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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EIDF] 두 번의 오스카상, 이제 더는 증명할 필요가 없다[미디어비평] 톺아보기
미디어평론가 이정희 | 승인 2021.08.31 14:33

[미디어스=이정희] 그 배우의 이름은 모를 수도 있지만 최소 한 편 이상 그의 작품을 보지 않았을까? 1992년 <양들의 침묵>에 이어 2021년 <더 파더>로 두 번의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을 거머쥔 배우 안소니 홉킨스가 그 주인공이다. 

수상은 두 번이지만 2020년 <두 교황>, 1996년 <닉슨>, 1994년 <남아있는 나날> 등 후보에 오른 것만도 수차례이다. 조연상에 노미네이트 된 걸로 치면 더 많다. 물론 그의 말대로 늘 '수상작'에만 출연한 것도 아니다.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 등 최악의 영화에 수여되는 골든 라즈베리상도 두 번이나 수상했다. 1937년생,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그답게 필모그래피의 작품이 90편을 넘는다. 

2021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 <한니발 홉킨스와 안소니 경(Hannibal Hopkins & Sir Anthony)>

안소니 홉킨스를 처음 알게 된 건 1972년 BBC가 제작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드라마를 통해서였다. 우리나라에서 방영된 이 작품에서 안소니 홉킨스는 주인공 피에르 역을 맡았다. 장편 미니 시리즈 남자 주인공, 더구나 극 중 나타샤를 비롯한 두 여인의 사랑을 받는 남자 캐릭터인데 첫 등장에서 그는 곰돌이 푸가 연상되는 통통한 모습이라 그다지 매력을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첫인상과 달리 회를 거듭하며, 전쟁에 휘말린 조국에 대해 깊게 고뇌하는 젊은 피에르의 내면을 안소니 홉킨스는 절실하게 설득해 냈다.

'입덕'이라면 입덕이랄까. 그가 <양들의 침묵>으로 세간에 그 이름을 떨치기 전 복화술사로 등장한 <매직(1978)>과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엘리펀트맨(1980)>도 챙겨보았었다. 여전히 고뇌하는 눈빛의 연기는 대중적이지 않은 주인공 캐릭터들을 충분히 이해시켰었다. 

그 오랜 덕심의 끝에 2021 EIDF [클로즈업 아이콘] 부문 <한니발 홉킨스와 안소니 경>을 만나게 되었다. 그가 일생에 걸쳐 한 인터뷰, 영화 클립들을 재편집하는 형태로 제작된 다큐를 통해 대배우 안소니 홉킨스를 넘어, 평생 자신과 싸우며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애썼던 한 '인간'을 만나게 된다.

난독증의 아이, 햄릿을 연기하다

2021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 <한니발 홉킨스와 안소니 경(Hannibal Hopkins & Sir Anthony)>

안소니 홉킨스의 연기는 그의 형형한 눈빛이 앞서지만, 그 못지않게 영국식의 정확한 발음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그런 그가 '도망치고 싶었다'며 스스로 부끄러워하던 난독증에, 공부도 못하는 아이였다는 사실이 쉬이 믿어지지 않는다. 

영국 남웨일스 제빵사 집안 외동이로 태어난 안소니는 아버지가 '뭔가 잘못됐다'고 대놓고 말할 정도로 부모 기대에 못 미치는 아이였다. 학교에 들어가서 남과 다르다는 사실에 아이는 스스로 분노한다. 스스로 ‘과대망상증에 이기주의자’라고 냉정한 잣대를 들이대는 배우. 무대 중심에 서고 싶어 배우가 되고 싶었지만, 그랬기에 더욱 어린 시절 남들보다 못한 자신의 모습에 한없이 자괴감을 느꼈고 그 '분노'가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말한다. 

남들보다 못하다는 분노를 소년은 어떻게 발산했을까? 부모님과 일주일에 한두 번 극장을 다녀온 소년은 대본을 통째로 외웠다. 그 '습관'은 그가 할리우드에서 인정받은 노년에 이르기까지 달라지지 않는다. 스스로 분석력이 떨어진다고 말하는 배우. 그는 언어가 가진 힘을 믿고 대본을 외우고 이해하는 것이 연기의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완벽하게 외우면 자신감이 생기고 무슨 연기를 해야할지 '감'이 생긴다는 것이다. 

젊은 시절 영국 연극계의 대표적인 배우였던 로렌스 올리비에의 대역으로 시작해서 '햄릿' 역을 따냈지만, 평생 햄릿이나 하면서 타이즈를 입기는 싫었단다. 극단, 연극계 등의 조직적인 사회적 관계와 맞지 않는 그의 성격도 한 몫 했다. 거기에 성공, 명성에 대한 욕심이 더해져 그는 영화로 방향을 틀었고, 37세 즈음 할리우드를 노크했다. 하지만 꿈의 도시 할리우드가 대번에 그를 두 팔 벌려 환영했던 건 아니다. 스스로도 술을 마시고 촬영장을 뛰쳐나가는 등 방만한 삶에 쇠진되고 있었다. 

60세에 맞이한 전성기 

2021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 <한니발 홉킨스와 안소니 경(Hannibal Hopkins & Sir Anthony)>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햄버거 맛을 느끼지 못해서 약을 끊었다는 전설적인 경험담처럼, 그는 '술을 끊지 않으면 모든 걸 잃겠구나'라는 깨달음만으로 단호하게 끊는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결심을 지키며 노익장의 활약을 보이는 중이다. 

그가 당도한 할리우드는 당시만 해도 금발 여자나 잘생긴 남자가 주인공을 맡던 시절이었다. 그런 그에게 주어진 역할은 <양들의 침묵>의 렉터 교수처럼 광기 어린 인물이거나 괴물, 독재자 등 이른바 '성격파 배우'의 캐릭터들이었다. 그러나 안소니 홉킨스는 그런 캐릭터들의 연기를 통해 자신의 내면이 지난 어둠에 다가갈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런 연기를 하지 않았다면 어둠이 드러워진 자신을 갉아먹으며 살았을 것이라는 솔직한 고백을 덧붙이며. 

그가 늘 이상 성격자들만 연기하는 건 아니다. <남아있는 나날>의 노집사와 같은 캐릭터도 안소니 홉킨스의 또 다른 장기이다. 그는 그런 '억압된 인물' 역시 홀로 지내는 것에 전혀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내성적이고 비사교적인 자신과 닮은 캐릭터라고 말한다. 또한 늘 점잔 빼는 영국인에 내재된 억눌림의 자연스런 발로가 아닐까라는 예리한 '농담'도 빼놓지 않는다. 

2021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 <한니발 홉킨스와 안소니 경(Hannibal Hopkins & Sir Anthony)>

60세, 단 20분 출연한 <양들의 침묵>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고 나서야 비로소 안소니 홉킨스는 '이제 형편없는 영화를 해도 되겠구나'라며 안심했다고 말한다. 그 말인즉 그때서야 할리우드가 자신을 인정했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최고의 개런티를 받는 현역 배우. 1993년 '경(SIR)'이라는 호칭이 붙는 기사 작위까지 받은 배우지만, 빵을 만들던 아버지처럼 그저 자신도 평범한 직업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대배우는 소박하게 말한다. 부족하기 한량없던 유년기를 돌아보기 싫어 자서전조차 쓸 수 없다는 배우는 솔직하게 '성공'이 좋다고 말한다. 

57세, 앞으로 더 풍요로운 삶을 살 것이라고 스스로 했던 예언답게 안소니 홉킨스의 전성기는 60세 <양들의 침묵> 이후부터였다. 실전으로서의 인생, 그 과정을 통해 어린 시절 스스로에게 씌웠던 멍에를 벗겼다고 자평하는 배우. 그는 이제야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봐, 넌 멍청한 게 아냐. 그저 남들과 다를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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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평론가 이정희  5252-j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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