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가 방송법이 명시한 편성규약을 공표하지 않은 종합편성채널을 검찰에 고발하고 나선 뒤에야, 중앙일보 JTBC가 슬그머니 홈페이지를 통해 편성규약을 공개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KBS와 SBS의 편성규약 상당 부분을 짜깁기 한 것으로 드러나 비판이 일고 있다.
언론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조중동방송 퇴출 무한행동’은 지난 9일 방송법이 정한 편성규약을 공표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TV조선, JTBC, 채널A를 검찰에 고발했다. 현행 방송법은 “제4조 제4항의 규정에 위반하여 방송편성규약을 제정하지 아니하거나 공표하지 아니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검찰에 고발장이 접수된 지 3일이 지난 12일, JTBC는 홈페이지 공지를 통해 편성규약을 공개했다. jTBC는 “편성규약의 제반 제도적 장치를 보완하고 규약의 실효성을 높임으로써 제작의 자율성과 프로그램의 공정성을 조화롭게 실천하기 위해 2011년 12월 편성규약을 공표한다”며 검찰 수사를 의식한 듯 2011년 12월1일 제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JTBC의 편성규약은 기존 만들어진 KBS, SBS의 편성규약을 짜깁기 했으며, 일부 조항은 토시 하나 다르지 않고 그대로 베낀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기존 지상파 방송의 편성규약을 가져오면서 일부를 교묘하게 수정 또는 삭제하면서 회사 쪽에 유리한 형태로 규약을 제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JTBC, SBS·KBS 편성규약 교묘하게 바꿔
먼저, JTBC는 편성규약 제4조(취재 및 제작 책임자의 권리와 의무) 제②항에서 “취재 및 제작 책임자는 취재 및 제작 내용이 회사의 지침 및 제규정과 공익에 위배될 경우 취재 및 제작 실무자에게 이에 대한 수정, 변경, 취소를 지시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기존 SBS의 편성규약 제2조 ②항을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SBS 편성규약은 “제작 책임자는 취재, 제작 내용이 회사의 방송강령과 방송가이드라인 그리고 공익에 위배될 경우 제작종사자에게 이에 대한 수정, 변경, 취소를 요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즉, SBS의 ‘방송강령’ 부분을 JTBC는 ‘회사의 지침’으로, ‘요구할 수 있다’를 ‘지시할 수 있다’로 교묘하게 바꾼 셈이다.
JTBC는 또 SBS 편성규약이 제2조 ④항에서 명시하고 있는 “제작책임자는 제작종사자가 취재, 제작과 관련해 이의나 시정을 요구할 경우 이에 대해 협의함으로써 제작종사자의 이해를 구하여야 한다”는 부분을 “협의하고 설명한다”로 끝 부분만을 수정했다.
JTBC 편성규약 ⑤항은 KBS 편성규약 제5조 ④항과 흡사하다. JTBC는 “취재 및 제작책임자는 실무자의 취재 및 제작내용이 자신의 의견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수정하거나 불이익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KBS 편성규약에 “단, 방송이 임박한 경우 등 긴박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기존 지상파 방송의 편성규약을 베끼면서도 편성위원회 대상을 대폭 축소하는 등 자사 입장에 맞게 관련 부분을 수정하는 꼼수도 이어졌다.
JTBC는 제8조에서 편성위원회 기능하면서 KBS 편성규약이 명시하고 있는 △편성과정에서의 제작 자율성 침해 △개편시 의견과 방향제시 △기타 방송업무와 관련한 각종 현안 등은 아예 논의 대상에서 제외했다.
편성위원회 개최 요건도 제한했다. KBS와 SBS가 본부별 편성위원회와 전체 편성위원회를 각각 매월 1회 정례회의로 개최할 것을 명시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JTBC는 본부별 편성위원회도 5인 이상의 위원이 요구할 경우로 제한했다.
JTBC는 또, 편성규약을 위반하거나 제작 자율성을 침해했을 경우 출석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관련 사안을 ‘시청자위원회’에 중재를 요청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이는 SBS가 명시하고 있는 “방송편성위원회에서 조정이나 해결이 되지 않은 사안에 대해 시청자위원회의 자문을 구할 수 있다”는 부분을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청자위원 임명권이 회사 쪽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재마저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언론연대는 논평을 내어 “JTBC의 편성규약은 KBS와 SBS의 편성규약을 펼쳐놓고 필요한 조항을 골라 짜깁기한 작품이 명백하다”고 질타했다.
언론연대는 “JTBC가 낯 뜨거운지 모르고 이렇게 지상파방송의 편성규약을 베낀 이유는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가 방송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하자 발등에 불이 떨어져 얼렁뚱땅 조항을 베끼고 윤색해 편성규약을 만들어낸 것”이라며 “그 와중에도 회사 쪽에 유리한 방향으로 마사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역시 중앙일보 종편다운 행태”라고 규탄했다.
이들은 아울러 방송법이 ‘취재 및 제작 종사자들의 의견을 들어’ 편성규약 제정 및 공표를 규정하고 있다는 점을 밝히며 “검찰이 살펴봐야할 대목”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검찰이 TV조선, JTBC, 채널A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전강진 부장검사)는 13일 조중동방송 퇴출 무한행동이 종편 3사를 고발한 사건을 배당받아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 관계자는 “서면조사 등으로 고발인의 고발 취지를 들은 뒤 고발장 내용대로 편성규약이 만들어지지 않았는지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고발 내용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종편 관계자들을 불러 피고발인 조사를 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