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과격한 보수 시위꾼들은 대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일까. 저는 이게 항상 궁금합니다. 어버이연합과 관련해 여러 차례 취재를 한 것도 이 때문인데요.

지난 달에는 박원순 서울 시장을 폭행한 한 아주머니가 화제가 됐습니다. 이 분은 최근까지 충남 공주 치료감호소에 수감되어 생활하셨습니다. 검찰이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지만 정신에 좀 문제가 있다는 검찰의 판단에 따라 아주머니는 치료감호소에 1개월 수감되어 있어야 했습니다.

이 아주머니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살기에 이런 과격한 행동을 하셨던 것인지 궁금해 실은 지난 달 공주 감호소에 다녀와 만나 뵙고 왔었습니다.

누구에게나 비난받을만한 과격한 행동을 하는 이유가 도대체 뭔지. 엄청난 비난을 받고 난 뒤 심경의 변화는 없는지. 마냥 비난만 하기보다는 그 분을 이해해 보고 싶었습니다. 문제의 원인을 알아야 해법도 제시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아주머니를 만난 건 지난 14일이었습니다. 짧은 파마머리를 한 아주머니는 감호소 직원과 함께 면회실로 나오셨습니다. 환자복을 입고 계시더군요. 그냥 아주머니를 만나 뵙고 싶어 왔다고 말씀드리자 자신을 응원하러 온 시민인 줄 알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너무나 반갑게 이런 저런 얘기를 해주시는 바람에 차마 기자라고 밝히지 못한 게 좀 마음에 남습니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11월15일 민방위의 날을 맞아 시청역에서 열린 정전대비 지하철 대응훈련을 참관하던 중 한 중년 여성으로부터 폭행 당하고 있다.
레드콤플렉스에 찌든 ‘박원순 폭행’

올해 62살인 아주머니는 심각한 ‘레드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약간 편집증 환자처럼 보였다고 할까요. 한참 이런 저런 얘기를 하시던 도중 한번은 제게 귀를 갖다 대시더니 속삭이는 목소리로 “우리 사회 지하에 20만명의 간첩들이 살고 있다”고 알리셨습니다.

박원순 시장은 왜 때렸냐고 묻자 “박원순 시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에 참배하러갔기 때문에 ‘빨갱이’”라고 답했습니다. 며칠 동안 박 시장을 때리려고 서울시청 근처를 배회하셨더군요.

아주머니는 정동영 의원도 때렸었습니다. 그는 “‘김대중, 노무현의 앞잡이’이니까 빨갱이 아니냐”면서 정 의원에 대한 폭행도 정당화 했습니다. 이분의 입에선 ‘빨갱이’라는 단어가 떠나질 않았습니다.

아주머니는 이회창 의원을 대통령으로 만들려고 불철주야 노력을 해왔습니다. 얼마 전 자유선진당에 가입도 했다고 하는데요.(그렇다고 박 시장 폭행의 배후에 자유선진당이 관련되어 있는 건 아닙니다) 지난 대선 때는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에서 이 의원을 소개하는 홍보 전단지도 나눠주면서 활동했다고 합니다. 이 의원이 판사 출신이기 때문에 “빨갱이를 잘 때려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하시더군요.

“윤봉길 의사의 심정으로 빨갱이 척결”

여러분은 아주머니의 이런 생각과 행동을 어떻게 보시나요.

그는 자신을 윤봉길 의사처럼 생각하는 듯 했습니다. ‘사람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나라를 위해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논리겠지요. 실제로 아주머니는 “윤봉길 의사의 심정으로 나라를 구하고 싶다”고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요즘 이런 저런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어버이연합도 이 아주머니를 영웅이라고 추켜세우고 있습니다. 며칠 전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을 만나 이 아주머니와 관련해 이것저것 물어보았는데 “남들이 하지 못하는 행동을 하는 애국자”라고 평하더군요. 아주머니는 지난 해 즈음부터 어버이연합과 드문드문 활동을 같이 해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분을 영웅처럼 추켜세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주장을 펴더라도 절대 폭력이 수반되어서는 안 됩니다. ‘빨갱이’라는 극단적 표현을 쓰며 좌파나 진보를 이 사회에서 제거해야 할 대상처럼 주장하는 것은 민주적이지 못한 태도입니다. 민주주의는 ‘사회주의 이념’까지 포괄해 ‘나와 다른 사상을 존중하는 것’을 기본 원리로 두고 있는 체제입니다. 민주국가인 일본에서 공산당이 엄연히 존재하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레드 콤플렉스, 시대의 피해자

그러면서도 한편 저는 이런 레드 콤플렉스에 빠져 있는 분들을 일종의 시대의 피해자라고 생각합니다. 박원순 시장을 공격한 아주머니는 60대 여성입니다. 매카시즘이 기승을 부리던 60-7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낸 분이지요. 사회주의는 무조건 악이고, 제거해야 할 대상이라고 배운 안타까운 세대입니다. 사회주의를 북한체제와 동일시하는 게 이 세대의 특징이지요.

예전에는 이런 개념이 정상이었고 주류였지만 지금 이런 주장을 하면 (적어도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지요. 이들은 점점 소외감을 느낍니다. 자신들이 보기에 분명 사회가 미쳐 돌아가는 건데 자신들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으니 뭔가 가치관의 혼란을 느낍니다. 그래서 박원순 시장을 공격한 아주머니 같은 분들은 자신이 매카시즘이 만들어 낸 ‘시대의 괴물’이란 것을 모른 채 ‘왜 우리 사회가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지’, ‘왜 나를 정신병원에 가두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계속 저런 식의 일탈행위를 합니다. 자신들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 점점 폭력적인 표현을 선호하게 됩니다.

감호소를 나오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박원순 시장이 아주머니를 고소하지 않기를 잘 했다’고요. 이런 분들은 법정 소송 대상이 아니라 치유의 대상, 위로해주어야 할 대상인데 그에 걸맞게 잘 대처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진짜 비난받아야 할 이들은 누구인가

이런 극단적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따끔하게 비판해줘야 하는 건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저는 더 나아가 이들을 이렇게 만든 사람들이 누구인지에 대한 고민이 함께 필요하단 생각을 합니다.

생각해봅시다. 만약 이분들이 냉전시대를 겪지 않았다면 과연 이런 극단적인 레드 콤플렉스를 형성할 수 있었을까요. 만약 이분들이 ‘사회주의는 나쁜 것, 빨갱이’ 라는 인식을 주입받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사상 괴물’이 될 수 있었을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런 극단적인 ‘사상의 절름발이’들을 만들어 놓고, 정작 자신들은 따뜻한 아랫목에서 기득권의 단맛을 누리고 있는 그분들을 함께 끄집어내야 합니다. 겉으로 드러난 우익 행동대장들 뿐 아니라 이들을 배후조종해 왔던 그분들을 함께 비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이야말로 절름발이 유전자를 배포한 분들이니까요.

하지만 대부분은 폭력을 일삼는 ‘우익 깡패’들을 ‘미친 노인들’이라고 비난하고 말 뿐 이 ‘깡패 유전자’를 배포한 세력들에는 눈을 감습니다.

아주머니는 제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치료감호소에서 나오면 다시 행동에 나서겠다고 했습니다. 분명 조만간 또 길거리 어느 곳에서 ‘빨갱이 퇴치’를 신념으로 누군가를 공격하고 계실 겁니다. 그러나 저는 이 아주머니가 밉지 않습니다. 그저 애처로울 뿐. 부디 잘 치료 받고 마지막 남은 삶을 건강하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현재 한겨레 디지털뉴스부 기획취재팀에서 취재를 하고 있는 기자다. 영상 카메라와 취재수첩을 함께 들고 현장을 누비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앞선 멀티형 기자가 되려고 노력중이다.

우리 사회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을 감시하는 사명을 놓는 그 순간, 기자가 아닌 단순 직장인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산다. 그저 그런 기자가 되느니 문제적 기자가 되는 게 차라리 낫겠다고 생각하고 살기도 한다. 한겨레와 한겨레 독자들을 무지 사랑한다.

개인 블로그 http://blog.hani.co.kr/catalu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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