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밤>, 예능 왕국 MBC를 상징하는 기적과 경이의 최강자

<일요일 일요일 밤에>(이하 <일밤>)는 대한민국 오락 프로그램 전체를 대표하는 프로그램이다. <일밤>의 역사는 곧 대한민국 버리이어티 쇼(variety show)의 역사이다. <일밤>의 역사는 전신인 <일요일 밤의 대행진>(81년)부터이고 온전히 칼라TV의 역사이다. <일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방송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전파를 타고 있는 프로그램은 <전국노래자랑>(80년), <뽀뽀뽀>(81년), <무엇이든 물어보세요>(83년), <가족오락관>, <연예가중계>, <가요무대>(84년) 정도이다.

▲ '간다투어' 홈페이지 캡쳐ⓒMBC

변화하는 것만이 살아남는다는 채찍질이 사나운 한국 사회에서 하나의 형식이 이토록 오랜 시간을 생존 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기적이요 경이로 존경받아 마땅하다. 다른 장수 프로그램들에겐 약간 미안한 얘기지만, 대부분의 장수 프로그램들이 시간대를 변경하고, 때론 역사성에 많은 부분을 기대어 시청률 경쟁이 첨예하지 않은 시간대에서 생존할 수밖에 없었던 치졸한 과거를 숨기고 있는 것에 비해 <일밤>은 시청률 경쟁이 가장 첨예한 시간대인 주말 저녁 시간대에서 평균치에 만족하는 것을 부끄러움으로 알며 예능 프로그램의 트렌드를 선도하며 오늘까지 왔다.

<일밤>은 예능의 교과서였다

<일밤>의 코너들은 그대로 예능의 교과서이다. 개그우먼 시대를 열었던 박미선의 ‘별난여자’, 스탠드 코미디의 시작이었던 주병진 노사연의 ‘배워봅시다’, 최초로 페이크(fake) 형식을 도입했던 이경규의 ‘몰래카메라’, 무한한 도전의 원형질이 된 이홍렬의 ‘한다면한다’, 인포테인먼트((infortainment, information+entertainment) 효시라 할 수 있는 ‘이경규가 간다’, 시청자 참여 개그의 진수를 보여줬던 이휘재의 ‘인생극장’, 예능과 다큐의 경계를 물었던 신동엽의 ‘신장개업’과 ‘러브하우스’, 베끼기 논쟁을 잠재우는 아이디어 토착화의 모범이 됐던 김용만의 ‘브레인서바이버’ 그리고 최근의 ‘게릴라 콘서트’와 ‘대단한 도전’까지. <일밤>은 한국 예능 프로그램의 원형질을 이루는 거의 모든 포맷을 최초로 실험한 선구자였다. 독창적인 스타일과 감각으로 대중문화의 트렌드로 제조해내는 웃음의 공장이었다. <일밤>은 오늘의 예능왕국 MBC를 가능케 한 어머니이고 아버지였다.

<무한도전>과 <무릎 팍 도사>, 오늘의 경향을 만든 위대한 '창조자'와 가장 혹독한 '정복자'

그러나 최근 몇 년간의 <일밤>은 확실히 자주 불리는 이름은 아니었다. 좀 더 냉정하게 말하자면 최근 <일밤>은 앞서 지적했던 다른 장수 프로그램들처럼 ‘일요일 밤에는 <일밤>이 한다’는 역사적 관성과 습관에 기대어 겨우 웃음을 짜내는 애처로운 프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밤>의 부진이 도드라져 보이지 않았던 것은 역설적으로 <일밤>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예능왕국 MBC의 위상은 더욱 탄탄해졌기 때문이었다. 간판 예능 프로그램의 부진 속에서 오히려 위상이 강화된 MBC의 예능을 이끌어온 것은 누구나 알다시피 대한민국 평균 이하 여섯 남자의 좌충우돌 리얼 버라이어티 <무한도전>과 무릎이 닿기도 전에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무릎팍 도사>였다.

이젠 그 명성을 설명하는 일조차 진부한 일이 되어버린 <무한도전>은 오늘의 버라이어티 경향을 만든 위대한 창조자이다. 사실, <무한도전>의 성공은 온전히 <무한도전>의 것은 아니라는 폄훼의 목소리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무한도전>은 위대하다. <무한도전>은 혼자서는 주목받기 힘들었던 의미와 재미들을 집대성한 버라이어티이다. 버라이어티의 동의보감이다.

▲ '무한도전' 홈페이지 캡쳐ⓒMBC

<무한도전>은 사전적 의미를 넘어서는 ‘리얼리티’ 개념의 실천, 매주 형식을 달리하는 궁극의 포맷, 2인자 시대를 연 계급 전복의 놀이, 캐릭터와 컨셉의 힘에 의지하는 원초적 상황극 등 그동안 예능 프로그램들이 구가했던 무수한 마이크로트렌드(microtrends)들을 조합하여 거역하기 힘든 메가트렌드(megatrends)를 만들어냈다. 감히 말 하건데, <무한도전>이 창조해낸 세계에 조공을 받치지 않는 예능 프로그램은 더 이상 없다.

<무릎팍 도사> 역시 거침없는 섭외를 통해 공중파 토크의 새로운 봉오리(무릎팍 산)를 정복한 ‘동시대의 가장 혹독한’ 정복자이다.

그래서 다시 <일밤>이 중요하건만,

달도 차면 기운다고 했던가. 얼마 전부터 심심찮게 <무한도전>과 <무릎팍 도사>의 위기론이 등장하더니, 최근 들어 눈에 띄게 두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빠지고 있다. 오늘을 내일의 촌스런 어제로 만드는 것은 또한 거스를 수 없는 트렌드의 법칙이다. <무한도전>을 벤치마킹하여 탄생한 <1박2일>은 <무한도전>만의 세계였던 ‘리얼리티’를 그야말로 막장까지 끌어내리는 파격의 자학적 야생미를 통해 이미 화제성과 시청률 모두에서 <무한도전>을 넘어섰다. 그 사이 강호동의 대표 프로그램 역시 <무릎팍 도사>에서 <1박2일>로 바뀌었다.

물론, 당분간은 위대한 창조자로서의 위용과 가장 혹독한 정복자인 강호동의 기운에 의지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결국 시간의 문제일 뿐, 예능의 대세는 어느덧 기울고 있다. 이쯤에서 궁금해지는 것이 과연 MBC가 <무한도전>과 <무릎 팍 도사> 이후에도 예능왕국이라는 영광스런 칭호를 이어갈 수 있을지의 여부이다. 그래서 다시 <일밤>이 중요하다. MBC 예능의 운명이 어제의 용사 <일밤>에 달려있다. 오랫동안 잊혀졌던 이름 <일밤>은 다시 웃음 공장을 가열차게 가동해야 하는 얄궂은 숙명 앞에 서있다.

<간다투어>, 이러단 정말 확 간다.

<일밤>은 지난 3월 초, <간다투어>, <우리 결혼했어요>를 새로이 시작하는 개편을 단행했다. 이후 지금까지의 결과는?

실망스럽고 또 실망스럽다. 케이블에 흔한 연애 리얼리티의 복제에 나선 <우리 결혼했어요>까지는 어쩔 수 없이 두 눈 질끈 감고 봐준다고 해도 <1박2일>을 상대하는 <간다투어>의 심각성은 정말이지 간단치가 않다.

<간다투어>는 "전대미문! 유일무이한 관광 아이템을 찾아 언제든 어디든 어떻게든 떠난다"는 의도로 이경규, 김제동, 김구라, 타블로 4명의 MC가 '이제껏 체험하지 못한 새로운 관광 아이템을 발굴'한다는 컨셉이다. 형식은 <1박2일>에서 빌려오되, 그 내용은 리얼리티가 아닌 <느낌표> 이래 MBC의 오랜 장기인 인포테인먼트로 채우겠다는 의도이다. 몰래카메라 이후 <일밤>을 떠났던 터주대감 이경규의 복귀작이며, <일밤>에서 자리를 못 잡고 있는 김구라의 재기작이다.

<간다투어>의 문제는 일부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1박2일>과의 유사성에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1박2일> 역시 그 시작은 유사 <무한도전>이었다. TV 예능 프로그램은 진본과 유사본의 질을 논하는 미학의 영역이 아니다. 호흡할 수 있는 영혼이 있으면 된다. 재미있으면 된다. 어쩌면 예능의 미덕은 진본보다 재밌는 복제에 있을 지도 모른다. 리얼리티를 무기로 버라이어티의 형식 자체에 도전했던 <무한도전>은 리얼리티의 막장을 보여주고 있는 <1박2일>을 거쳐 <간다투어>에서 다시 원래의 자리, 지나친 교양 강박이 빚어내는 조잡함으로 돌아왔다. 이만저만 심각한 퇴행이 아닐 수 없다.

<간다투어>, 그건 공중파에서 할 일이 아니다.

<간다투어>는 <무한도전>의 영혼도 <1박2일>의 재미도 없는 불법 복제물이다. <간다투어>의 영혼은 기획의도와 컨셉이 프로그램 내용과 전혀 호응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무(無)혼이다.

유일무이한 관광 아이템을 발굴한다며 처음 소개했던 것이 전현직 '대통령 생가'였다. 얄팍함 그 자체이다. 아침 프로그램에서, 지역 소개 프로그램에서, 교양 정보 프로그램에서 하품 나도록 반복했던 아이템이다. 처음이니 방황할 수도 있겠거니 했다. 더욱 심각해진 것은 그 이후였다.

▲ '1박2일' 홈페이지 캡쳐 ⓒKBS
'대통령 생가'를 쫒아 이경규와 김제동의 생가를 관광지로 개발하는 포맷은 실소를 자아내는 아류, 불법 복제의 질 낮음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어처구니 없음의 끝간데였다. 여기까지만도 재미도 의미도 없었지만 처음이려니 하고 참았다. 그런데 상황은 더욱 가관으로 치달았다.

카메라 앞에서 딱딱하게 굳어있던 이경규의 어머니가 등장할 때, 노골적으로 <무한도전>의 '융드옥정'을 환기시키더니 김제동 생가 관광지 조성 편을 거쳐 아예 김제동의 어머니 특집을 준비했다. 평균 이상의 재담을 보여줬던 김제동 어머니께 맞춤 효도관광을 시켜준다는 컨셉은 방송이 어느 정도로 저열하게 사유화 될 수 있는지, 그 극한을 보여주었다.

아무리 선의를 이해하려해도 도무지 왜 김제동 어머니가 태진아를 만나는 영광(!)을 누리고 송윤아를 만나는 감격(!)을 맛보는 일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중계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것은 김제동의 집 울타리 안에서 웃고 떠들어야 할 일이다. 파워 있는 스타 MC의 사생활 정보가 대중의 관음증을 자극한다 하더라도, 스타 MC 어머니의 사생활까지 시시콜콜하게 일러주는 것은 적어도 공중파에서 할 일은 아니다. 공중파와 케이블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아무리 케이블의 위협이 드세도 권위, 예산, 대상 등 모든 면에서 케이블을 압도하는 공중파에겐 최소한의 위엄과 사회성은 있어야 한다.

이경규와 김구라, 식상함 진부함 재미없음

그리고 결정적으로 <간다투어>의 패착은 MC들의 식상함이다. <라인업>이 애국가와 시청률을 경쟁할 만큼 재미없는가의 여부에 관한 논란이 있긴 하지만, 어찌됐건 이경규와 김구라는 이미 주말 버라이어티에서 완전히 실패한 캐릭터이다.

물론, 한 번 실패가 영원한 것도 아니고 캐릭터가 언제까지나 불변하는 것도 역시 아니다. 하지만 버라이어티의 원조라 불리며 십수년째 버라이어티에서 보고 있는 이경규와 본인 스스로 스케줄에 닥칠 것이 없다는 김구라는 캐릭터의 변동성이라곤 눈꼽만치도 없는 버라이어티의 고정 기계들이다.

왜 MBC는 큰 웃음 주는 호통 박명수를 버리고(동안클럽) 소리만 질러대며 실패를 누적하고 있는 버럭 이경규를 재기용했는지 정말 의문이다. 김구라 역시 본인의 욕심이야 있겠지만, 주말 저녁 프라임 시간대 보다는 심야 시간대가 적합하다. 김제동(호감의 국민MC)과 타블로(젊은 천재)가 끼여있긴 하지만 빌려 입은 옷처럼 어색할 뿐이다.

이경규, 김구라 조합은 컨셉에 있어서는 강약을 조절하는 유재석, 박명수 조합의 상호 보완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캐릭터에 있어서는 안정적인 대비를 보여주는 이휘재, 이혁재 조합처럼 안정적이지 못하다. 이경규, 김구라 조합은 시종일관 '강하게 더 세게'를 외치지만 강호동의 파워에 반 푼도 이르지 못한다.

즐거움을 빼앗긴 자의 슬픔

영원한 약자도 강자도 없으며 분명 메뚜기는 한 철이다. 도저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무한도전>의 위용은 진짜 니들이 원하는 무한을 보여줄까에 도전한 양질의 유사품 <1박2일>에 발목이 잡혔다. <1박2일>을 잡기 위해 기획된 <간다투어>는 지나치게 많은 것을 택하려다 도저히 전편을 뛰어 넘을 수 없는 아류가 되고 말았다. 시청율 4%를 기록했던 <라인업>의 '힙합맨 되다'의 실패가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간다투어>의 '회춘 관광'으로 리바이벌된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커닝으로 도배돼 버린 예능의 교과서가 암시하고 있는 예능왕국 MBC의 극적 몰락은 즐거움를 빼앗긴 자의 슬픔으로 처절하다.

학교라고 믿었던 사회운동을 휴학하고 몸을 더듬어보니 라이타 한 개밖에 없더라는 싸구려 열정에 여전히 감격하는 청년 백수. 을용타에 열광하는 청년 백수들이여,라이타(right-打)하라! 오른쪽을 때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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