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민주당은 미디어바우처법, 포털 개혁,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등에 나서겠다", "여당은 기득권을 내려놓기 위해 공영방송 사장 후보자 추천권을 국민께 돌려드리겠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6월 교섭단체 대표연설과 당내 미디어혁신특별위원회 가동 시점에 '민생의 시간'을 강조하며 이 같이 말했다. 올 하반기부터 이어지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교체 일정 때문에 6월은 관련 입법 시한의 마지노선으로 지목됐다. 하지만 현행법에 따라 방송통신위원회의 KBS·방송문화진흥회 이사 공모 절차가 시작됐다.

문제는 민주당 내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논의가 단일안도 만들어내지 못한 채 지지부진하다는 점이다. 민주당은 국민의힘 반대를 이유로 공영방송 지배구조에 나서지 않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정치적 고려 이전에 민주당이 내세우는 법안이 무엇인지 정리가 되지 않아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측은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 언론관계법, 구글 인앱결제 방지법 등과 비교되는 상황이다.

21일 국회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실에서 열린 민주당-전국언론노동조합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긴급 협의 (사진=전국언론노동조합)

21일 국회에서는 민주당과 언론노조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안을 놓고 1시간 가량 긴급 협의를 가졌다. 이번 협의는 지난 14일 언론노조가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 지역구 사무실에서 벌인 항의농성을 풀기로 하면서 성사됐다. 민주당에서 윤 원내대표, 이원욱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 조승래 과방위 간사, 김승원 미디어특위 부위원장, 한준호 원내대변인 등 관련 입법 책임자들이 모두 협의에 참여했다.

하지만 이날 협의에서 ▲공영방송 이사 선임 불개입 선언 추진 ▲입법 논의 가속화 등 민주당의 원론적인 입장을 재확인하는 데 그쳤다. 이는 송 대표 등이 6월 내 '공영방송에 대한 기득권 포기'를 선언·약속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같은 협의 결과는 예견됐다. 협의에 앞서 민주당은 지난 19일 1시간 가량의 과방위-미디어특위 연석회의를 가졌지만 이렇다 할 결론을 내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연석회의 주요 의제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안의 처리 방향으로,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야당의 반대가 있는 상황에서 단독처리를 강행할 경우 정치적 후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의견들이 제시됐다고 한다. 안건조정위원회 회부 등의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했지만 이 역시 결론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민주당과의 협의에 참석한 한 언론노조 관계자는 "아직까지 당내에서 단일안도 없는 상태지 않나"라며 "그간 민주당 내에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단일안을 마련하고, 단독처리를 강행하라고 요구했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민주당에서 공영방송 이사와 사장을 '국민위원회'로 추천·선출하는 정필모 의원안, KBS·MBC 공영방송 이사의 수를 13명으로 증원하고 추천 주체를 정치권·방통위·비영리 민간단체·방송사·노동조합 등으로 다분화하는 전혜숙 의원안, KBS 이사와 사장을 국민과 방송사 구성원들이 추천·선출하는 정청래 의원안 등이 발의된 상태다.

언론노조 관계자에 따르면 민주당은 협의에서 최소한의 입법논의 절차가 갖춰지지 않았다는 점을 설명했다고 한다. 공영방송 이사에 대한 정치권 추천을 명문화하는 국민의힘측 법안을 포함해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법안심사 논의가 이뤄진 적 없다는 것이다.

KBS·MBC·EBS 등 공영방송 3사 사옥

물론 국민의힘이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 논의의 장애 요인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여야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등을 논의하기 위한 과방위 '방송 TF' 구성이 불발됐다. 애초 TF는 4~5월경 구성될 예정이었지만 국민의힘은 임혜숙 과기정통부 장관 인사청문보고서 채택 문제를 이유로 TF 구성 안건이 상정될 예정이었던 과방위 회의를 보이콧 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TBS 감사 청구 등의 이유를 들어 6~7월에 걸쳐 과방위 보이콧을 이어나가고 있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만 과방위 차원의 전문가 공청회, 민주당 주최 전문가 토론회 등이 개최됐다. 직전 20대 국회 때부터 관련 논의가 이뤄져 온 점, 언론계의 오랜 핵심 의제라는 점, 문재인 대통령 공약이라는 점 등에 비춰볼 때 민주당 단일안이 나오지 않는 배경에 의문이 쏠린다.

민주당은 '방송 TF' 위원장을 국민의힘 몫으로 돌리며 협의를 진행하려 했지만 보이콧이 이어지는 만큼, 방송법 논의 주도권을 민주당이 다시 갖는 방향으로 노력하겠다는 의사를 언론노조와의 협의에서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민주당의 태도는 여타 법안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민주당 과방위는 지난 1년가량 국민의힘 입장 번복으로 지연돼 온 구글 인앱결제 방지법을 안건조정위 회부 카드로 돌파, 지난 20일 전체회의에서 단독 처리했다. 국민의힘이 보이콧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콘텐츠 산업 보호라는 IT 업계의 조속한 법안처리 촉구를 받아들여 처리를 강행했다.

민주당 미디어특위가 추진 중인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등 언론관계법의 처리를 위한 안건조정위 카드가 전망되고 있다. 국민의힘과 신문업계 등에서는 '언론 재갈물리기'라며 강한 반대입장을 보이고 있다. 언론계 현업단체들과 시민사회에서 또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민주당은 입법처리를 시사하고 있다.

윤창현 언론노조위원장은 "민주당이 징벌적 손배제 등 다른 언론 관련 법안 처리에는 속도를 내면서 정작 가장 중요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에 대해 논의를 미루는 것은 기득권 포기 의사가 없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며 "이미 공영방송 관련 이사 지원·추천 절차가 시작되면서 이번에도 다시 정치권이 공영방송 이사·사장 선임 과정에 개입해 언론장악 논란을 되풀이하고 개혁은 말로만 그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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