지만 영어를 구사한다는 것도 불합리하지 않나요? 루니 마라의 경우에는 굳이 스웨덴 억양과 발음으로 말을 하면서까지 말입니다. <아키라>를 실사영화로 제작한다고 발표하면서는 캐릭터 이름을 그대로 가져가면서도 죄다 백인배우를 기용해서 인종차별 논란이 있었습니다. 참 희한한 고집이죠?

덧 6) 흥행에서 썩 성공적이진 않지만 제작사인 소니는 나머지 두 편도 영화화를 진행할 의사를 갖고 있습니다. 이건 좀 의외의 반응입니다.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한 편으로 끝내도 괜찮은 형태거든요. 할리우드 버전은 특히 그런데, 덕분에 만약 속편을 만든다면 할 이야기는 풍성하겠군요. 데이빗 핀처가 계속 이어갈지는 미정입니다.

덧 7) 전작에 이어 이번에도 전 데이빗 핀처의 연출 이상으로 트렌트 레즈너와 아티쿠스 로스의 음악이 맘에 듭니다.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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