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오후 7시 경남 창원에 있는 노동회관 3층 강당에서 저에겐 굉장히 어색한 행사가 하나 열렸습니다. 강당은 엄청나게 넓었고, 앞면에 붙은 펼침막도 무지하게 컸습니다. 하지만 참석자는 30명이 될까 말까 했습니다.

▲ 펼침막이 무지하게 큽니다. 김용택 선생님이 찍은 사진입니다.

출판기념회 대신 '지은이와 함께 하는 시간'

현수막에 적힌 행사 이름은 '대한민국 지역신문 기자와 살아가기, 지은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출판기념회'도 아니고, '저자 간담회'도 아닌 이런 어정쩡한 이름을 붙이게 된 사연이 있습니다. '지은이'란 저를 말하는 거였는데, 제가 "출판기념회는 하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이 행사를 마련한 지인들이 "그러면 저자 간담회로 하면 어떻겠느냐"고 했습니다. 저는 "내가 무슨 황석영이나 김훈도 아닌데, 무슨 저자 간담회냐"고 했고, 결국 이런 이름이 붙게 되었던 것입니다.

원칙은 이랬습니다. 첫째, 참석자 누구에게도 '봉투'를 받지 않는다. 둘째, 화환도 받지 않는다. 세째, 책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을 땐 정가(12,000원)보다 할인된 가격(10,000)으로 드린다. 네째, 책을 판매한 돈은 뒤풀이 술값으로 쓴다. 다섯째, 술값이 모자라면 그 자리에서 갹출한다. 여섯째, 불특정 다수에게 행사를 알리지 않고 진짜 가까운 지인들만 모신다.

이 중 제가 다니는 신문사 사장이 일방적으로 커다란 화환을 보내신 것 말고는 대체로 지켜졌습니다. 또 제가 미처 예상치 못했던 펼침막의 크기와 강당의 넓이가 좀 부담스러웠습니다. 그 때문인지 제가 좀 긴장해서 두서없이 헤매기도 했습니다.

▲ 뒤풀이 모습입니다. 역시 김용택 선생님이 찍었습니다.

제가 그날 행사를 자랑하고자 이런 글을 쓰는 건 아닙니다. 저는 이번 책 말고도 2005년에 <토호세력의 뿌리>라는 책을 낸 적이 있습니다. 그 때도 출판기념회를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 땐 이런 식의 행사도 없었죠.

이유는 분명합니다. 기자라는 직업이 현실적으로 취재원들에게는 '권력'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제가 그동안 보아온 기자 또는 언론사 간부들의 출판기념회는 그랬습니다.

기자와 정치인의 출판기념회는 민폐이자 관폐

자신이 재직 중인 신문 지면을 통해 대대적인 홍보를 하고, 수백·수천 장의 초청장을 기자들의 출입처에 뿌리는 출판기념회는 엄연히 관폐요, 민폐였습니다. 까놓고 말하자면, '드러내놓고 촌지를 챙기는 행사'였습니다. 언론사나 기자와의 관계에서 을(乙)이 될 수밖에 없는 공무원이나 유관기관·단체, 정치인, 기업체 홍보담당자들은 울며겨자먹기로 책값보다 훨씬 두툼한 돈봉투를 들고 참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 책을 낸 기자는 한몫 단단히 챙기겠죠. 심지어 그 출판기념회를 주최해준 해당 언론사와 그 수익(?)을 나눠 챙겼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사실 기자들의 '드러내놓고 촌지 챙기기'는 출판기념회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자기 결혼식 때 잘 알지도 모르는 출입처의 모든 공무원에게 청첩장을 돌려 민망한 뒷말을 낳은 기자도 있었고, 심지어 어느 지역의 주재기자는 '용돈이 떨어지면 꾀병으로 병원에 입원한 후 소문을 낸다'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까지 있었습니다. 그러면 을(乙)에 해당하는 출입처 사람들이 문병차 봉투를 가져온다는 겁니다. 제발 헛소문이길 바랍니다.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도 기자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현실 권력자에게 밉보여선 안될 수많은 사람들이 돈봉투를 들고 행사장을 찾습니다. 이명박 정권의 실세로 떠오른 이재오 의원의 출판기념회에는 무려 1만 명이 모였다고 합니다. 게다가 선거법상 정치인은 책을 무료로 줄 수 없도록 돼 있다고 합니다. 합법적인 모금창구인 셈이죠. 거기서 거둬들인 돈이 대체 얼마일까요?

물론 좋은 책을 널리 알리기 위해 지인들이 출판기념회를 열어주는 것을 말릴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속이 너무 빤히 드러나 보이는 정치인과 기자들의 한몫 챙기기 행사는 의원윤리강령이나 기자윤리강령으로도 막을 수 없는 걸까요?

1991년 진주에서 일어난 한 시국사건이 전국 언론에 의해 완벽하게 왜곡되는 과정을 직접 목격한 것을 계기로 지역신문 기자로 살기로 마음먹었다. <진주신문>과 <경남매일>을 거쳐 6200명의 시민주주가 만든 <경남도민일보>에서 자치행정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지역현대사와 언론개혁에 관심이 많아 <토호세력의 뿌리>(2005, 도서출판 불휘)와 <대한민국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가기>(2007, 커뮤니케이션북스)라는 책을 썼다. 지금의 꿈은 당장 데스크 자리를 벗고 현장기자로 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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