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한국 축구를 뜨겁게 달아오르게 했던 축구대표팀 감독 선임 문제는 결국 K리그 우승을 두 차례나 이끈 '봉동이장' 최강희 전북 현대 감독의 대표팀 감독 선임으로 끝났습니다. 색깔 있는 축구와 빼어난 리더십으로 전북 현대를 한국 축구뿐 아니라 아시아 축구 명문팀으로 끌어올린 공을 인정하고 축구협회가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최 감독을 선임한 것입니다. 조광래 감독 경질 이후 여러 가지 많은 문제 때문에 구설수에 오른 축구협회지만 어쨌든 최강희 감독이 선임된 이상 최 감독에게 힘을 실어줘야 합니다.

그러나 최강희 감독은 감독 선임 기자회견에서 스스로 2013년 6월까지만 축구대표팀 감독을 맡고 전북 현대로 돌아가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2014년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을 경우 누가 대표팀 감독을 맡게 될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축구협회는 당황하면서도 "언제든 본선까지 최강희 감독 체제로 갈 수 있다"고 한 상황이지만 당초 대표팀 감독 뜻이 없다 '조건부 수용' 의사를 보인 최 감독의 입장이 완고한 편이어서 이 뜻을 바꿀 수 있을지는 좀 더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 최강희 축구대표팀 감독, 홍명보 올림픽대표팀 감독 ⓒ연합뉴스
2013년 6월 이후도 서서히 준비할 필요가 있다

일단 이번 감독 선임을 통해 축구협회는 적어도 두 가지 확고한 선임 원칙을 고수하게 됐습니다. 바로 한국 축구를 잘 아는 지도자, 짧은 시기에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지도자가 그것입니다. 멀리 내다보는 장기적인 관점보다는 현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지도자를 더 선호하고 그런 면에서 한국 축구 사정에 밝은 국내파 인사를 선호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허정무 감독이 선임된 지난 2007년 말 이후 고수하고 있으며, 축구협회 내부 조직이 크게 바뀌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그대로 이어질 공산이 큽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2013년 6월 상황을 예상하기도 어렵고 이런 언급을 하는 것이 혼란을 부추길 수도 있지만 만약 최강희 감독이 자신의 뜻대로 월드컵 최종예선까지만 맡고 스스로 물러날 경우, 차기 감독을 누구로 할 지 지금부터 축구협회 내부적으로 서서히 준비해야 하는 게 사실입니다. 기술위원회 차원에서 해결할 일이지만 이번 감독 선임 과정에서 워낙 제 역할을 하지 못했던 탓에 새로운 별도 기구를 구성하거나 전담 팀을 꾸려 운영하는 방안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처럼 무작정 감독을 경질하고 부랴부랴 새 감독을 찾는 '얼렁뚱땅식'이 아니라 차근차근 한국 축구의 근본 문제를 검토하고 이를 잘 해결할만한 감독을 찾는 식이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2013년 6월 이후도 외국인보다 국내파 가능성 높다

최강희 감독은 기자회견을 통해 "지금 이 순간도 외국인 감독이 필요하다고 본다"면서 외국인 축구대표팀 감독론에 힘을 실어줬습니다. 이번 선임 과정에서도 나타났듯 많은 팬들은 한국축구의 근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외국인 감독을 선호하며 일부 보도가 나올 때마다 고무적인 반응을 보인 바 있습니다. 외국인 감독을 통해 한국 축구가 진정한 선진 축구로 갈 수 있는 길을 만들고, 이를 통해 국내에 있는 지도자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물론 한국 축구 내의 특수한 성격 탓에 성공하지 못한 외국인 감독들이 좀 더 많기는 했어도 히딩크처럼 감독이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만 제대로 조성해주면 언제든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축구를 파악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리고 환경에 적응하는 것 역시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K리그 감독을 경험한 외국인 또는 아예 국내파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게 사실입니다. 특히 2013년 6월 이후 곧바로 1년 뒤에 본선이 열리는 만큼 시간이 그리 많지도 않아 축구협회는 혹 최강희 감독이 물러날 경우 외국인 명장 카드를 망설이고 지한파(知韓派)나 국내파로 또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홍명보 월드컵 본선 대표팀 감독 가능성 높은 이유

이 경우 가장 매력적인 카드로 홍명보 현 올림픽팀 감독이 유력하게 검토될 수 있습니다. 이미 홍 감독은 오래 전부터 많은 팬들로부터 '언젠가는 국가대표팀 감독을 할 만하다'는 말을 들어왔던 사람입니다. '영원한 리베로'라는 별칭을 갖고 있을 정도로 화려한 선수 경력을 자랑하고, 특히 1990년, 1994년, 1998년, 2002년 월드컵을 선수로 경험하고, 2006년 월드컵을 코치로 경험해 월드컵 본선 경험은 적어도 한국 축구인 가운데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이후 U-20(20세 이하) 월드컵 감독으로 '홀로서기'에 성공해 2009 U-20 월드컵 8강을 이끌었고,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동메달을 획득하며 지도자로서도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습니다. 현재 올림픽팀을 맡고 있으면서 최종예선에서 조 선두를 달리고 있어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7회 연속 본선 진출 가능성도 높이고 있습니다.

이번에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에서도 최강희 감독과 함께 유력한 후보로 거론돼 왔지만 본인은 런던올림픽 출전, 그리고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강력하게 고사 뜻을 밝혔습니다. 이미 지난해에도 허정무 감독이 물러난 뒤 공석이 된 자리에 유력한 후보로 검토돼 왔는데 모두 아시안게임 대표팀, 올림픽 대표팀을 맡고 있다는 이유로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2013년 6월의 경우, 딱히 큰 대회가 없는 만큼 홍 감독의 대표팀 감독 수락 가능성은 이전과 다르게 상당히 높습니다. 물론 대표팀 감독으로 더 떠오를 수 있으려면 내년 런던올림픽에서 어떤 성적을 내느냐에 따라 달려 있습니다.

홍명보 월드컵 본선 감독 카드가 매력적인 가장 큰 이유는 현재 축구대표팀 주축 선수들 대부분 홍명보 감독과 인연을 맺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표팀 주장인 박주영을 비롯해 구자철, 지동원, 윤빛가람, 홍정호, 김영권, 김보경 등은 모두 홍명보 감독의 지휘 아래 대표 경력을 가진 젊은 선수들입니다. 2009 U-20 월드컵 당시 무명에 가까웠던 이들이 홍명보 감독과 함께 부쩍 성장해 스타급 선수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서 런던올림픽을 넘어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까지 좋은 활약을 펼친다면 충분히 본선도 함께 해볼 만하다는 얘깁니다.

만약 이 과정이 탄탄대로를 밟아나간다면 한국 축구 대표팀이 꿈꿨던 것 가운데 하나인 '대표팀 장기(長期) 감독'도 가능한 상황입니다. 덴마크에서 10년 넘게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는 모르텐 올센, 독일에서 꽃미남 감독으로 6년째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는 요아힘 뢰브처럼 말입니다.

최강희, 홍명보 둘 다 잘 돼야 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홍명보 감독이 내년 런던올림픽 성적에 달려 있고, 최강희 현 대표팀 감독 본인의 의지에 따라 모든 게 결정됩니다. 현재 대표팀 감독은 최강희 감독이고, 그에게 힘을 실어줘야 하며, 좋은 성적을 냈을 때 그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가기 위해 본선도 맡아야 하는 건 당연합니다. 그러나 최강희 감독이 기자회견에 밝혔던 뜻을 관철시켰을 때 또다시 축구협회가 축구계 전체를 혼란에 빠트리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2013년 6월 이후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사실입니다. 혹 최강희 감독이 물러날 경우, 또다시 혼란스러워하는 것보다는 '또 다른 대표팀'을 맡고 있는 홍명보 감독을 자연스레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목표를 갖고 달릴 대표팀 최강희 감독, 런던올림픽 본선에 진출해 사상 첫 메달권 성적을 목표하고 있는 홍명보 감독 모두 상생(相生)하고 잘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좋은 결과 뿐 아니라 두 팀이 갈등하지 않고 서로 도움이 되는 팀이 돼서 한국 축구대표팀의 발전 과정을 많은 팬들, 그리고 대표 선수 내부적으로도 보고 느끼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혼돈의 2011년을 보냈던 축구대표팀이 2012년에는 좋은 소식을 많이 가져다주고 그 이후 밝은 미래를 향한 초석을 닦는 한 해이기를 기대합니다. 덩달아 두 감독이 나란히 환하게 웃는 모습도 더 많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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