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8일, 일요일입니다. 작년 12월 26일,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 본부’라는 이름으로 나온 성명서를 프린트해 읽어 봅니다. 내가 속한 언론연대를 '탕아'로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그냥 피식하고 웃어 넘겼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 서글프기 짝이 없습니다. 누워서 침 뱉기인 것 같습니다. 누구로부터는 ‘엠빠’'라 놀림 받기도 했습니다. 웃어 넘겼습니다. 무슨 상관있습니까? 맞습니다. 누구보다도 MBC의 공영성 사수를 위해, 당신들과 함께 싸워왔습니다. 누구보다 많이 쓴 욕도 했지만, 그래도 그 기저에는 당신들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 깔려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황우석과 광우병 사태 때도 그랬지만, 사실 그 외에도 늘 그러했습니다. 당신들이 더 잘 알 것입니다.

그래서 성질 같아서는 당장 지랄하고 싶었습니다. 당신들이 쓴 논평에 버금가는 욕설로 가득 찬 글을 써갈겨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글을 멈춥니다. 흥분을 다스립니다. 대신에 운동의 ‘대의’를 다시 생각해 보고, 당신들 ‘동지’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려 봅니다. 요즘 미디어운동장의 꼴이 참으로 요상합니다. 안팎에서 비판이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엇보다 운동장을 지켜왔고 또 앞으로 운동의 원칙을 지켜가야 할 입장에서,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봅니다. 당신들의 입장이 한번 되어보기도 하고, 서울 MBC 노동조합과 그 구성원들의 판단을 이해해보려 하기도 합니다.

당신들도 어찌 고민이 없겠습니까? 지금 당신들의 고민 또한 미디어운동장 내 동지적 이해와 연대적 신뢰의 회복이라는, 보다 대승적인 차원에 맞춰져 있지 않을까요? 불신을 초래하고 갈등을 부추기는 적이 있습니다. 그 악의적이며 우리보다 훨씬 강고한 세력에 맞서, 오랫동안 다져진 대의와 명분 그리고 원칙으로서, 다시 건강한 운동체와 보다 강고한 운동력을 회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시대의 요구이자 시민들의 명령이지 않겠습니까? 이 고민을 공유한다면, 어찌 얕은 오해와 작은 유감을 툭툭 털어내지 못하겠습니까? 보다 솔직한 대화와 통 큰 합의가 또다시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최근 나온 MBC 기자회의 성명을 찬찬히 읽어봤습니다. 1월 6일자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가 내놓은 ‘김재철 사장은 미디어렙 책임지고 물러나라!’라는 성명서도 프린트해 봅니다. 절반 정도 썼던 칼럼을 쫙 찢어 버렸습니다. 새삼 ‘운동’과 ‘연대’, ‘동지’라는 말을 떠올립니다. 당신들이 비판한 언론연대의 대표로서, 현 운동의 내용과 향후 운동의 철학에 대해 크게 책임을 진 당사자의 입장에서, 스스로 돌아보고 주변을 살펴보려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글을 다시 씁니다. 만나자, 대화하자. 서로를 이해하고, 상대를 인정하자. 그래서 더 뜻을 확인하고, 큰 적에 맞서자. 이렇게 호소하려 합니다.

대단히 위급한 시간입니다. 적의로 똘똘 뭉친 권력 동맹의 접착은 앞으로도 더욱 강력해 질 것입니다. 미디어공공성, 시민의 교통주권을 해칠 악의적 프레이밍의 네트워크가 훨씬 극성을 띌 것입니다. 정권 교체에 따른 희망으로 다들 잔뜩 부풀어 있는 분위기이지만, 자유언론과 공영방송의 측면에서 상황은 결코 낙관할 수 없습니다. 사회진보의 관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에, 많은 시민과 시청자들은 우리에게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연대하고, 교통하며, 또 대면하라! 갈라지지 말고, 찢어지지 말고, 밥그릇 싸움하지 말라! 공영방송, 미디어공공성, 커뮤니케이션 주권의 대의 아래 단단히 ‘허들링’하라!

▲ MBC 남극의 눈물 '얼음대륙의 황제'편
동지가 만든 <남극의 눈물>에서 배운 감동적인 삶의 지혜입니다. 맞습니다. 우리도 엄혹한 시절을 뭉쳐 함께 살아남았고, 앞으로도 꼭 다시 뭉쳐 함께 살아남아야 합니다. 서로 희생을 나눠야 하고, 서로 고생을 분담해야 합니다. 중심과 주변이 따로 없는 사회, 공동체 내 존재의 문화로서 다 함께 살아남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바로 낙하산 사장이나 MBC 내부의 기회주의자들과 확실화게 구별되는, 문화방송노동조합과 MBC 방송노동자 모두가 외부 사회와 공유하는 포인트 아니겠습니까? 소수 1%에 맞서는 다중 99%의 함께 삶, 그 이상의 대의와 원칙, 명분이 어디 있겠습니까?

지역과 서울 MBC 노동자들과 늘 함께 하겠습니다. 미디어/언론 운동의 대의 회복을 위해, 동지간 신뢰의 복구를 위해, 최근 발생한 논쟁의 합리적 해소를 위해, 섭섭한 마음을 걷고 시원스레 나섭시다. 결코 쉽지 않겠지만, 고민하고 또 고민해 봅시다. 동지적 신뢰를 회복할 것인가, 아니면 냉담과 결별의 길로 타락할 것인가? 공영방송 사수와 미디어공공성 회복의 운동 대의를 복구할 것인가, 아니면 자사 도생의 반운동적 사리로 빠질 것인가? 방해 요소들을 정리하면서 합리적 대화를 시작할 것인가, 불편한 외면과 일방적 원망을 계속할 텐가? 선택과 판단, 결정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습니다.

지역 MBC의 노동자들이, 그리고 공영방송 MBC가 함께 살 수 있는 방안을 함께 고민해 봅시다. 크고 작은, 강하고 약한 매체들이, 미디어 공공성의 울타리 속에서 공생할 방법을 토론해 봅시다. <남극의 눈물>만큼 중요한 미디어생태계의 위험이 달려있습니다. 미디어생태계의 보존을 위해, 모든 지혜와 전략을 모아야 하는 게, 바로 지금 소수자·약자인 우리의 역사적 책무 아닐까요? 진보와 노동, 공익과 공영의 사회적 가치로서, 한국사회 공통의 권력에 단호하게 맞서는 게 옳지 않겠습니까? 선의로서 선의를 기대합니다. 차이와 일치 사이, 공/통의 지점을 먼저 확인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당연히 생각 달리하는 포인트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서로 비판하고 반성할 지점이 있겠지요. 하지만 큰 뜻에서 통할지 않을 게 없습니다. 신뢰의 관점에서 보자면, 대화 못할 것도 없습니다. 동지적 초심의 관계로 돌아갑시다. 진심입니다. 중국의 이백은 다음과 같이 말했답니다. ‘삼배통대도, 일두합자연’ 석 잔을 나누면 큰 뜻으로 통하고, 한 말을 먹으면 자연과 합체한다. 조선의 탱자는 이렇게 말을 바꿔 봅니다. 자, 잔 석잔 부딪치며 진심을 통하고, 세 병을 나누며 하나의 마음이 되어 봅시다. MBC 노동조합의 동지들에게, 좀 늦었지만, 새해 인사말을 이리 진심으로 써 보냅니다. 늘 건강하시고, 곧 뵙시다. 평등·평화·평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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