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의 당위성은 주로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발생한 사장 교체, 해직사태, 보도개입 등의 사례로 설명됐다. 그러나 KBS 사장 재임기간을 해외 주요 공영방송과 비교한 결과, 대통령이 바뀌면 사장이 교체되는 양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KBS 사장 32.7개월, BBC 사장 67.7개월, NHK 회장 45.3개월

18일 전남 여수엑스포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국방송학회 봄철 정기학술대회에서 최선욱 KBS 공영미디어연구소 연구원은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위한 시민참여의 정당성'을 주제로 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최 연구원은 KBS 창립년도인 1973년부터 2020년까지 KBS, 영국 공영방송 BBC, 일본 공영방송 NHK 등의 사장 재임기간과 대통령 교체 시기 등을 비교분석하는 방식으로 공영방송의 정치적 취약성을 따져 보았다.

최 연구원은 "공영방송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은 지배구조나 운영 전반에서 다층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정치적 독립성 정도를 쉽게 정량화할 수 없고 실증적인 검증 또한 어렵다"면서 "하지만 정부가 바뀌는 정치적 변화 직후 공영방송 이사나 경영 최고책임자의 교체는 공영방송 독립성을 침해하는 상징적 사건으로 인식됐다"고 설명했다.

(사진=KBS, 연합뉴스)

분석결과 대통령이 총 9번 바뀌는 동안 KBS 사장은 총 16명이었으며 대통령 교체 후 8개월 이내 KBS 사장이 교체된 사례는 7번이었다. 반면 영국의 경우 9번의 총리가 교체되는 동안 8개월 이내 BBC 사장이 교체된 사례는 없었다. 일본은 총리가 24번 교체되는 동안 NHK 회장이 8개월 이내에 교체된 사례는 2번이다.

대통령 교체 이후 8개월 이내 사장 교체사례를 살펴보면, 1개월 이내 사장이 교체된 사례가 3회(이원홍, 홍두표, 서동구), 2개월 이내 2회(박권상, 정연주), 7개월 이내 1회(이병순) 등이다. 8개월 뒤 취임한 사례는 1회(양승동)다. 일본 NHK 회장의 경우 4개월 이내 1회(후쿠치 시게오), 7개월 후 교체가 1회(마츠모토 마사유키)다. 다만 일본 사례는 3년 임기를 모두 마친 뒤 교체된 것으로 정치적 개입에 따른 교체로 보기 어렵다.

한국 대통령 평균 재임기간은 평균 58.8개월, KBS 사장의 평균 재임기간은 32.7개월이다. 반면 영국총리 평균 재임기간은 65.3개월, BBC 사장은 67.7개월이다. 일본총리 평균 재임기간은 24.5개월이고, NHK 회장은 45.3개월이다.

최 연구원은 8개월 이내 공영방송 사장 교체횟수를 정치적 변화의 수로 나눠 정치적 취약성을 지수로 계산했을 때 한국 0.78, 영국 0, 일본 0.08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1에 가까울수록 정치에 취약하고, 0에 가까울수록 정치적 독립성이 크다.

정부·정당 나눠먹기 역사

최 연구원은 해당 기간동안 한국의 방송 감독기관과 공영방송 지배구조 선출방식의 주요한 제도 변화가 8차례에 걸쳐 진행됐다고 밝혔다. 최 연구원은 방송관련 제도가 외부적 충격으로 인해 변경된 시기를 ▲권위주의 정부 ▲1987년 민주화 이후 ▲1차 정권변화 ▲2차 정권변화 등 크게 네 구간으로 설정했다.

귄위주의 정부 시기인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KBS 이사회는 사장·부사장, 이사 3인 등 5인으로 구성됐다. KBS 사장은 문화공보부 장관이 제청하면 대통령이 임명하는 형태였으며 이사 3인은 사장이 추천하면 문화공보부 장관이 임명했다. 12·12 군사반란을 통해 집권한 전두환 정권에서는 언론기본법이 제정돼 '방송위원회'가 신설됐다. 총 9인의 방송위원은 대통령 3인, 국회의장 3인, 대법원장 3인 등의 추천으로 임명됐다. 대통령과 정부가 KBS의 지배구조를 사실상 결정했다.

1987년 민주화 운동 이후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뤄지면서 언론기본법이 폐지되고 방송법 제정과 한국방송공사법 개정이 이뤄졌다. 방송위원은 12명으로 확대됐는데 추천자는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으로 기존과 동일했다. 12명 중 11명이 대통령과 여당성향, 1명이 야당성향이다. 1990년 방송법 개정으로 다시 방송위원은 9명으로 재편됐지만 8인 여당성향, 1인 야당성향으로 구분됐다.

1998년 헌정사상 첫 정권교체가 이뤄지고 2000년 방송법이 개정되면서 9명의 방송위원은 교섭단체와의 협의를 통한 국회의장 추천 등 국회 추천 6명, 대통령 추천 3명으로 구성됐다. 2000년 KBS이사회는 11인으로 변경됐다. 최 연구원은 "KBS 이사회는 2003년 이후 실질적인 사장 임명제청권을 행사하게 되면서 이사회와 사장 간 관계의 재정립이 시작됐다. 여야 간 성향의 구도는 8대 3으로 유지되었지만 정치적 영향이 크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최선욱 KBS 공영미디어연구소 연구원 (사진=미디어스)

최 연구원이 바라본 제도변화의 결정적 시기는 두 번째 정권교체 시기인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다. 대통령 2명, 여당 1명, 야당 2명 등 총 5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는 현재의 방통위 모델이 정립된 시기다. 이명박 정부는 독립기구 성격의 방송위를 중앙행정기구인 방통위로 개편했다. 이 때부터 총 11명의 KBS 이사에 대해 여야 7대 4 추천 '관행'이 굳어졌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2014년 국회는 KBS 사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도입, 공영방송 이사·사장 자격기준 강화 등을 합의했다. 당시 합의가능 사안이었던 노사동수 편성위원회 운영은 제외됐다. 최 연구원은 "KBS 사장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도입되었고, 입법부가 행정부를 견제하기 위한 수단인 국회의 인사청문이 KBS 사장에게도 적용돼 사장의 임명과 정치영역 간 직접적인 관계가 제도화됐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시기 제도변화는 없었지만, 2018년 KBS 이사회는 자체적으로 국민이 사장 후보자를 평가해 그 결과를 반영하는 방안을 도입했다.

최 연구원은 "행위적 수준에서 방통위는 위원 구성 시, 대통령과 여당 대 야당의 구조가 제도적으로 고착화됐다"며 "KBS 이사의 임명절차는 1987년 이후 제도적 변화는 없었지만, 2008년 이후 KBS 이사에 대한 방통위 추천관행이 대통령과 여당 7 대 야당 4라는 정당추천 구조를 굳히는 계기가 됐다"고 분석했다.

(출처='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위한 시민참여의 정당성'. 최선욱 KBS 공영미디어연구소 연구원. 2021 한국방송학회 봄철 정기학술대회 제출 논문)

KBS 사장 재임기간을 분석했을 때, 이명박 정부 이후 KBS 사장 평균 재임기간이 과거보다 단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권위주의 시기 대통령 4명의 재임기간 동안 KBS 사장은 6명이었고, 평균 재임기간은 35.6개월이었다. 87년 민주화시기와 1차 정권교체 이후 대통령 4명의 재임기간 동안 KBS 사장은 5명, 평균 재임기간은 56개월이었다. 반면 이명박 정부 이후 대통령 3명의 재임기간 동안 KBS 사장은 5명, 평균 재임기간은 23.4개월이었다.

최 연구원은 "재임기간이 길다는 것과 정치적 독립성을 확보한다는 것이 비례적이지는 않지만 2차 정권 교체 이후의 시기처럼 사장의 임기가 채 2년도 되지 못한 상태에서 정치적 독립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대의성 한계' 드러내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최 연구원은 공영방송에 대한 정치적 후견주의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지배구조 선출 과정에서의 국민참여를 꼽았다. 그는 "KBS의 설립 이래 정부와 정치로부터 독립성에 대한 사회적 문제가 지속되고 있음에도 대의제 민주주의를 통해 이를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KBS 이사회 구성이나 사장 선출과정에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것의 정당성은 충분하다"고 했다.

이어 그는 "대의민주주의 체계에서 국회 내 정당들이 대의의 최소요건인 의결절차도 없이 정당별로 누가 추천했는지 조차 모르는 비공개 방식으로 방통위와 공영방송의 이사회를 구성하는 관행이 이어진다면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유일한 대안은 국민 참여밖에 없지 않을까"라고 강조했다.

8일 국회에서 열린 '공영방송 구조혁신' 토론회에서 김동원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협력실장(왼쪽)과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유튜브 방송화면)

공영방송 지배구조에 대한 정치권 추천을 정당화하는 핵심 근거는 대의 민주주의에 따라 선출된 정치권력의 '대표성'이다. 그러나 한국 선거제도 문제점과 양당체제 고착화 현상에 따라 정당 지지율과 의석 점유율이 비례하지 않는 상황에서 공영방송에 대한 정치권 개입의 정당성은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8일 민주당이 주최한 '공영방송 구조혁신과 공적책무 강화방안' 토론회에서 김동원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협력실장은 "양당체제의 고착화에 따라 여야의 정책과 공약은 보수화되며 한국 사회의 정치적 스펙트럼과 더욱 멀어지게 된다"며 "여기에 한국 특유의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야당의 견제와 비판적인 시민 의견으로부터 대통령을 지키려는 정당과 강성 지지층의 활동은 공영방송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압력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밝혔다.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는 "수많은 비용이 투입되는 공영방송을 정치적 논란의 대상으로 유지하는 상황은 대의성의 한계를 드러내는 장면"이라며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편 방향은 시민들의 절차적 개입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시민 커뮤니케이션 권리의 관점을 보다 구체적으로 담으려는 시도와 결합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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