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여당 대선후보 경선은 진흙탕으로 가고 있다. 17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문제에 이어 지역주의 논란이다. 경선에서 이른바 친문과 호남 표심이 중요하다지만 이런 논쟁을 할 때인지 의문이다. 당 밖에서 지켜보는 지지자들의 판단도 고려해야 한다.

논란이 된 이재명 지사의 이른바 ‘백제’ 발언은 그것만 떼놓고 보면 큰 문제가 없는 것 같다. 이재명 지사 측도 덕담을 했을 뿐인데 이를 지역주의 발언이라고 주장하는 이낙연 전 대표가 오히려 지역 감정을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낙연 전 대표가 호남 후보로서 정권재창출에 성공하면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한 게 과잉해석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발언의 맥락은 질문이 뭐였는지를 같이 봐야 완전히 이해된다.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해당 발언은 “약점이 많은 후보라는 건가”라는 질문의 답으로 나온 걸로 돼 있다. 직전까지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이낙연 전 대표의 행적에 관한 얘기였다. 약점 얘기를 하니 별안간 호남 후보라는 점을 거론한 것이다. 만일 질문이 호남 출신 후보의 약점이나 영남 출신 후보의 강점을 물은 거였다면 이재명 지사의 답은 자연스러운 걸로 받아들여졌을 거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25일 광주 서구 치평동 더불어민주당 광주광역시당에서 지지자와 후보 사퇴를 촉구하는 시민들을 지나 기자간담회 장소인 회의실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지사의 이런 언동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7월 CBS라디오 인터뷰에서도 “이재명에게 이낙연이란?”이란 질문에 “지역색을 없앨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다”라고 답을 했다. 앞서 ‘백제’ 발언도 이낙연 후보의 지지율이 이 당시와 비교해 하락한 상황을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올해 들어 이낙연 후보 지지율 하락 또는 정체 요인은 호남 후보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사면론을 거론한 게 결정적이었다. 온건한 리더십이라는 스타일의 문제도 있을 것이다. 이 모든 약점을 제쳐놓고 ‘백제’를 거론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결국 민주당-호남후보 조합으로는 경쟁력에 한계가 있으니 영남후보여야 한다는 ‘영남후보론’을 일부러 거론한 것이다.

물론 ‘백제’ 발언을 크게 이슈화 하려는 이낙연 전 대표의 반응에 대해서도 호남 표심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을 할 수 있다. 그러니까 한쪽은 “호남 후보로는 안 되니 확장력 있는 영남 후보를 밀어달라”고 한 거고 다른 한쪽은 “호남 후보로 안 된다는 것은 호남 배제”라고 한 거다. 둘 다 지역주의에 기댄 모양새인 것은 마찬가지지만, 먼저 수면 위로 이 구도를 끌어 올린 것은 이재명 지사이다.

17년 전 과거를 거론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이낙연 전 대표는 당시 민주당 내 ‘비서명파’로 분류됐다. 탄핵에 소극적인 편이었던 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탄핵소추안 표결 전날 기자회견에서 탄핵의 빌미가 됐던 발언에 대한 사과를 거부하면서 ‘비서명파’ 내의 여론은 악화되었다. 윤영찬 의원의 “찬성으로 돌아섰다”는 기사는 이 상황에 대한 서술이다. 당시 나온 반대표 2표 가운데 1표가 이낙연 전 대표일 가능성은 당시에도 제기됐다. 이런 점에서 이재명 지사의 일방적 주장은 소모적 논란에 일부러 불을 붙인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재명 지사의 이런 행보는 ‘네거티브’ 논란의 연장으로 보인다. 이제는 참지 않겠다는 거다. 하지만 참지 않는 모습을 보이더라도 얼마든지 세련된 방식으로 할 수 있다. 자신이 부당한 공격을 받았다는 이유로 경선 판 전체를 흙탕물로 만들어 보자는 것은 이재명 지사가 포함된 정파뿐만이 아니라 한국 정치 전반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런 퇴행적 경선이 가능한 이유는 상대편에 있는 윤석열 전 총장이 시쳇말로 죽을 쑤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긴장을 할 필요가 있다. 국민의힘 인사들 일부가 캠프에 긴급수혈(?)된 데다 윤석열 전 총장과 이준석 대표의 만남이 보수 유권자층 내의 불안 여론을 진화하는 이벤트로 작용하면서 윤석열 전 총장 지지층이 재결집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전직 의원을 비롯한 국민의힘 소속 인사들이 공식적으로 윤석열 캠프에 합류한 것 자체는 이준석 대표와 긴밀히 조율된 결과는 아닌 걸로 보인다. 이준석 대표가 ‘상도덕’ 운운하고 윤석열 전 총장이 조기입당 하지 않을 경우 관련 인사들을 제명할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 걸 보면 상당히 심각한 분위기였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나 윤석열 전 총장과의 회동이 나쁘지 않은 인상을 만들어 내면서 일단 사태는 봉합되었다. 이준석 대표가 상당한 만족감을 표기한 걸로 봐서 양자 간에 입당 시기에 대한 논의도 일정 정도 공감대를 이뤘을 걸로 추측된다. 윤석열 캠프 합류 인사 중 조기입당에 반대한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과 가까운 인물이 있다는 점에서 윤석열 전 총장 입당 시점이 늦어질 거라는 관측도 있으나, 이건 아직 확정할 수 없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5일 오후 서울 광진구 건대 맛의거리에서 '치맥회동'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캠프에 대변인으로 합류한 김병민 전 비대위원은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의 동의를 구했다는 점을 거론했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은 ‘최선의 국민의힘 후보’와 국민의힘 후보 지지를 여전히 망설이는 중도층을 하나로 묶어 정권교체를 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 그림을 위해 윤석열 전 총장이 당 외에서 최대한 버텨줘야 하는 건 맞다. 그러나 윤석열 전 총장의 ‘120시간’ 발언이나 ‘대구가 아니었으면 민란’ 주장 등은 당외에 형성된 이른바 제3지대 자체가 증발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의 그림이 뭐든, 지금 시점에 윤석열 전 총장이 무너지면 정권교체는 사실상 물 건너 간다는 게 중요하다.

‘긴급수혈’은 윤석열 전 총장을 일단 살리고 보자는 차원이다. 이 결과로 다시 지지율이 반등하면 윤석열 전 총장의 입당은 미뤄질 것이다. 하지만 캠프를 안정화 시킨 이후에도 윤석열 전 총장이 여당 후보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 조기 입당은 불가피할 것이다. 이준석 대표가 제시하는 ‘경선 버스’는 8월 말에 출발하니 윤석열 전 총장으로선 한 달의 시간이 남은 셈이다.

어찌됐건, 어떤 시나리오든 윤석열 전 총장이 입당을 기정사실화 하는 것으로 불확실성을 제거했기 때문에 여당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거다. 문재인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이 40% 선에서 버티고 있는 건 긍정적 신호다. 여당 문재인 정권의 오류와 실책,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를 경선 과정을 통해 보여줘야 한다. 옛날 얘기, 출신 얘기나 하는 한가한 시절이 더 이상 아니다. 1위 후보의 책임이 크다. ‘나도 네거티브 할 수 있다’는 오기가 아니라 책임감을 보여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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