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던 새 축구대표팀 감독 인선 작업이 결국 K리그 우승을 이끈 '봉동이장' 최강희 감독 선임으로 결론이 나게 됐습니다. 대한축구협회는 21일 오전, 기술위원회를 통해 성적 부진으로 경질한 조광래 감독 후임으로 최강희 전북 현대 감독을 선임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단 오는 2월말 열리는 쿠웨이트와의 3차예선전 한 경기만 맡을 수 있지만 기술위원회 결정 또는 최강희 감독 본인 수락 여부에 따라 최종예선전 역시 함께 맡을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될 경우, 현재 맡고 있는 전북 감독을 수행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워질 것으로 보입니다.

최강희 대표팀 감독이 된 세 가지 이유

▲ 21일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 9차회의를 통해 국가대표팀 신임 감독으로 전북현대 최강희 감독을 추천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일단 축구협회 기술위원회가 최강희 감독을 선임한 배경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당장 두 달 정도밖에 남지 않은 쿠웨이트전을 앞두고 한국 축구를 잘 아는 감독을 선임해야 했고, 이는 해외파보다는 국내파 쪽으로 시선을 가질 수밖에 없는 배경이 됐습니다. 그 가운데 K리그 감독을 오랫동안 역임하고 최근 3년 동안 K리그 우승을 두 차례나 이룬 최강희 감독이 적임자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국내 선수들의 특징을 잘 아는 감독을 선임해야 했던 가운데서 선수들의 실전 경기조차 직접 보지 못한 외국인 감독보다는 일단 국내파 현역 감독을 선호한 것으로 보입니다.

최강희 감독이 색깔 있는 축구를 구사할 수 있는 장점을 갖춘 것도 감독 선임 배경이 됐습니다. 최 감독은 수비수 출신임에도 공격적인 축구 전술을 추구하며 K리그의 모범 답안 같은 지도력을 과시했습니다. '닥공 축구'라는 명쾌한 전략을 제시하면서 전북 현대가 화끈하고 재미있는 축구를 구사하는 데 최 감독의 역할은 대단했습니다. 뚜렷한 철학을 갖고 팀을 만들어가는 과정과 결과가 모두 좋았다는 점에서 축구대표팀 감독으로도 손색이 없을 것이라는 것이 축구협회의 판단이었습니다.

축구대표팀에서의 선수 지도 경험이 있는 것도 한 몫 했을 것입니다. 최 감독은 전북 감독을 맡기 전, 이미 3년 동안 대표팀 코치를 지낸 바 있습니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박항서 감독을 보좌했으며, 2003년부터 2년 동안 움베르트 쿠엘류 감독 아래서 코치직을 수행했습니다. 어려움에 빠진 상황에서 대표팀 분위기를 파악하는 시간을 최소화하려면 적어도 대표팀 지도 수행 경력이 있는 사람이 필요했고, 어느 정도 대표팀 지도 경력이 있던 최 감독이 좋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또 이어진 K리그 감독 빼오기, 도대체 언제까지?

물론 현 상황에서 축구협회의 선택은 옳은 선택일 수 있습니다. 최대 위기에 빠진 대표팀 상황을 최대한 빠르게 수습하고 1차 목표인 최종예선 진출을 이룰 수 있는 적임자가 최강희 감독밖에 없다는 게 분명한 사실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두고두고 이번 선임이 또 한 번 큰 아쉬움을 지울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원 포인트든, 전임 감독으로 전환하든 또다시 K리그 현역 감독을 마치 '빼오듯이' 선임했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최강희 감독은 어떻게 보면 자의보다 타의로 이번 대표팀 감독직을 수락했을 것입니다. 최 감독은 불과 며칠 전까지 수차례나 확고하게 전북을 명문팀으로 만드는 것에만 집중했고, 대표팀 감독직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의 의지를 받들어 전북 구단에서도 그를 최장수 감독 만들기에 나서려 했고, 이는 K리그의 좋은 사례로 만들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하지만 축구협회는 폭넓은 시선으로 내다보지 않고 또다시 K리그 현역 감독을 우선순위로 두는 절차를 밟았습니다.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급한 불은 끄고 보자'는 식으로 넘겼고, 결국 K리그 우승팀 감독을 대표팀 감독 우선순위로 정한 것입니다. 팀 우승 후 푹 쉬면서 내년 시즌을 구상하려 했던 최강희 감독 입장에서는 축구협회의 끈질긴 접촉에 못 이겼을 가능성이 크며, 여기에는 과거 선수 시절 스승이었던 조중연 축구협회장과의 관계도 무시 못 했을 것입니다. 결국 또 한 번 K리그 현역 감독이 계약 기간을 남겨놓고 대표팀 감독을 수행하는 사례를 남겼습니다.

이미 최근 몇 년 사이에 이 같은 일은 계속 반복됐습니다. 2007년 핌 베어벡 감독이 물러난 뒤 공석이 된 올림픽팀 감독직에 박성화 당시 부산 아이파크 감독이 올라 상당한 비난을 불러 일으킨 바 있습니다. 당시 부산 감독이 된 지 17일 만에 축구협회는 박 감독을 올림픽팀 감독으로 앉혔고, 당시 붉은악마는 항의 차원에서 응원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후에도 허정무 당시 전남 감독을 2007년 12월, 새 대표팀 감독으로 갑작스레 선임하기도 했고, 2010년 7월에도 조광래 당시 경남 감독이 감독직을 수행하다 대표팀 감독에 취임해 기존 소속팀 감독직을 포기했습니다. 홍명보 올림픽팀 감독을 제외하고는 최근 5년 동안 대표팀, 올림픽팀을 맡은 감독들이 모두 K리그 현역 감독을 수행하다 맡았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일방적인 인선, 축구협회의 '나쁜 버릇' 안타깝다

클럽팀 현역 감독이라 해도 본인의 의지가 확고하고, 클럽에서 대승적인 차원에서 놓아주겠다는 의지까지 맞아떨어질 경우, 클럽팀 감독이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오로지 국가대표의 운명 때문에 소속팀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빼오기 식으로 대표팀 감독을 인선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이는 K리그, 클럽팀보다 국가대표팀이 우선시돼야 한다는 제왕적인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결과입니다. 여러 보도를 통해서 보면 충분한 시간과 심사숙고할 시간조차 주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일방적인 인선이 아닌가 하는 염려도 있습니다.

최강희 감독의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이 환영받을 일이라고는 해도 어쨌든 축구협회가 보여준 그 과정이 별로 보기 좋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많이 씁쓸한 감독 인선으로 또 기억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쿠웨이트전 '원포인트'로 끝나면 모르겠지만 만약 그 이후에도 계속 팀을 맡아 전북 감독을 정리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또다시 도진 축구협회의 '나쁜 버릇' 때문에 국가대표 축구, 그리고 K리그까지 같이 상처받는 일로 남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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