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정희] 지난 6월 20일 방영된 KBS 1TV <시사기획 창> '불평등 사회가 586에게'는 19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이제는 50대가 된 민주화 세력, 그러나 어느덧 우리 사회에서 거대한 '벽'이 되어버린 세대 ‘586’에 대해 말한다.

586, 우리 사회의 압도적 중추 세력

KBS 1TV <시사기획 창> ‘불평등 사회가 586에게’ 편

1990년 <시사저널>은 한국을 움직이는 집단을 발표했다. 1위가 민자당, 2위 평민당에 이어 ‘전대협’이 3위를 차지했다. 이젠 영화 제목으로 더 친숙한 1987년. 다큐는 민주화 투쟁, 그 정점에서 586 세대론의 발화점을 찾는다. 지금은 정치인으로 더 익숙한 우상호, 송영길, 임종석, 이인영 등은 그 시절 전대협을 이끌던 인물들이다.

87세대는 대학생활을 통한 문화 사회 학문적 정체성이 아니라, 독재에 항거하여 승리를 쟁취했던 사명감을 그들의 정체성으로 삼는다. 하지만 동시에 그 항거의 기억에는 많은 동지들을 잃고 정치적으로 핍박받던 '울분'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임동균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에 따르면 청년 시기에 무엇을 경험했느냐가 일생에 걸쳐 시각, 감수성, 정치적 태도 등을 규정한다고 한다. 전쟁을 경험한 그 앞의 세대처럼 민주화 운동을 경험한 세대 역시 그들 못지않은 파워플한 절대적 경험에 의해 세대적 규정을 받는 세대이다.

KBS 1TV <시사기획 창> ‘불평등 사회가 586에게’ 편

그들에게 세상은 '청산되어 할 악의 세력'으로 가득 차 있다. 20대를 넘어 386이 되고, 486을 지나 586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들은 '전투' 중이다.

다수의 학생운동 출신들이 정치의 전면에 나섰다. 이른바 '386 세대' 그들은 30대 나이에 의원 배지를 달았고, 그들의 세대적 확장성은 전무후무했다. 18대 68석, 19대 105석, 20대 132석. 지난 총선을 앞두고 세대 교체론이 등장하며 임종석 의원이 정계 은퇴를 선언하기도 했지만 21대 국회의원 중 174석, 단일 세대가 전체 국회의원 중 60%를 차지하는 '이변'을 보였다. 국회의원만이 아니다. 청와대 전체 수석 10명 중 8명이 586이다.

타도해야 할 시대의 수혜자

KBS 1TV <시사기획 창> ‘불평등 사회가 586에게’ 편

특정한 집단적 사회적 기억을 가진 세대가 정치적으로 압도적 다수를 점한 현실. 과연 문제가 없을까? 그런데 그들은 여전히 투쟁과 타도를 외치지만, 어쩌면 신자유주의 현실에 가장 잘 적응한 세대가 아닐까? 그들이 타도해야 할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가장 많은 이익을 얻고 있는 세대, 어쩌면 지금의 구조가 유지되기를 마음속 깊은 곳에서 바라고 있는 건 아닐까? 다큐는 묻는다.

86세대가 사회에 진출하던 1994년, 대졸 신입사원 모집 인원이 3만 명이었다. 학과 사무실에 쌓인 원서를 내면 붙는 건 당연지사인 시절, 학과 공부를 안 해도 취업은 할 수 있었다. 평생직장의 시대, 2~3년 월급을 모으면 집을 살 수 있던 시대였다. IMF를 겪었지만 아직 과장급이었던 586세대는 살아남았다. 고도성장의 시대, 승진하며 그 혜택을 누렸다. 정치와 마찬가지로 30대부터 이사진이 되었고, 2016년~2017년 100대 기업 이사진 중 60년대 생이 72%이다. 사기업만이 아니다. 주요 공공기관도 비슷한 비율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86세대가 사회 주도층이 되어온 시기는 한국의 사회적 불평등이 확대되어 온 과정과 일치한다.

586이 된 세대가 정치경제 분야에서 압도적 중추 세력이 된 것과 궤를 같이 하며, 교육 분야에서도 586은 우리 교육의 지평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학생운동 등으로 법적인 제약을 받게 된 많은 386들이 교육 시장으로 진입했다. 박재원 소장 역시 마찬가지다. 대학생 출신으로 철도노조운동을 하기 위해 현장에 위장 취업을 했던 박재원 소장은 그후 사교육 시장에 진출하여 일타강사로 활약했다.

그렇게 강사가 된 86세대, 그리고 학부모가 된 86세대는 사교육 시장을 이른바 전형적인 '내로남불'의 전장으로 바꾸어 놓았다. 더 이상 공교육은 의미가 없어졌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룬 성취, 성공의 경험을 자녀들에게 투사하며 사교육 시장의 가장 강력한 소비자 집단이 되었다. 이들이 교육이란 이름으로 자녀들을 특혜의 에스컬레이션에 태우며 교육 시장은 더욱 양극화되었다.

도덕적 확신 지수가 높은 50대

KBS 1TV <시사기획 창> ‘불평등 사회가 586에게’ 편

<시사기획 창>은 사회여론조사 전문가들과 함께 세대인식조사를 실시했다. 20~34세 청년과 586에 해당하는 50대, 두 세대에만 집중해 정치, 국가관, 환경 등과 관련한 210개 문항을 1200명에게 물었다. 그 결과, 지금의 50대들은 20대에 비해 ‘도덕적 확신’ 항목에서 높은 자신감을 내비쳤다. '본인의 의견대로만 정책이 만들어진다면 우리나라는 정말 좋은 나라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고, 심지어 자신들이 능력도 있으면서 따뜻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본인들이 스스로를 평가하는 것과 달리, 외부에서 50대를 보는 시선은 차갑다. 거리에서 만난 20대들은 586세대가 젊은 층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답한다. 586에게 젊은 세대는 존중해야 할 세대가 아니라 자신들의 옳은 생각을 따라와 주어야 하는, 생각이 부족한 세대다.

겉으로는 민주적이지만 ‘사실은 권위적’이라는 데 젊은 세대는 물론 586 자신들도 공감한다. 학생운동을 하던 시절, 맞서 싸워야 할 대상은 군인들이었다. 적과 아의 구분 '편 가르기'는 전장에서 기본이었다. 또한 전장에서 수직적 위계 서열은 효율적인 방식이었다. 그런 586의 습성은 우리 사회 연공서열에 따른 관료주의, 수직적 구조로 내화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이 만든 사회적 구조에 젊은 세대는 숨 막혀 한다. 변화의 동력이던 세대가 이제 변화를 가로막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KBS 1TV <시사기획 창> ‘불평등 사회가 586에게’ 편
KBS 1TV <시사기획 창> ‘불평등 사회가 586에게’ 편

청년층의 60.2%가 자신들의 문제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고 있다고 토로한다. 청년 62.0% 상층 이동 가능성에 회의적인 반면, 77.7%가 하층 추락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6~70%가 희망이 무너졌다고 말한다. 이런 청년층의 불만에 대해 586세대는 여전히 손가락으로 또 다른 '적'을 가리킨다. 하지만, 바로 그들 자신이 어느 틈에 사회적 기득권을 차지한 적이 되었음에 대해 외면한다.

세대론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1985년 대학 진학률은 불과 36.5%, 이중에 학생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민단체에서 헌신적으로 활동한 사람들은 수혜는커녕 지금도 도시빈민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극소수 권력을 쥔 소수의 행태를 놓고 세대론을 운운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는 입장이다.

그런데 KBS 세대인식조사에 따르면 당시 대학을 나왔건 아니건, 50대의 67.2%가 ‘자신들은 586이다'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586이 비판해 마지 않았던 산업화 세대에게 물어보면 아마도 자신들은 먹고살기 위해 열심히 살아온 것뿐이라 답할 것이다. 산업화 세대를 비판하며 딛고 선 586세대, 젊은 세대는 이제 그들이 가진 세계관 또한 아전인수라고 비판한다. 기성세대가 된 586은 프랑스 68세대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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