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대표팀 감독 자리는 '독이 든 성배'라고 많이 부릅니다. 대표팀 감독이라는 화려한 명예를 얻게 되지만 당장 눈앞의 성과를 내야하고 뚜렷한 지도 철학을 보여줄 뿐 아니라 그에 따른 여론을 모두 달게 받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꿈꾸는 자리라 해도 부담감과 책임감을 갖고 도전해야 하는 자리고, 이 때문에 이 자리 자체를 포기하는 감독들도 늘어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국 축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조광래 축구대표팀 감독이 전격 경질되면서 이제 한국 축구는 또다시 후임 감독을 물색하는 시기를 맞게 됐습니다. 2000년대 이후 히딩크, 아드보카트, 허정무를 제외하면 절반 이상의 감독들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 하차하는 시련을 맛봤는데 이는 감독 한 명의 책임도 있겠지만 뚜렷한 철학과 목표가 없는 축구협회의 문제 탓도 있습니다. 장기적인 발전보다 눈앞의 성과, 여론의 눈치만 봤던 축구협회의 태도는 결과적으로 2000년대 이후 7명, 평균 1년이 조금 넘는 재임 기간을 가진 대표팀 감독을 잇달아 맞이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 차기 축구대표팀 감독 1순위로 거론되고 있는 압신 고트비 전 한국대표팀 코치ⓒ연합뉴스

어쨌든 조광래 감독 경질로 새 대표팀 감독 인선 작업이 곧바로 착수됩니다. 하지만 후임 감독은 기존에 거론됐던 인물들이 다시 나오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한국 축구와 오랜 인연을 맺었고, 2005년부터 3년 동안 한국대표팀 코치를 맡았던 압신 고트비가 1순위로 거론됐으며, 홍명보 현 올림픽대표팀 감독도 물망에 오르고 있습니다. 그나마 K리그 우승을 이끈 최강희 전북 감독도 거론되고 있지만 본인 의지도 그렇고 현재 K리그 감독을 하고 있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며, 다른 국내파 감독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고사할 것으로 보여집니다. 후보군이 있지만 기존에 새 감독을 인선했던 후보들이 다시 거론되고 있는 것은 아쉬움이 많이 느껴집니다.

말 많고 탈 많았던 역대 축구대표팀 감독 인선

축구대표팀 새 감독을 인선하는 과정은 언제나 많은 이야깃거리를 낳았습니다. 물론 한 나라 대표팀 수장을 뽑는 것이기에 자연스레 관심이 갈 수밖에 없고 온갖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지금까지 순탄치 않았던 것은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히딩크 감독의 성공 이후 한국 축구의 화두는 과연 히딩크의 성과를 어떤 사람이 이어가느냐 여부였습니다. 이에 축구협회는 당시 히딩크와 함께 했던 박항서 코치를 감독으로 임명, 부산 아시안게임 감독직을 맡겼습니다. 하지만 기술위원회 운영과 감독 선임 문제를 놓고 난항을 거듭했고, 갑작스레 팀을 맡긴 박 코치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결국 히딩크가 남긴 성과는 곧바로 사라졌고, 정식 축구대표팀 새 감독을 선임하기까지는 꼬박 7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성적 부진으로 2004년 전격 사퇴한 움베르투 쿠엘류 감독의 뒤를 이을 감독을 선임했을 때는 브뤼노 메추 전 세네갈 감독을 선임했다 갑자기 메추의 급변화한 태도로 무산되고 조 본프레레 감독을 선임, 결과적으로 실패한 선임으로 기록됐습니다. 당시 축구협회는 안일한 태도와 확정된 듯한 추측성 자세로 일관하다 망신을 당해 행정력에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습니다. 이어 2007년 아시안컵 후 자진 사퇴한 핌 베어벡 감독 후임 인선 때는 지나치게 외국인 감독에만 집착한 인선 작업을 펼치다 결국 제라르 울리에, 마이클 매카시 감독을 놓친 사례가 있었습니다. 결국 급하게 국내파로 눈을 돌려 허정무 감독을 선임했지만 갑작스런 선임으로 우려와 걱정이 많았습니다.

허정무 감독이 월드컵 원정 첫 16강을 이뤄내고, 후임 감독을 인선할 때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물론 이때는 허정무 감독이 이뤄낸 성과에 버금가는 무언가를 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국내파 감독이 대부분 고사했던 것이 컸지만 축구협회가 확실한 입장을 정하지 않고 인선 작업을 벌였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허정무 감독이 연임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 전까지 별다른 작업을 하지 않았고, 연임 포기를 선언한 뒤에야 부랴부랴 인선 작업에 착수해 결국 K리그 감독(경남 FC)을 맡고 있던 조광래 감독이 대표팀 감독에 선임, 좋지 않은 모양새로 마무리된 바 있었습니다.

▲ 거스 히딩크 감독ⓒ연합뉴스

부족한 행정력... 폭넓은 시선과 장기적인 안목 필요

감독 인선 작업이 지금까지도 순탄치 않았던 것은 결과적으로 축구협회의 행정력 문제를 꼬집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랫동안 바뀌지 않는 시스템, 국제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부분들은 결과적으로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고, 팬들이 바라는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감독 선임이 이어졌습니다.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신선한 감독을 바라고 있습니다. 이미 '신선함'은 우리뿐 아니라 세계 축구의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당장 K리그에서도 불어 닥친 신선함, 변화의 바람은 올 시즌 큰 화두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최용수, 신태용, 유상철, 안익수 감독 등 젊은 감독 열풍이 불었고, '닥공 축구'라는 새 트렌드를 창조한 최강희 감독에 대한 팬들의 열광도 대단했습니다. 물론 조광래 감독 역시 그 트렌드에 맞게 인선됐고 초반 상당한 가능성을 남겼지만 결과적으로 뚜렷하지 못하고 독단적인 팀 운영이 도마에 올라 경질된 신세를 맞았습니다. 어쨌든 그런 대세에 맞게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감독 역시 비슷한 성향을 갖춘 인물이 돼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는 지금까지 거론됐던 인물 뿐 아니라 보다 폭넓게 시선을 넓힐 필요가 있다는 얘깁니다.

그 한 명의 감독 덕에 한국 축구의 전체 패러다임도 완전히 바뀌는 계기를 맞이한다면 더없이 좋을 것입니다. 이미 2002년의 히딩크 감독을 통해 우리는 좋은 경험을 한 바 있습니다. 일본 같은 경우, 1968년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낸 디트마르 크라머 감독 덕에 유소년 시스템이 자리잡히고 장기적인 관점의 축구 발전 플랜을 짜는 계기를 얻기도 했습니다. 대표팀 운영이 하나의 좋은 모범 사례가 돼 한국 축구의 큰 자산으로 남고, 좋은 영향을 주는 감독이라면 더없이 좋겠다는 뜻과 같습니다.

아울러 확실한 기회 보장도 필요합니다. 히딩크, 아드보카트, 허정무 감독의 경우, 확실한 목표와 임기가 있었기에 제 나름대로 성과를 냈고, 임기를 끝까지 마친 대표팀 감독으로 이름에 남았습니다. 하지만 조광래 감독의 경우, 아시안컵 이후 언제까지 대표팀 감독을 할 지 확실하게 계약기간을 설정하지도 않았던 게 문제였습니다.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까지 갈 지, 본선까지 쭉 갈 지, 어떤 기약도 없었던 것은 그나마 조광래 감독에 변명거리가 될 수도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올해 한국 축구는 '용두사미'와 같은 한 해를 보내면서 씁쓸하게 한 해를 마감하게 됐습니다. 화려하게 시작했다 급작스런 하락세에 결국 좌초된 조광래호를 대체할 만 한 작업을 해야 하는 축구협회가 됐지만 어떤 인물이 감독으로 선임될 지, 그 과정은 확실하게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다시 우여곡절을 겪느냐, 아니면 달라진 모습으로 많은 이들이 원하는 참신한 인물로 선임하느냐, 모든 것은 축구협회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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