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일보, MBC 등 주요 언론사의 지분을 대거 보유하고 있는 정수장학회의 사회 환원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언론계 안팎에서 거세지고 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정수장학회는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입장을 표면적으로 밝히고 있으나, 박 전 대표의 최측근 인사들이 아직도 재단 주요 보직을 맡고 있다는 점에서 정수장학회의 실소유주 논란이 거세다.

최근 부산일보에서는 정수재단의 사회 환원을 촉구하는 노조 입장이 담긴 기사 때문에 하룻 동안 신문 발행이 중단되는 편집권 침해 사례가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회사 쪽은 노조 위원장을 해고하고 편집국장을 대기 발령하는 등 비상식적인 일도 벌어졌다.

▲ 박근혜 전 대표 ⓒ연합뉴스
◇ 부산일보 사태 경과 = 이 같은 부산일보 사태는 지난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근혜 전 대표는 지난 2004년 4월,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겸임한 채 한나라당 대표로 17대 총선을 치렀고, 이에 부산일보는 공정성 논란에 휘말렸다. 결국, 박 전 대표는 논란 끝에 2005년 2월 정수재단 이사장 및 이사직에서 사임했지만, 청와대 의전비서관 출신이자 박 전 대표의 최측근인 최필립씨를 이사장으로 임명했다.

이 과정에서 보도의 공정성을 위해 재단 사회화의 필요성을 느낀 부산일보 노조는 회사 쪽을 향해 사장추천위원회 등 사장 선임 제도를 요구했고, 김종렬 당시 사장은 노조와 함께 “2010년 주주총회부터 임원을 선임할 때 사원들의 의사를 반영한다”는 입장을 비롯해 사장추천위원회 필요성을 강조한 합의문을 작성했다.

부산일보 사태가 본격화 시점은 지난달이다.

합의문을 작성했음에도 사장 선임 제도 등 변화 움직임이 없자 노조는 2011년 10월, 사장후보추천제 세부적인 안을 마련하기 위해 설문조사를 시작했으나, 회사 쪽은 설문 용지를 강제로 수거했다. 이후 11월1일, 노조는 박 전 대표를 향해 김종렬 사장과 최필립 재단 이사장의 퇴진을 비롯해 사원 의사를 반영한 사장 선임제 수용 촉구 서한을 발송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까지 나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산일보 1~2면에도 노조의 투쟁 소식이 주요하게 보도되는 등 사태가 확산되자 회사 쪽은 이정호 편집국장과 이호진 노조위원장에 대해 징계위원회 소집을 통보했다. 이어 11월29일, 이호진 지부장에게 사실상 해고인 ‘면직’을 통보했다.

노조위원장 해고 사태 등 부산일보 사태를 담은 기사는 당초 11월30일 발행될 예정이었으나, 회사 쪽은 일방적으로 발송 차량을 돌려보내고 독자들에게 ‘오늘 신문은 발행하지 않았다’는 문자 메시지를 전했다. 인터넷 홈페이지도 폐쇄했다.

회사 쪽의 응징은 계속 이어졌다. 부산일보는 11월30일, 이정호 편집국장에게 대기발령 결정을 내린 데 이어 12월1일 편집국장에게 출입정지 가처분 신청 및 노트북 회수 등 업무 정지 수순을 밟았다. 노조 지부장을 상대로도 업무방해 및 명예훼손으로 동부경찰서에 고소했다. 부산일보는 또, 12월2일 노조 집행부 11명을 상대로, 신문 발행 강행과 관련해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다.

▲ 12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정수재단 사회환원 촉구’ 기자회견에서 이호진 언론노조 부산일보 지부장이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이 했던 과거 발언을 폭로하고 있다. ⓒ미디어스
◇ 박근혜, 정수장학회와 전혀 관계가 없을까? = 박근혜 전 대표는 최근 부산일보 사태와 관련해 한 언론 인터뷰에서 “마음이 아프다. 대화로 원만하게 해결했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그 동안 “재단에서 이미 손을 뗐기 때문에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고 밝힌 것에서 한 발 나아간 태도이기도 하다. 이렇듯 박 전 대표는 정수장학회와는 선을 그은 채 그저 침묵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재단을 이끄는 ‘실직적인 힘’은 여전히 박 전 대표에게 있다는 관측이 무성하다.

12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정수재단 사회환원 촉구’ 기자회견에서 이호진 언론노조 부산일보 지부장은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이 했던 과거 발언을 폭로했다. 이 지부장은 “이미 정수장학회를 사회에 환원했다”는 박 전 대표의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비난했다.

이 지부장은 2005년 8월, 당시 노조 위원장과 내가 이사장을 만났는데 이사장이 “박 대표가 최근 미국 방문에 앞서 조언을 달라고 해서 만났는데, 그 자리에서 장학회(정수장학회)를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또, 2005년 6월 면담에서도 노조 쪽에서 “재단 이름을 바꾸고, 이사진을 개혁적인 인사로 바꾸라”고 요구하자, 이사장이 “(나는) 박 대표로부터 위임받은 입장”이라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이는 박 전대표가 정수장학회의 관리를 자신의 측근인 최필립 이사장에게 위임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한 대목이다.

의혹의 시선은 또 있다.

부산일보 노조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정보공개 신청을 통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필립 이사장은 18대 총선이 치러졌던 지난 2008년, 본인과 부인, 아들, 딸 등 전 가족 5명의 이름으로 개인 정치 후원금 최대 한도를 꽉 채워 500만원씩 모두 2500만원을 박근혜 전 대표에게 후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필립 이사장은 2010년에도 후원 최대 한도인 500만원을 박 전 대표에게 기부하기도 했다. 또, 정수재단 사무처장을 맡고 있는 인사도 박 전 대표에게 500만원을 후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해, 언론노조와 언론노조 부산일보 지부는 “박근혜 의원과 (재단이) 아무 관계가 없다면 왜 이사장과 가족, 사무국장이 개인 한고를 꽉 채워가며 정치 후원금을 냈겠냐”며 “장학사업을 하는 공익법인의 이사장이라는 공인의 입장에서 순수하게 개인 돈을 기부한 것인지, 아니면 정수재단의 돈을 자신과 가족들의 명의를 빌어 개인 후원 형식으로 합법을 가장해 건넨 정치 자금인지 밝혀야 한다”며 해명을 촉구했다.

◇ 박근혜, 이제 결단해야 = 이런 가운데 정수장학회의 사회 환원에 대한 목소리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즉, 박 전대표의 최측근인 이사장과 이사진의 퇴진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언론노조는 이에 대해 “정수재단이 지분 100%를 갖고 있는 언론사 부산일보가 공정성 시비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는 경영과 편집에서 독립성을 보장할 수 있는 사장선임제도의 도입이 필수적”이라며 “부산일보 노사가 지난 3월 합의한 사장후보추천위원회를 정수재단이 임명하고, 이 기구에서 추천된 사장 후보를 임명하면 될 일이다”며 박 전 대표의 결단을 촉구했다.

박 전 대표를 향한 비난 여론도 거세지고 있다.

이호진 부산일보 지부장은 “11월30일치 신문이 안 나왔는데, 회사 쪽에서 왜 그 신문을 내지 못하게 했는지가 이번 사태의 핵심이라고 본다. 그 날 실리려 했던 기사가 정수장학회 사회 환원 촉구 노조 투쟁 기사였다”며 “회사에서는 박근혜 또는 재단을 다루는 것을 극히 꺼린다”고 비판했다.

이 지부장은 이날 기자회견 이후에도 박근혜 전 대표가 의미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을 경우, 박 전 대표와 관련한 추가 자료를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정수장학회 설립 취소를 목표로 하는 행정적, 법적 절차에 들어가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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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도 “윤전기를 회사 쪽이 멈추는 언론 통제, 들어본 적도 본 적도 없는 만행”이라며 “박 전 대표는 더 이상 아버지의 죄라고 모른 척 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털고 나오길 바란다. (사장 선임이) 합리적인 방식으로 바꿔야 하고, 이사장 비롯한 이사진이 박근혜 측근이 아닌 사회 책임있는 인사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강택 언론노조 위원장 또한 “과연 이게 책임 있는 정치인으로서 합당한 처신이냐고 생각하냐”며 “지금까지 우리는 해고와 대기발령, 징계를 당하면서도 박근혜 전 대표의 양식을 믿고 기다려왔지만 더 이상 기다리지 않는다”며 투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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