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정희] 우리가 알고 있는 인상파의 등장은 '사진'의 발명과 깊은 관련이 있다. 사진술의 등장으로 그림은 더 이상 대상의 '모사'만으로 존재 의의를 인정받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대상의 사실적 모사 대신, 그리는 이의 주관적 해석이 더해진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사진은 그 이전 회화의 영역을 대신하며 자신의 문화적 영역을 개척해나간다.

16세기부터 시작된 사진술의 단초는 19세기 대중화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많은 기술적 진보의 과정을 거쳐 명실상부 현대 문화의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1839년 허셀이 처음 사용한 이래 이제는 세계인들의 공용어가 된 사진(Photography)은 우리나라에서도 '근대'의 문명의 일환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올해 12회를 맞이한 서울사진축제는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한국여성사진사>의 첫 번째 장면으로 1980년대 여성 사진가들을 '운동'적 차원에서 조망하고자 한다.

여성 사진가의 등장

2021 서울사진축제 '한국여성사진사Ⅰ: 1980년대 여성사진운동’ 포스터

1900년대에 여전히 '내외법'이 존속하는 근대 조선에서 사진을 찍고자 하는 여성들의 수요에 맞춰 여러 명의 여성 사진사들이 경성에서 활동했다고 한다. 그중 이홍경은 1921년 종로에 '부인사진관'을 연 지 10개월 만에 2층까지 사진관을 확장할 정도로 호황을 누리기도 했었단다. 당시 조선일보는 여성 직업인으로 사진사를 소개하기도 했고, 1930년대 들어서는 사진사라는 직업이 여성들에게 유망한 직종으로 떠오르기도 했다고 전시회는 설명하고 있다. ‘근대 여성과 사진’이라는 조합 자체가 생소한데, 이미 근대의 초입부터 여성 사진사가 활약했으며 당시 촉망받는 여성의 직업이었다는 사실은 신선했다.

전시회는 근대 문명과 함께 시작된 여성 사진가의 활약을 현대로 이어받는다. 대표적인 여성 교육기관인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사진 전공이 신설된 것은 1954년이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사진으로 '석사' 학위를 딴 이는 이혜숙으로, 그녀는 대학원 졸업 후 조선일보에서 사진 기자로 활동하고 후학을 양성하는 등 30여 년 동안 우리나라 여성 사진가 1세대로 활약했다.

전후 대중잡지들이 창간되며 붐을 이뤘지만 거기서 활약하는 사진가들은 대다수가 남성이었다. 그런 가운데 패션잡지와 사진기자로 활약하던 김용순은 그 시절의 독보적인 '여성 카메라맨'으로 소개된다.

<한국여성사진사>라는 제목에 걸맞게 전시회는 근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이 '사진'이라는 문화적 영역에서 어떻게 그 활동성을 확장해 왔는가를 시대별, 인물별로 설명하고 있다. 남편에게서 사진 기술을 익혀 사진가가 됐던 여성들은 현대 교육과정을 통해 본격적으로 전문 사진가로 그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1980년대 여성 사진 운동

김동희, '나라굿 신딸 채희아'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지금이야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 게 범사가 되었지만, 우리 사회에서 카메라가 대중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것이 1980년대였다. 카메라의 대중적 확산으로 아마추어 사진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었고, 이에 비례하여 여성 사진가들이 급증하게 되었다고 전시회는 밝힌다.

더불어 여성 사진가들의 양적 확산은 질적인 발전을 낳는다. 작가로서 고유한 작품 세계를 가져야만 가능한 개인전은 1960년대 단 1회에 불과했고,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손에 꼽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1980년대 60여 명의 여성 사진가들의 개인전이 한마당 화랑, 사진공방 타임스페이스 등의 개관과 함께 활성화되었다.

근대 조선에서 여성이 해볼 만한 직업인 사진가였지만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문화적 영역에서 여성 사진가는 드물었다. 1980년대는 여성 사진의 ‘질적인 발전’을 이룬 시기이기에 전시회는 1980년대의 여성 사진을 '운동'의 차원에서 다루고자 한다.

전시회는 1980년대의 대표적 여성 사진가 10명의 작품을 통해 1980년대 여성 사진 운동사를 설명한다. 특히 1983년 한마당 화랑의 두 번째 개관 기념 <여류 사진가> 전을 주목한다. 당시 활동하던 6명의 여성 작가들을 한데 모은 사진전에서는 포스트모던한 사진 기법은 물론, 당시로서는 생소하기까지 했던 ‘여성주의 사진’에 대한 본격적인 모색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1983년 첫 개인전 <굿판> 개최와 함께 사진집을 출간한 김동희는 1970~80년대 굿판을 찾아 현장을 기록한다. 토속 문화 '굿'이 김동희 손을 통해 세상에 생생하게 전달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와이에서 느낀 자연의 숭고함을 담은 연작과 함께 '이매방의 승무'를 선보인 이은주의 작품 역시 그 자체로 우리의 문화 현대사이다.

그런가 하면 미국 한국일보에서 근무하며 시카고 아트인스티튜트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김민숙은 다중 이미지를 콜라주하는 방식으로 불교의 세계를 시각화한 '만다라' 연작을 전시한다. 또한 역시나 미국에서 거주한 김테레사는 1970년대에서 9.11 테러 이후까지 워싱턴 스퀘어 연작을 통해 미국 현대 사회를 조명한 작품을 선보인다.

류기성, '무제'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잡지사 사진 기자로 오래 활동한 류기성의 패션 사진들은 그 자체로 1980년대의 문화사가 된다. 그리고 박영숙이 오랜 시간 동안 천착해온 <36인의 포트레이트>나 포토에세이 형식의 <변관식의 초상 연작>은 또 다른 문화 현장의 '기록'이다.

<폴라로이드 SX-70> 등을 통해 사진의 시각적 확장과 변주를 보여준 송영숙, 자신의 유학 시절 이야기를 콜라주 한 후 다시 복사기로 프린트한 카피 아트, 일렉트로그래피를 선보인 홍미선은 '실험'으로서의 사진 운동의 성과를 보여주었다.

<어느 예술가의 초상> 연작과 <COSMOS> 전을 통해 자신만의 탐구 방식을 보여준 임향자와, 식물의 추상적 형태를 시바크롬 프린트 특유의 컬러로 재현한 정영자의 작품에서 예술로서 사진의 확장성을 한눈에 살필 수 있다.

여성 사진 예술가들의 존재가 정립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여성 사진사의 역사를 꿰어보고자 한 전시회. ‘1980년대 여성사진운동' 전을 통해 지난 근현대 시대 사진예술 분야에서 여성의 발자취를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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