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현대의 우승으로 2011 K리그가 막을 내렸습니다. 올해 K리그는 어느 해보다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정몽규 총재가 취임하고 광주 FC, 상주 상무의 가세로 16개 구단 체제로 시작한 K리그는 시작부터 많은 팬들의 기대와 관심을 한몸에 받으며 역대 최고 흥행 기세를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한국 축구 역사상 최악의 '사건'으로 남은 승부조작 사태로 큰 위기를 맞았고, 이에 대한 실망감도 컸습니다. 그래도 팬들은 마지막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고, 300만 관중 돌파라는 기록을 달성하며 비교적 훈훈하게 마무리했습니다.

아쉬운 한 시즌이었지만 나름대로 성과도, 이야깃거리도 많았던 시즌이기도 했습니다. 2011 K리그를 키워드로 뽑아 정리해 봤습니다.

닥공 축구

올해 K리그 최고 키워드는 바로 전북 현대의 '닥공 축구'입니다. 시즌 전, 최강희 전북 감독이 "우리 팀은 무조건 닥치고 공격한다"는 말을 해서 생긴 '닥공 축구'는 전북 현대의 색깔을 분명히 드러내는 계기가 됐고, 팬들의 큰 지지와 사랑을 받았습니다. 매경기 2골 이상의 폭발적인 화력을 과시한 덕에 전북은 정규리그 1위, 최종 순위 우승을 차지했고, 흥행에서도 대성공했습니다. 닥공은 이제 전북 뿐 아니라 K리그 전체에도 좋은 시사점을 준 키워드가 됐습니다.

▲ 전북 현대 (사진: 김지한)
이동국

그 '닥공 축구'의 중심에는 '라이언킹' 이동국이 있었습니다. 이동국은 올해 16골-15도움을 기록하며 총 31개 공격포인트를 기록해 팀 우승에 가장 큰 역할을 해냈습니다. 특히 그는 15도움으로 생애 첫 도움왕을 차지하며 K리그 최초로 통산 최우수선수, 신인상, 득점왕, 도움왕을 모두 차지한 진기록까지 세웠습니다.

그야말로 '회춘'했던 이동국이었지만 시련도 있었습니다. 국가대표에 잠시 차출됐지만 주전급 선수로 활약하지 못해 심리적인 아픔을 잠시 겪었습니다. 여기에 설상가상 부상도 당해 그토록 바랐던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도전에도 이렇다 할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챔피언결정전 마지막 경기에서도 이동국은 패널티킥을 실축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고, 팀 우승에 일조하며 활짝 웃었습니다. 이후 그는 시즌 최우수선수(MVP), 팬들이 뽑은 '판타스틱 플레이어'상도 받아 2년 만에 또 한 번 상복이 터졌습니다. 그야말로 이동국에 의한, 이동국을 위한 한 시즌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승부조작

하지만 올해 K리그는 '승부조작'이라는 최악의 사건으로 축구계, 체육계 뿐 아니라 전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몰고 왔습니다. 선수들 사이에 직접 승부조작을 사전에 모의하고 가담해 실행했다는 그저 그런 소문이 사실로 하나둘씩 밝혀졌고, 혐의를 갖고 있는 선수 역시 국가대표급 선수들까지 확대되면서 그 파장과 충격은 어마어마했습니다. 여기에 몇몇 선수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얼마 전까지 K리그 감독을 했던 지도자 역시 스스로 목숨을 끊어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일부에서는 승부조작 뿌리를 뽑을 때까지 리그를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올 정도였습니다.

결국 63명의 선수가 승부조작에 가담한 것으로 드러났고, 이들은 대부분 사법처리되거나 축구계 영구 퇴출 등의 중징계를 받으며 일단락됐습니다. 프로축구연맹은 제도 보완, 징계 강화 등을 통해 재발 방지를 약속했고, 비교적 신속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승부조작의 몸통이라 할 수 있는 배후를 제대로 찾지 못했고, K리그에 국한해서 조사했을 뿐 타 리그, 타 종목에 대한 조사는 제대로 실행하지 않아 형평성 문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승부조작으로 엄청난 타격을 입었음에는 분명했던 한 시즌이었습니다.

알 사드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와 관련한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었던 한 시즌이기도 했습니다. 그중에 단연 눈에 띄는 키워드는 바로 카타르 클럽 알 사드였습니다.

지난해 카타르리그 우승팀 자격으로 올해 AFC 챔피언스리그에 모습을 드러낸 알 사드는 준결승, 결승에서 수원 삼성, 전북 현대를 만나 사상 첫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그야말로 최악 그 자체였습니다. 노골적으로 시간을 지연시키는 행위, 이른바 '침대 축구'로 경기를 지켜보는 팬들을 짜증나게 했습니다. 또 수원과의 준결승 1차전에서는 '비매너 골'을 넣은 뒤 난입한 관중을 폭행하는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그야말로 'K리그의 적'이 됐습니다. 이들은 전북을 꺾고 우승을 한 뒤에도 우리 관중을 향해 조롱하는 제스처로 마지막까지 얄미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알 사드에 속해 있던 국가대표 수비수, 이정수만 애꿎은 신세가 됐습니다.

▲ 관중을 폭행하는 등 한국에 와서 볼썽사나운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간 카타르 알 사드 (사진: 김지한)
최용수

지난해 우승팀인 FC 서울은 새 감독으로 황보 관 감독을 맞아 첫 2연패를 노렸습니다. 하지만 시즌 개막부터 서울은 삐걱댔고, 결국 1달이 조금 넘긴 시점에서 황보 감독이 자진 사퇴하는 시련을 겪었습니다. 여기서 등장한 구세주는 다름 아닌 서울의 전설, 최용수 코치였습니다. 감독대행으로 승격한 최용수 감독은 시작부터 장대비를 온몸으로 맞는 열정적인 자세로 팀 승리를 이끌며 강렬한 인상을 심어줬습니다.

이후 서울은 지난해 못지않은 기세로 승승장구를 거듭했습니다. 그 기세를 이어 최용수 감독 역시 선수들과 함께 호흡하고 때로는 열정적이고 호쾌한 승리 세레모니로 팬들을 즐겁게 했습니다. 비록 목표했던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최용수 감독 덕분에 서울은 벼랑 끝에 몰렸다 새 희망을 얻었고, 많은 가능성을 확인했습니다. 시즌 후 FC 서울은 대행 꼬리표를 뗐고, 최용수 감독은 본격적으로 내년 시즌 비상을 다짐하게 됐습니다.

'기적의 아이콘' 신영록

▲ 신영록 (사진: 김지한)
올해 K리그에서 있었던 또 하나의 불행한 일을 꼽는다면 바로 신영록 선수의 갑작스런 의식 불명이었습니다. 신영록은 지난 5월 8일, 대구 FC와의 리그 경기 도중 후반 45분, 부정맥으로 인해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져 곧바로 제주한라병원으로 이송됐습니다. 이후 신영록은 깨어나지 못했고 한때 위기를 겪으며 많은 팬들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하지만 불굴의 의지로 신영록은 쓰러진 지 50일 만에 의식을 되찾았고, 조금씩 정상 생활을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소속팀 제주를 비롯해 K리그 전 구단 축구인, 팬들은 신영록에 아낌없는 성원을 보냈고, 이는 위기에 빠졌던 K리그를 하나로 뭉치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신영록은 기적 같은 회복을 이어갔고,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습니다. 지난 6일 열린 K리그 시상식에도 모습을 드러낸 신영록은 자신을 살리는 데 큰 역할을 한 김장열 제주 트레이너에게 공로패를 시상하기도 해 팬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습니다.

'철인' 김기동

박수를 받을 만했던 선수들은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박수를 받아야 하는 선수를 꼽는다면 바로 '철인' 포항 스틸러스 김기동을 꼽고 싶습니다. 1972년 1월생으로 올해 나이 마흔인 김기동은 불굴의 의지와 투혼을 보이며 마침내 필드 플레이어 첫 통산 500경기 출장이라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체력적으로 많이 힘든 가운데서도 이따금씩 좋은 활약을 펼치며 포항 상승세에 역할을 했던 김기동은 그렇게 K리그의 전설로 축구팬들을 흐뭇하게 했습니다.

'뼈트라이커' 김정우

올해 K리그에 떠오른 새 화두 중에 하나는 포지션 파괴입니다. 공격수, 미드필더, 수비수 등 각 포지션별로 역할이 국한돼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는 선수들이 크게 주목받고 각광받았습니다.

그중에서도 김정우는 단연 빛났습니다. 상병 현역 군인으로 상주 상무에서 올 시즌 대부분을 소화했던 김정우는 이수철 감독의 지시로 본포지션인 미드필더가 아닌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출전, 초반부터 무서운 득점 본능을 과시하며 K리그를 뒤흔들었습니다. 마른 체형을 가진 스트라이커라는 의미의 '뼈트라이커'라는 별칭은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김정우는 전역하는 순간까지 득점 감각을 꾸준하게 이어가며 본인이 목표했던 수치, 15골로 한 시즌을 의미 있게 마쳤습니다.

철퇴 축구

'전북에 닥공이 있다면 울산에 철퇴가 있다' K리그 챔피언십에서 나온 '철퇴 축구'는 울산 현대를 대표하는 키워드로 많은 팬들의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안정적인 경기를 운영하다 한 방에 내려쳐 쓰러뜨리는 것이 파괴력 넘치는 ‘철퇴’와 같다고 해서 붙여준 것처럼, 울산은 챔피언십에서 FC 서울, 수원 삼성, 포항 스틸러스를 맞아 모두 승리를 거두고 챔피언결정전에 진출, 많은 축구팬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색깔이 없다고 여겼던 울산은 '철퇴 축구'라는 색깔로 비교적 흐뭇하게 한 시즌을 마감했고, 김호곤 울산 감독 역시 재조명받았습니다.

'잘 가세요! 잘 가세요!'

울산은 서포터 응원에서도 독특한 응원으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울산 서포터 '처용전사'는 오래 전부터 상대 팀에 앞서있을 때 경기 종료 직전 '잘 가세요! 잘 가세요!'라는 응원가를 불러 왔습니다. 이번 챔피언십에서 울산은 원정 경기장에서 세 차례나 이 응원가를 불렀고, 챔피언십이라는 분위기에 맞춰 크게 주목받았습니다. 하지만 챔피언결정전 2차전에서 울산이 지고 있자 반대로 전북 서포터들이 '잘 가세요! 잘 가세요!' 응원가를 불러 흥미로운 장면을 보였습니다.

돌풍, 광주 FC

올해 시민구단은 단 한 팀도 챔피언십에 오르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그래도 희망은 있었습니다. 신생팀 광주 FC가 그중에 단연 돋보였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시민구단을 창단한 광주는 조용하면서도 서서히 올라서는 모습으로 가능성을 보여주며 주목받았습니다. 첫해에 거둔 9승은 역대 시민구단 창단 성적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특히 시즌 막판에는 무패 행진을 이어가며 '고춧가루 부대'의 면모를 톡톡히 보였습니다.

한 시즌을 치르면서 이승기, 박기동이라는 새로운 스타가 배출됐습니다. 그 중 이승기는 생에 단 한 번밖에 탈 수 없는 신인상까지 수상하는 경사를 누렸습니다. 모든 것이 새로울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광주가 보여준 기세는 내일을 더 기대하게 했습니다.

추락, 강원 FC

반면 강원 FC의 추락은 안타까웠습니다. 시도민 구단의 모범 롤모델로 지난 2년간 강한 인상을 남겼던 강원이었지만 올해는 시작부터 삐걱댔습니다. 연패를 당하고 힘없이 무너지자 최순호 감독이 물러나고 김원동 사장까지 사퇴하는 후폭풍을 겪었습니다. 시즌 개막 13경기 만에 첫 승을 거두기는 했지만 이상할 정도로 강원의 기세는 지난 2년보다 훨씬 떨어져 있었습니다.

급기야 새로 취임한 남종현 사장이 구단주인 최문순 강원도지사와의 갈등으로 사퇴를 했다 번복하는 등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30라운드를 치르면서 강원이 거둔 승수는 단 3승. 성적도 아쉬웠지만 내외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들 때문에 바람 잘 날 없는 한 시즌을 보내야 했던 강원이었습니다.

부산 아이돌 파크

소리 없이 강한 면모를 보이며 의미 있는 한 시즌을 보낸 팀도 있었습니다. 안익수 감독이 새롭게 부임해 팀 재건을 다짐했던 부산 아이파크는 올 시즌 5위를 기록하며 인상적인 한 시즌을 보냈습니다. 뚜렷한 지도 철학을 갖고 부산을 일약 강팀으로 떠올리게 만든 안익수 감독이 역시 일등 공신이었지만 젊은 선수들의 선전 역시 박수 받을 만했습니다. 이 가운데 임상협, 박종우, 이범영, 한지호 등은 잘생긴 외모로도 주목받았고 이 때문에 팀 이름을 본따 '부산 아이돌 파크'라는 새 별칭을 얻었습니다. 과거 안정환 덕에 큰 인기를 모았던 부산 입장에서는 '아이돌 파크'라는 별칭으로 간만에 흐뭇한 한 시즌을 보냈습니다.

이외에도 올 시즌 K리그는 소녀팬들이 유독 많았던 한 시즌이었습니다. 아시안컵 덕분에 지동원, 윤빛가람, 이용래 등이 많은 소녀팬들을 끌어모았고, 전북, 인천 등은 평일 직접 지역 내 여자고등학교를 방문해 팬서비스를 실행,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300만 관중

각 팀들의 여러 가지 사정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K리그는 300만 관중 최초 돌파라는 소기의 성과를 달성했습니다. 당초 350만 관중 목표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그래도 여러 가지 악재 속에 거둔 성과였기에 그 의미는 남달랐습니다.

▲ 10월 3일, 수원 삼성과 FC 서울 경기가 열린 수원월드컵경기장.꽉 들어찬 모습을 내년에 더 많이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사진: 김지한)
흥미로운 관중 기록도 많았습니다. 더비 매치, 수원 삼성과 FC 서울이 열린 지난 10월 3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는 4만 명이 넘는 관중이 꽉 들어차 역대 월드컵경기장 첫 K리그 경기 만석이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개막전에는 19만 3959명의 관중이 입장, 2008년(17만 2142명)의 기록을 갈아치우고 역대 개막전 최다 관중 기록을 세웠으며, 서울에서 열린 수원-서울 전에는 추운 날씨에도 5만 명이 넘는 관중이 입장했습니다. 울산, 부산은 전년도보다 60-90%가 넘는 관중 증가율을 보였으며, 전북은 평균 관중 1만4천명이 넘는 기록을 세워 서울, 수원에 이어 3위를 차지하고 지방팀 흥행 사례를 남겼습니다.

승강제-스플릿 시스템

올해 관심을 모았던 또 다른 주요 키워드는 바로 승강제였습니다. 축구뿐 아니라 전체 프로스포츠에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승강제를 위해 프로축구연맹은 많은 연구와 토론을 하며 시스템 도입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10월, 스플릿시스템을 도입한 승강제 실행을 발표했습니다. 본격 승강제 도입을 위해 내년 한 시즌만 한시적으로 운영될 스플릿시스템은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30라운드까지 치르고 나서 상위 8개 팀과 하위 8개 팀으로 분리해 따로 리그전을 치러 우승팀과 강등팀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이로써 내년 K리그는 팀당 44경기를 치르는 강행군이 펼쳐질 예정입니다.

이 때문에 이번 시즌이 끝나기 전부터 각 팀들이 분주하게 새 시즌을 준비했습니다. 몇몇 팀은 A급 수준의 선수 수급으로 주목받았고, 어떤 팀들은 전력 외의 선수를 아예 팀에서 퇴출시키고 정예화된 멤버로 팀을 운영하려 했습니다. 이는 본격적인 동계훈련을 시작하는 다음 달 초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승강제에 따른 영향이 벌써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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