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일본 공영방송 NHK 회장이 경영위원회로부터 프로그램 간섭을 받았다는 회의록이 공개돼 공영방송 거버넌스를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NHK 경영위원회는 NHK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KBS 공영미디어연구소의 ‘해외방송정보’ 8월호에 게재된 <NHK 경영위원회, 프로그램 간섭 의혹과 관련해 회의록 공개>에 따르면, NHK 경영위원회는 지난달 8일 방송법 위반 소지가 있는 회의록을 전면 공개했다. 시민단체 요구에도 회의록 공개를 거부해온 경영위원회는 ‘아사히신문’과 ‘마이니치신문’의 정보공개 청구에 따라 2018년 회의록을 공개했다.

아사히신문 7월 13일자 사설 . 사진 속 인물은 모리시타 NHK 경영위원회 위원장. (출처=아사히신문 홈페이지)

2018년 4월 NHK가 방송한 프로그램 <클로즈업 현대+>는 간포생명보험의 불법적인 판매방식을 고발했다. 3개월 뒤 제작진은 후속편을 준비하며 제보를 받기 위한 동영상 2편을 공개했다. 이와 관련해 일본우정그룹 사장단은 우에다 당시 NHK 회장에게 항의하며 동영상 삭제를 요구했다.

일본우정공사는 우정사업 민영화를 거쳐 2007년 특수회사로 탈바꿈했다. 현재 지주회사인 일본우정과 산하에 일본우편, 유쵸은행, 간포생명보험을 두고 있다. 4사를 가리켜 일본 우정그룹이라고 부른다.

프로그램 책임자는 일본우정그룹 측에 “회장은 제작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설명했지만 일본우정 측은 동영상 삭제 및 프로그램 책임자 발언에 대한 설명을 재차 요구했다. 일본우정그룹은 경영위원회에도 항의문을 보내 간포생명보험의 부정한 보험판매를 고발한 <클로즈업 현대+>에 불만을 드러냈다. 또 NHK 거버넌스에 대한 검증을 요구했다.

이번에 공개된 회의록에 따르면, 2018년 10월 9일 경영위원회에서 모리시타 슌조 경영위원장대행은 NHK 보도내용에 대해 “좀 이상하다”, “제대로 취재한 것인가? 적절한 취재방식에 대해 경영위원회에서도 의견을 받아야한다”, “일방적인 의견만 나오는 프로그램이 괜찮은가”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시하라 스스무 경영위원장은 “일본우정 쪽에 옛 우정성 출신으로 방송을 잘 아는 분이 있다”고 덧붙였는데 이는 스즈키 야스오 일본우정 수석부사장을 가리킨 것이었다. 추후 스즈키 부사장이 경영위원회 회의 직전 모리시타 위원장 대행을 만난 사실이 드러났다.

우에다 NHK 회장은 같은 달 23일 열린 경영위원회 회의에서 엄중주의를 받았다. 모리시타 위원장 대행은 “프로그램 취재를 포함해 극히 치졸하다”, “취재는 거의 하지 않았다. 제작 방법에 문제가 있다”며 프로그램을 비판했고, 우에다 회장은 “개별 프로그램에 들어가면 경영위원회를 포함해 대단히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해 11월 우에다 회장은 일본우정에 “설명이 불충분해 심히 유감스럽다”고 사과했으며 다음 해 1월 퇴임했다.

경영위원회는 회의록 공개를 거부해왔다. 외부전문가로 구성된 NHK 정보공개·개인정보보호심의위원회가 지난해 5월 회의록을 즉각 공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달 뒤 ‘NHK 감시·격려 시청자 커뮤니티’ 등 24개 단체가 회의록 공개를 요구하는 청구서를 NHK에 제출했고 경영위원회는 회의 개요만 공개했다. 지난 6월 14일 대학교수와 NHK 퇴직 직원 등 100여 명이 경영위원회에 회의록 공개를 요구하며 도쿄지방재판소에 제소했다.

경영위원회가 회의록 공개를 거부한 이유는 방송법 위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경영위원회는 프로그램에 대한 간섭이 금지돼 있다. 방송법에는 경영위원의 권한으로 “개별 방송프로그램의 편집, 기타 NHK의 업무를 집행할 수 없으며 개별 프로그램의 편집에 대해 제3조의 규정에 저촉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지난달 13일 사설에서 “경영위원회는 지배 구조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전제로서 프로그램에 대해 ‘의견이나 감상을 나눴다’며 ‘구체적인 제작방법을 지시한 것은 아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단순한 변명”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발언의 대부분은 법의 취지도 보도 기관으로서의 NHK의 역할도 이해하지 않고 우정의 편에서 프로그램을 트집 잡은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아사히신문은 “총무성과 관계가 깊은 일본우정그룹에 영합해 거버넌스의 이름을 빌려 프로그램에 간섭한 것이며, 경영위원회의 거버넌스 자체가 문제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경영위원을 임명하는 총리에게 결단을 촉구했다.

학계에서는 경영위원회 제도를 문제 삼고 있다. 스나가와 히로요시 릿쿄대 교수는 “이사하라 위원장과 모리시타 위원장 대행이 논의를 주도하며 프로그램 내용에 개입했으며, 개별 프로그램 내용에 개입을 금지한 방송법 위반이 명백하다”며 모리시타 위원장 대행의 사임을 요구했다. 시시도 죠지 도쿄대 교수는 프로그램 내용은 프로그램 심의 회의에 맡겨야 한다며 경영위원회 자체가 거버넌스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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