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일 오전 서초동 대법원 1호 법정 앞에서 공보 직원 등이 취재 통제 관리를 하고 있다ⓒ윤희상

정봉주 전 의원의 실형이 확정된 22일 대법원 앞은 매우 추웠다. 재판이 열리기 한 시간 전부터 스무 명 남짓의 기자, 방청객, 법원 직원, 경비원이 법정 입구에 서서 몸이 꽁꽁 언 채로 기다리고 있었다.

십여 분 지나자 한 관계자가 “너무 추우니 로비에서 계시라”며 법정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용했다. 이 와중에도 기자만 들어가게 해야 되는지, 방청을 위해 온 일반 시민도 들여보내야 하는지, 법원 관계자들끼리 잠시 실랑이가 벌어졌다. 결국은 모두 로비로 들어가게 됐다. 애초에 법원은 직원 외의 사람들은 로비에도 진입을 허용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자신들도 밖에서 함께 떨다 보니, 인지상정으로 밖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거기에 있던 사람들 모두 이러한 조치에 고마워했을 것이다.

재판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방청객의 줄은 점점 길어지고, 각 언론사 기자들이 속속 도착했다. 미디어스는 미디어를 다루는 매체이다 보니 현장에서 언론사들의 취재 경쟁, 현장 취재 중에 벌어지는 사건도 관심의 대상이다. 해서 사진을 찍을 겸 잠시 바깥을 나왔는데 이게 화근이 되었다. 법정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기자증을 보여 달라’는 것이다. 사실 미디어스에는 기자증이 없다. 기자증이라는 것이 따로 발급해 주는 기관도 없고, 돈 만 원이면 제작해 주는 곳도 있어 아무나 다 만들어 다닌다는 얘기인지 모를 일이다. 기자증이 없어진 지는 꽤 오래됐다.

가로막아선 공보 담당 직원에게 ‘기자증이 없으니, 명함을 보여 드리겠다’, ‘못 미더우면 사무실에 전화해서 확인해 보시라’며 거듭 부탁을 했다. 하지만 담당 직원은 계속해서 ‘정중히 말씀드릴 때 물러나라’는 대답만 했다. 그러면서 “외국 나갈 때 여권 두고 와서 비행기 탈 수 있냐”며 오히려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자신은 “공무원이기 때문에 정해진 규칙에서 예외는 없다”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다.

십여 분 간 실랑이를 벌이며 서 있는 시간에 다른 언론사 기자들은 기자증을 내보이며 서둘러 법정으로 들어갔다. 옆에서 보니 한 언론사는 두 명이 취재를 나왔지만, 한 명은 기자증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필자를 제지한 그 직원은 역시나 기자증이 없으면 들여보낼 수 없다며 한 사람은 통과시키고 한 사람은 막았다. 곤혹스러운 그 기자 역시 잠시 실랑이를 하다가 ‘검찰청출입증은 안 되겠냐’며 출입증을 제시했다. 오로지 기자증만을 고집하던 그는 인정할 수 있는 증거를 제시하자 그 기자를 통과시켰다. 재판시간이 임박해서 기자증을 두고 온 또 다른 기자들이 출입을 제지당하자 “비공개 재판이냐? 공개 재판에 왜 취재를 할 수 없냐”며 큰 목소리로 항의했지만 역시 법정엔 들어갈 수 없었다.

과거 대법원에 큰 이슈가 있을 때 기자증 없이도 취재는 가능했다. 그렇다고 이로 인해 사고가 난 적도 없었다. 이번에 취재진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지침을 내린 이는 홍동기 공보관이라고 한다. 밑에 직원들이야 그들의 말처럼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기관의 일을 널리 알려야 할 책임자인 홍동기 공보관의 머릿속에 ‘취재를 최대한 보장한다’는 의식이 없었던 것으로 읽힌다. 이런 혼란을 막기 위한 어떤 최소한의 조치도 없었다. 사전에 홈페이지를 통해서 취재 매뉴얼을 공개하지도 않았고, 입구에 어떤 안내문도 없었다.

▲ 22일 대법원이 정봉주 전 의원에 실형을 선고하자, 수백명의 시민들이 도로를 일부 점거하고 '정봉주! 정봉주!'를 연호하며 시위를 펼치고 다시 인도로 돌아왔다ⓒ윤희상

이렇게 한 시간 가까이 실랑이만 벌이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대법원 정문 앞은 아수라장이 됐다. 정봉주 전 의원의 실형이 확정돼 그의 정치적 사형선고가 떨어지자 400여 명에 가까운 팬까페 회원과 시민들이 도로 일부를 점거한 것이다. 도로 위에 시민들은 ‘정봉주! 정봉주!’를 연호했다. 달리 분노를 표현할 방법이 없자 도로로 나선 것이다. 준비된 구호 같은 것도 없다. 잠시 후 대기하던 수백 명의 경찰이 출동하고서야 시민들은 다시 정문 앞 인도로 돌아왔다.

대법원 정문을 지키는 경찰과 얼마간의 거리를 두고 대치한 시민들은 마이크를 잡고 ‘정봉주의 조속한 사면’을 주장하는 발언자의 얘기를 경청했다. 어떤 이는 ‘내년에 사그리 숙청해야 한다’며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이번 판결을 앞두고 BBK사건은 ‘정봉주가 무죄면 이명박 대통령이 유죄’라는 말이 회자된 바 있다. 대법원은 정봉주 유죄 판결로 이명박 대통령을 애써 무죄로 만들었다. 비록 공보관의 취재통제로 법정에서 역사적인 순간을 지켜보진 못했지만, 그 판결의 결과가 가지고 올 또 다른 시작은 지켜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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