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정희] 네가 어른이 되었을 때/ 너는 남몰래 혼자 울기도 하겠지
그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 그럴 때 누가 네 옆에 있어줄까?(중략)
생각지도 못한 슬픔/ 생각지도 못한 기쁨/
삶이란 생각지도 못한 일들로 가득찬 숲/
그 숲 깊은 곳으로 너는 걸어가겠지
- 『다시 시작하는 너에게』 유모토 가즈미 글, 하타 고시로 그림

‘처음이라 그래 며칠 뒤엔 괜찮아져 그 생각만으로 벌써 일년이...’ 준완과 익순이 헤어지고 브라운 아이즈의 '벌써 1년'이 흐르며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도 1년을 훌쩍 건너뛰었다. '일년 뒤에도 그 일년 뒤에도 널 기다려'라는 가사처럼 준완은 익순을 못 잊었지만 율제병원의 일상은 여전히 분주하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 6화는 학생에서 인턴으로, 전문의로 새로이 시작하는 이들에게 초점을 맞춘다.

말 그대로 '배꼽 빠지도록' 웃었다. 이제 막 인턴이 된 홍도와 윤복의 실수담 덕분에. 지금도 환자의 두 콧구멍을 막아버리며 콧줄을 낀 윤복(조이현 분)이 떠올라 어깨가 들썩거린다. “다 필요 없어. 교수님이 하라는 대로 하면 돼. 당기라면 당기고 빼라면 빼고”라는 부연 설명과 함께, 단 하나의 지시 '리차드슨 아웃'만 하면 100점이라는 추민하(안은진 분)의 말을 너무도 충실하게 이행하느라 수술실 밖으로 나가버린 홍도(배현성 분)의 고지식함에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

말 그대로 평생 이불킥을 할 만한 흑역사다. 이렇듯 시작은 '서투름'의 다른 말이다. 제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해도 경험의 일천함은 늘 흑역사를 안긴다. 그런데 시작은 흑역사만 안겨주는 게 아니다. 첫사랑을 잊지 못하듯, '첫 경험'이기에 거기에 실린 마음만큼이나 깊은 '아픔'도 남긴다.

전공의 창민은 자신과 이름이 같은 어린 창민이에게 남다른 '라포(상담이나 교육을 위한 전제로 신뢰와 친근감으로 이루어진 인간관계)'를 형성한다. 하지만 어린 창민은 더 이상 삶을 지속할 힘이 없다. 의연한 줄 알았던 전공의 창민은 그만 자신과 같은 이름을 가진 어린 창민의 죽음 앞에 ‘의사'로서 사망선고를 차마 하지 못한 채 눈물을 흘린다.

이렇게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는 새로운 시작을 서투름과 아픔이라는 두 단어로 설명한다. 삶의 숲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설렘이 가득하지만 막상 서툰 우리는 낯선 길에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부터 하는 것이다.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

6화는 바로 그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부터 하는, 세상의 모든 시작하는 이들에게 손을 내민다. 홍도와 윤복의 실수담과 창민과 겨울의 아픔과 자괴감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교수님도 흑역사가 있으세요?”라는 질문과 함께 99즈의 실수담으로 이어진다.

이제는 뇌사가 될 뻔한 오토바이 사고 여성도 구해내고, 임신중독증 산모도, 1.6kg 아기의 식도폐쇄증도 거뜬히 해결해내는 99즈. 그들에게 '어리바리한 인턴' 시절이 있었을까 싶지만, <슬의생>은 홍도의 '리차드슨 아웃' 못지않은 '설압자' 해프닝을 소개한다.

하지만 그저 ’99즈도 그땐 그랬지‘라는 후일담으로 끝내지 않는다. 자신의 두 코를 다 막아버린 윤복에게 환자는 자신의 딸도 사회생활을 이제 막 시작한 신입사원이라며 괜찮다고 외려 다독인다.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

드라마는 이른바 우리 시대의 '라떼는 말이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사망선고를 해야 했지만 의사로서 본분을 다하지 못한 창민은 교수 준완에게 찾아가 '죄송하다'며 머리를 조아린다. 그런 창민에게 준완은 담담하게 '울 수도 있지'라고 말한다. 환자 앞에서 눈물을 보여 야단 맞을 것을 우려한 창민에게 준완은 울 수도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울 수도 있지만 의사로서의 본분은 다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삶에서 실수 혹은 서투름은 불가피한 것이다. 하지만 그를 통해 무엇을 배웠나에 따라 이후의 행보는 달라진다. 어른이 되어간다는 건 그저 실수를 더 쌓아가는 게 아니라, 그 실수를 통해 성장하고 성숙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슬의생>2 6화의 미덕은 99즈는 실수를 통해 그 이전의 선배 의사들이 쳐놓았던 '감정의 벽', '권위의 벽‘을 허물었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

6화는 시작하는 이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실수와 감정적인 상처를 겪는 이야기. 그런데 그 이야기에 대한 화답은 어른됨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그저 더 많은 경험을 하면 어른이 되는 것일까? 앞서 실수하고 아픔을 겪으면 어른일까? 아니라고 드라마는 말한다.

자신의 뒤에 오는 이들의 실수에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가진 이들이 어른이라고. 앞선 이들이 만들어 놓은 허상을 넘어 진솔한 인간의 모습에 허심탄회하게 한 발 더 다가서는 것이 어른이라고. 그리고 어떤 아픔 속에서도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어른이라고. 그렇게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 6화도 '어른' 99즈의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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