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더불어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 8월 내 처리’ 계획이 사실상 무산됐다. 국민의힘이 31일 자정까지 필리버스터를 실시하면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9월 정기국회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30일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본회의에 법안을 상정하면 필리버스터는 물론, 법적·정치적 투쟁을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은 이날 오후 의원총회를 열고 국민의힘과 협의를 거친 후 언론중재법 개정안 본회의 상정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최고위원회에서 “(보도 내용이)진실하다고 믿어질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으면 면책된다”며 “민주당은 절대 독선적으로 뭔가를 하지 않는다. 충분히 의견수렴을 하겠다”고 밝혔다. 송 대표는 “의원총회도 하고 언론단체도 만나고 있다”며 “30일 저녁 MBC 100분 토론에 나가 소상히 말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강행처리 방침에 대해 반대하고 있는 국민의힘 의원들 (사진=연합뉴스)

고용진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최고위원회 백브리핑에서 “당 지도부의 입장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상정해 처리하는 것”이라면서 “하지만 (민주당 내부에서) 절차상 문제를 제기하고, 숙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의견이 많이 나왔다. 의원총회, 양당 협의 과정을 본 후 다시 한번 브리핑하겠다”고 밝혔다. 고 대변인은 “의원총회를 거쳐 예정대로 갈 것인지, 수정안을 내서 국민의힘과 합의를 할 것인지, 연기할 것인지 등을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본회의에 상정되면 필리버스터를 실시하겠다는 입장이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 정문에서 열린 ‘언론독재법 철폐를 위한 범국민 필리버스터 투쟁’에서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운동해온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말살해가는 주역이 돼가고 있다”며 “만약 본회의에 법안을 상정한다면 오늘, 내일 이어지는 필리버스터는 물론이고, 그 이후 법안 공포와 시행 모든 과정에서 법적투쟁은 물론이고 정치적 투쟁도 반드시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의당·국민의당은 필리버스터에 동참하겠다는 입장이다. 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는 같은날 "기본적으로 반대 의견을 내왔기 때문에, 필리버스터를 하면 정의당도 할 것"이라고 했다. 권은희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국민의당은 국민의힘, 정의당과 공조해 개정안이 상정되면 필리버스터에 함께 참여해 국민께 개정안의 위헌 문제, 개정안이 언론 자유를 침해하는 것에 대해 알리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야당이 필리버스터로 벌 수 있는 시간은 이틀에 불과하다. 국회법에 따르면 필리버스터로 인해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가 지연될 경우, 개정안은 9월 1일부터 시작되는 정기국회 첫 안건으로 접수돼 표결에 부쳐지기 때문이다. 이에 국민의힘은 권한쟁의심판, 위헌 심판 청구 등 법적 대응을 함께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한겨레·경향신문은 30일 사설에서 언론중재법에 대한 숙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겨레는 사설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언론중재법 재숙고’ 선언하라>에서 “일부 강경파 의원과 강성 지지층 목소리에 휘둘려 강행 처리를 고집하는 민주당 지도부는 주위를 둘러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지금 민주당 옆에는 아무도 없다”며 “이제 조급함을 버리고 숙고의 시간을 가질 때다. 언론단체들이 제안하고 시민사회도 지지하는 ‘사회적 합의기구를 통한 논의’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썼다.

경향신문은 사설 <진정한 언론개혁의 의미를 되돌아볼 때다>에서 “민주당은 우려의 목소리를 외면한 밀어붙이기를 멈추고, 지금이라도 언론개혁의 취지를 온전히 살릴 수 있도록 집단지성을 모아야 한다”며 “언론에 의한 피해를 막으면서 모두를 위한 언론자유도 신장하기 위해 지금은 큰 밑그림부터 그려야 할 때다. 언론중재법 개정안 강행 처리는 이를 위한 기회를 민주당 스스로 걷어차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당초 민주당은 언론중재법 개정안 8월 내 처리를 못 박았다. 윤호중 원내대표는 이달 초 언론 인터뷰에서 “8월 본회의까지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처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7월 27일부터 이달 25일까지 약 한 달 동안 언론중재법 개정안 속도전에 나섰다.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문체위 안건조정위원회, 문체위 전체회의,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등 입법 절차를 한 달 사이에 마무리했다.

24일 국회에서 열린 ‘언론중재법 개악은 언론개혁이 아니다’ 기자회견 (사진=미디어스)

민주당은 25일 국회 본회의에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상정해 처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법안을 법사위 통과 당일 본회의에 상정하는 것은 국회법 위반”이라고 지적했고, 박병석 의장이 이를 수용하면서 본회의가 30일로 연기됐다. 국회법에 따르면 법사위를 통과한 법률은 하루 이상 지나야 본회의에 상정될 수 있다.

이후 시민사회단체, 국제언론단체의 비판이 이어졌다. 방송기자연합회·전국언론노동조합·한국기자협회·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한국PD연합회 등 언론현업 5단체는 사회적 합의기구인 ‘언론과표현의자유위원회’ 출범을 제안했다. 국경없는기자회는 25일 “(언론중재법 개정안에는) 허위 정보에 대한 상세한 정의가 포함돼 있지 않고 허위·조작 여부와 가해자의 고의·악의를 판단할 만한 시스템에 대한 해석이 없다”면서 “언론 압력의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박용진, 오기형, 이용우 의원은 26일 열린 민주당 국회의원 워크숍에서 ‘속도조절론’을 제기했다. 박용진 의원은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이 국정 운영을 독단적으로 한다는 프레임이 걱정된다”고 밝혔다. 이상민 의원은 SNS에서 “개정안은 현저하게 언론의 책임을 가중함으로써 언론의 자유를 크게 위축시킬 소지가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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