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누군가 혹은 한 언론이 엄청난 사실을 폭로한다 2) 일부 언론들이 이를 인용해 보도한다. 3)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에서 급속도로 확산된다 4) 조중동 등 보수 신문들의 눈감기가 시작된다 5) KBS·MBC·SBS 침묵도 시작된다 6) 사안은 잊힌다 혹은 덮힌다.

굵직굵직한 사안이 터져 나올 때마다 반복되는 익숙한 패턴이다. 지난 주말 사이, “청와대가 외압을 행사해 경찰이 디도스 사건을 은폐·축소했다”는 어마어마한 주장이 담긴 언론 보도가 나왔지만, 이번에도 이 패턴은 엇나가지 않았다. 본질을 외면한 채 ‘최소한’으로 다루거나, 그 마저도 다루지 않는 KBS·MBC·SBS 방송3사 보도는 사실상 침묵과 다르지 않다.

“청와대 외압 행사해 중요 사실 은폐한 것으로 드러나”

▲ 12월18일 KBS <뉴스9> 화면 캡처
시사주간지인 <한겨레21>은 19일 발행된 제891호를 통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디도스 공격에 대한 경찰의 수사 과정에서 청와대가 외압을 행사해 사건의 중요 사실을 은폐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또 사정 당국의 고위 관계자 발언을 통해 “청와대는 특히 청와대 행정관 박아무개(38)씨가 선거 전날 저녁 디도스 공격 관련자들과 술자리를 함께 한 사실, 그리고 한나라당 관계자들과 해커들 사이에 대가성 돈거래가 있었던 사실을 공개하지 않도록 압력을 행사한 정황이 드러났다”고도 전했다.

이 뿐 아니다. <한겨레>에 따르면,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누리집 디도스 공격 사건 수사 발표 이전에 조현오 경찰청장에게 두 차례나 전화를 건 데 이어 정진영 민정수석과 사건 내용에 대해 긴밀히 상의까지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경찰 수사에 개입해 사건을 축소·은폐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아울러, <국민일보>도 단독 보도를 통해 “디도스 공격의 핵심 인물을 검거했다는 지난 2일 경찰 수사 발표를 청와대가 늦추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청와대 쪽에서 수사를 좀 더 해보고 발표하자는 의견을 내려 보냈다는 것이다.

이처럼 디도스 공격과 관련해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경찰 수사에 개입한 게 아니냐는 의혹과 관련 정황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정치권 뿐 아니라 곳곳에서 “만약 사실이면 이는 대통령 탄핵감”이라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파장은 엄청나다. 하지만 이 같은 사안마저도 방송3사 눈에는 대수롭지 않은 사안처럼 비치나 보다.

구체적으로, KBS와 MBC의 리포트 제목을 보면 “두 번의 통화가 있었지만 외압은 없었다”는 경찰 쪽의 주장에 방점을 찍었다. 약속이나 한 듯, 리포트 제목이 흡사하다.

<“두 차례 통화 …외압 없어”> KBS <“두 번 통화.. 외압 없었다”> MBC

해명만 가득한 이상한 나라의 KBS, 이 보다 더 이상한 SBS

먼저, KBS <뉴스9>는 “경찰이 디도스 공격사건을 수사할 당시 청와대 김효재 정무수석이 조현오 경찰청장과 전화통화를 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전하면서도 당사자들의 해명과 주장만을 힘을 실어 보도했다. 보도의 상당 부분이 조현오 청장의 해명으로 채워진 이상한 보도다. 당연히, ‘청와대의 외압’ 여부에 대한 본질은 전하지 않았다.

▲ 12월18일 SBS <8뉴스> 화면 캡처
SBS의 보도는 더 이상하다.

SBS <8뉴스>는 디도스 사건을 둘러싼 청와대의 외압 의혹이 터져 나왔는데도 엉뚱하게 민주통합당의 ‘입’을 통해서만 관련 사건을 보도했다. 사건의 핵심을 전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관련해서 제기되고 있는 의혹, 정황들은 모조리 침묵한 채 그저 민주통합당의 ‘공세’에만 맞춰 사안을 전한 셈이다.

“이런 가운데 민주통합당은 선관위 디도스 사건의 파장을 축소하기 위해 청와대가 경찰에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공세를 강화했습니다.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면 대통령 탄핵사안이라면서 국정조사와 특검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진상을 밝힐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MBC 보도는 그나마 낫다.

▲ 12월18일 MBC <뉴스데스크> 화면 캡처
<뉴스데스크>는 “청와대가 외압을 행사해 경찰이 디도스 사건을 은폐·축소했다”고 한 주간지가 사정당국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게 전부다. 쏟아지는 여러 의혹들을 상세히 취재하기 보다는 단순 인용한 뒤 경찰과 청와대 쪽 입장만을 각각 엮어 전했을 뿐이다.

<한겨레21> 보도 이후, “만약 사실이라면 이는 대통령 탄핵감”이라는 주장이 잇따라 쏟아지고 있다. 물론 청와대와 경찰 쪽에서는 “사실무근”이라며 반박하고 있지만, 사실 여부와는 관계없이 이번 사안은 그 자체만으로도 파장이 어마어마하다. 그런데도 이번 사안에 대한 방송3사의 보도는 너무나 한가하다. 해명을 위주로 보도하거나, 정치권의 ‘입’을 빌어 관련 내용을 전하거나, 적당히 인용 보도를 하거나… 각양각색이다.

하지만 더 안타까운 건, 이 같은 보도마저도 방송3사에서 접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당장 19일 오늘 밤부터 연일 김정일 사망 소식이 방송 뉴스를 도배할 게 뻔하다. 디도스 공격을 둘러싼 의혹들을 취재하며 진실을 좇는 몇 안 되는 소수의 언론인들만 앞으로 더 분주해 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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