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권력의 전략적 봉쇄조치로 악용될 가능성이 제기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미디어혁신특위 위원장이 특위 차원의 대안 마련과 상임위원회 재논의를 시사했다. 민주당은 이달 25일 본회의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11일 오후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과 한국언론정보학회가 개최한 '언론중재법 개정안 긴급토론회'에서 사회자인 김영욱 카이스트 초빙교수는 김용민 미디어특위 위원장에게 "지금 나와있는 안을 관철시킬 것인가, 아니면 많은 토론을 어느 정도 반영하는 기회를 더 가질 것인가"라고 질문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기본적으로 수정하더라도 상임위(문체위)에서 수정해야되는 상황이라 확답이 어렵다"면서 "다만 미디어특위 위원장으로서 오늘 논의된 지적들을 충분히 공유하겠다. 필요하다면 특위 차원의 대안을 만들어 상임위에 제시하면서 다시 논의할 수 있는 구조를 갖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미디어혁신특별위원장이 11일 민주언론시민연합·언론정보학회 주최로 열린 '언론중재법 개정안 긴급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민주언론시민연합 유튜브)

이날 오전 민주당 지도부는 8월 내 언론중재법 처리 의지를 거듭 밝혔다. 이용빈 민주당 대변인은 '정의당도 반대하는데 스케줄대로 언론중재법을 처리하느냐'는 기자들 질문에 "현재로서는 그런 입장"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대변인은 "진보적 언론관을 가진 시민단체인 민언련과 오늘 토론회를 한다. 민언련 입장은 법안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고, 오히려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해서 토론회 결과에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정의당의 '전면 재논의' 요구에 대해 "정의당 의원들이 문체위나 법사위에 없어 소통할 창구가 부족했다고 이해하고 있다. 적극적·정무적으로 이해를 구하는 게 필요하다는 의견을 나눴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후 한준호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오해와 억측 확산에 동조하지 말라"고 정의당을 압박했다. 한 원내대변인은 서면브리핑을 통해 "(정의당이)법안의 내용과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허위조작 가짜뉴스 보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가 동의어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가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날 긴급토론회에서 민언련과 정의당을 대표해 참석한 인사들은 권력의 전략적 봉쇄조치 가능성에 따른 언론자유 위축을 중심으로 의견을 개진했다. 고의·중과실 추정 요건, 기사열람차단 청구권, 정정보도 청구 표시 등이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독소조항으로 꼽히고 있다.

이용성 민언련 정책위원장(한서대 교수)은 "언론중재법은 언론자유와 연관돼 있기 때문에 언론을 대상으로 배액배상을 하는 경우는 상당히 정교할 필요가 있다"며 "다른 법률들과 비교해보면 그 정교함이 상당히 부족하다. 고의·중과실 요건은 여러 해석을 낳을 수 있을 정도"라고 지적했다.

이 위원장은 "예를 들어 정정보도 청구 요건 등은 대단히 혼란스러운 내용이다. 정정보도는 고의·과실을 필요요건으로 하지 않는 내용"이라며 "엄격한 기준을 설정하는 배액배상제가 아닌 이상 언론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이 법안은 시민들에게 도움이 안되고 권력자들은 악용할 우려가 심각하다고 판단한다"고 했다.

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언론의 고의·중과실 요건을 ▲취재과정에서 법률을 위반한 경우 ▲정정보도 청구 및 여부를 표시하지 않은 경우 ▲정정보도·추후보도·열람차단 기사를 충분한 검증없이 복제·인용한 경우 ▲반복적인 허위·조작보도 ▲기사 제목과 내용이 다른 경우 ▲사진·삽화·영상 등이 기사내용과 다른 경우 등으로 규정했다. 여기에 대통령, 정무직 공무원, 고위공무원, 대기업 등은 '악의를 가지고 허위·조작보도를 한 경우에 한해 (징벌적 손해배상을)적용한다'는 규정을 추가했다.

하지만 '고의' '악의' '허위·조작보도'의 개념과 기준이 모호하고, 고의·중과실 요건은 권력의 '전략적 봉쇄조치'로 악용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게 언론·시민사회와 야당의 비판이다.

다만 이 위원장이 '시민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발언한 것은 입증책임 논란 때문이다. 민언련은 시민의 경우 언론이 입증책임을 지고, 권력자의 경우 스스로 입증책임을 지는 방안을 주장해 왔다. 이 위원장은 "입증책임은 원고에게 있다고 보여지는데 고의·중과실 요건을 넣어 마치 언론사가 입증 책임을 갖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며 "이런 내용이 실제 언론피해구제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라고 말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왼쪽)과 이용성 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장 (사진=민주언론시민연합 유튜브)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취지와 달리 언론 봉쇄소송을 조장하는 법이 될 우려가 크다"며 "(민주당은)권력의 전략적 봉쇄소송을 막기 위한 3가지 조건을 말하는데 허위·조작보도, 악의, 고의·중과실 요건 등을 모두를 합쳐도 여전히 자의적 해석여지가 매우 넓다"고 지적했다.

이어 장 의원은 "제한조항이라고 말하지만 손해배상 소송 요건을 구체화한 조항으로 악용될 여지도 있기 때문에 전면적 재검토가 필요하다"며 "고의·중과실 조항은 그 자체로 들어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정보도 청구 등의 표시를 요건으로 규정한 것은 언론에게 '표시된 건 건드리지 말라'는 의미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찬성하는 측에서도 전략적 봉쇄조치 가능성을 인정했다. 김성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미디어언론위원장은 기사열람차단 청구권과 정정보도 청구 표시 의무에 대해 "정정보도 범위를 넓히는 방식으로 언론자유 위축이 우려된다"며 "권력의 악용소지가 있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도입취지는 찬성하지만 숙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민주당이 전략적 봉쇄소송을 막기 위한 방패라고 얘기하는 조항들에 수긍한다"면서 "그러나 공직자 피해구제를 어렵게 하는 측면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규정 자체가 전략적 봉쇄소송 가능성도 열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경우 언론보도를 막기 위한 전략적 봉쇄에 대해 법원에서 각하 결정을 내린다"며 "일단 법원 판단에 맡겨서 언론자유와 피해구제 사이 균형을 잡아줄 것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기사열람차단 청구권에 대해 이 교수는 "언론중재위원회에서 이미 시행이 되고 있고, 법으로 구체화되는 것"이라면서 "다만 공적사안에 대해 쉽게 열람차단이 되면 공론장 형성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열람차단은 개인의 사생활 등으로 한정해야 한다"고 했다.

김성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미디어언론위원장(왼쪽)과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사진=민주언론시민연합 유튜브)

이 교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시민피해 구제와 기자 개인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입장이다. 이 교수는 "세계꼴찌의 언론신뢰도 상황, 열악한 노동조건 아래서 선정적 어뷰징 기사를 안쓸 수 없는 상황에서 허위조작보도가 반복되고 있다"며 "일반시민의 피해상황을 훨씬 더 중요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고의·중과실 입증책임을 언론에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행법 안에서 소송을 안하는 이유는 배상액이 적은 탓도 있지만 입증책임 부담 때문이기도 하다"며 "우리 현실에서 개인에게 입증책임을 지워서는 안된다"고 했다.

한편, 언론중재법 개정 논의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등 우선순위의 미디어 공약이 밀려나고 있다는 장혜영 의원 지적에 김용민 위원장은 "뼈아픈 지적"이라면서 국민의힘 반대를 이유로 들었다. 김 위원장은 "당지도부나 특위는 즉시 개선해야한다는 입장인데, 과방위 법안심사소위원장이 국민의힘 의원이기 때문에 방법이 없다"며 "국회 구조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어 지도부와 특위가 고민 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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