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형법상 명예훼손죄가 있는 상황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된다면 이중 처벌의 가능성이 있다” (지성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대한 국민 찬성 여론이 높은 상황이다. 여론을 반영하는 것이 좋은 정치다”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30일 열린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언론중재법 개정안 간담회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이 찬반으로 엇갈렸다. 국민의힘 추천 전문가들은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언론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며 반대 의견을 나타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추천 전문가들은 보도로 인한 피해를 막을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언론 징벌적 손해배상제 입법 취지는 공감했지만, 현재 발의된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언론 자유가 침해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간담회에서 논의된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언론 징벌적 손해배상제 및 가짜뉴스 시정명령 도입(정청래 의원 안) ▲정정보도 크기·위치 의무화(김영호·김원이·박광온·정청래 의원 안) ▲언론중재위를 문체부 산하기관으로 두고 언론사 시정명령 권한 부여 (최강욱 의원 안) 등이다.

(사진=리얼미터)

지성우 교수(국민의힘 추천)는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대해 “언론의 폐해를 막아야 한다는 목적에는 동의한다”면서 “다만 새로운 입법을 할 때는 해외사례나 다른 국내법과 비교해야 한다. 현재 한국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고 있는데 모두 경제적 자유를 제한하는 것으로 정신적 자유에 해당하는 언론 보도와는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지성우 교수는 “현재 한국에선 형법상 명예훼손죄가 있다”며 “형법상 명예훼손죄가 있는데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한다면 이중 처벌의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인수 매일경제 논설위원(국민의힘 추천)은 “언론이 반성해야 할 부분이 많은 건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통과되면 사회적 이득보단 언론 자유 침해와 감시기능이 훼손될 우려가 더 크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고 있는 미국에서도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김필성 법무법인 가로수 변호사(민주당 추천)는 “3배~5배 수준의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여러 나라에서 도입하고 있다”며 “한국 역시 제조물 책임법, 공정거래법 등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실시하고 있다. 언론중재법에서도 이 정도 규정은 받아들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봉수 세명대 교수(민주당 추천)는 "무한경쟁 체제에 있는 한국 언론이 자성하길 기대하는 건 무리가 있다"며 강력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한국 언론은 신뢰도 꼴찌이며 각자도생에 급급한 상황”이라며 “외국에 없는 법이라도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교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손해배상에 대한 양형기준을 높이자는 취지”라며 “상한선, 하한선을 설정해야 ‘징벌’이라는 취지를 살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봉수 교수는 조선일보의 조국 전 장관 일러스트 사건을 예로 들었다. 지난 21일 조선일보는 성매매 범죄 기사에 조국 전 장관과 그의 딸 모습이 담긴 일러스트를 사용했다. 조 전 장관은 30일 조선일보와 기자를 상대로 각각 5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또한 조 전 장관은 같은 내용의 기사를 출고한 LA조선일보를 상대로 미국 법원 제소를 검토하고 있다. 이 교수는 “(조국 전 장관이 미국 법원 제소를 검토하는 것은) 한국의 입법이 미비하기 때문”이라며 “피해자들의 피해구제를 위한 법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30일 국회 문체위 전문가 간담회 참석자. 왼쪽부터 김필성 변호사, 지성우 교수, 이봉수 교수

국민의힘 의원들은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가 크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한다면 언론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최형두 의원은 “가짜뉴스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반대할 순 없다”면서 “하지만 최근 쿠팡이 언론사에 소송을 제기해 재갈을 물리려 한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는데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특히 언론의 주요 보도 대상은 일반인이 아니라 권력자들인데,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되면 권력 감시기능이 죽을 수 있다”고 했다. 김예지 의원은 "누가 입법취지에 반대하겠나"라며 "허위조작정보를 막아야 한다는 입법 취지는 적극 동의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국가와 언론의 대립이라고 보지 말고, 사인과 사인의 갈등이라고 봐달라”며 “물론 정치권력이나 경제 권력을 가진 사람이 소송을 제기하면 언론이 위축 효과를 느낄 수 있다. 권력자가 소송을 제기할 때는 인정 범위를 축소하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정보도 크기와 위치를 강제하는 개정안과 관련해 이봉수 교수는 “영국의 데일리미러는 영국군이 이라크에서 포로를 학대했다는 오보를 냈고, 원 기사보다 더 크게 정정보도를 게재했다”며 “슈피겔은 기사 조작 사건이 터지자 22페이지에 걸친 정정보도를 냈다”고 설명했다. 김필성 변호사는 “정정보도가 이뤄지기 전까지 피해자의 피해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피해를 바로잡기 위해선 실효성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언론이 정정보도를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법적으로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지성우 교수는 “정정보도를 확대하면 좋겠다”면서 “다만 (정정보도 위치와 크기를 규정하는 법은) 선진국에서 사례가 전혀 없다. 심정적으로 잘못된 기사에 대해 강하게 처벌하는 게 필요하지만, 한국에서만 법을 도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지성우 교수는 언론중재위원회를 문체부 산하기관으로 두고, 언론중재위에 언론사 시정명령 권한을 주는 최강욱 의원 안에 대해 “언론중재위가 국가기관화된다면 (신뢰에) 금이 갈 수 있다”며 “국가가 언론 자유를 제한하는 실마리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선진국에선 절대 허용하지 않을 법”이라고 밝혔다.

국회 문체위 법안소위는 7월 초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심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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