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양(供養). 공경하는 마음으로 올리는 공물로 이해하자. 부처에게 바치는 불공, 부모에게 바치는 부모공, 그리고 스승에게 바치는 사공이 있다. 존경의 표식이라고 생각하면, 크게 부담스럽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단어다. 나는 이제 또 다른 공양의 양식을 제출한다. 사회에 바치는, 정치에 바치는, 민주에 바치는 공양이다. 사회를 공경하고 민주를 존중하고 정치를 기대하기에 기꺼이 바치고 싶은 공물이다. 사회의 화평을 위해, 정치의 전개를 위해, 그리고 민주의 진보를 위해 기꺼이 방통심위를 공양한다.

방송통신심의원회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모바일 앱 등 뉴미디어 심의하기 위한 전담팀 신설을 공포했을 때, 나는 삭발로서 이 충격에 반발하려 했다. 언론학자, 미디어문화연구자,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똑같이 쇼킹한 반응을 보이고 싶었다. 당장 트윗터를 통해 함께 머리 깎을 딱 세 명의 동료를 구해봤는데 답변이 시원찮고, 진보네트워크센터와 언론인권센터 등이 1인 시위에 들어간 상태에서, 혼자 밀어봐야 효과 있는 방법 같지도 않아, 결국은 이 글로 방통심위의 처사에 답한다. 차분하고 진지하게.

답변은 간단하니, 뭐라 할 것 없이 방통심의위원회를 해체하면 된다. 통신 ‘심의’가 이번 정권에서 심각한 교통 통제와 인터넷 검열 사태로 이어졌다. 민주주의의 위기와 불안, 전체주의의 공포와 난폭 상황에도 방통심의위 인터넷 단속이 크게 일조했다. 통신을 국가행정기구가 ‘심의’토록 방임한 게 문제였다. 결국 우리의 잘못이고 우리 판단의 실수였다. 현 정권과 그 수뇌 그리고 그 졸개들의 책임이라고 하기에, 이런 결과를 정확히 예측하고 확실히 막지 못한 우리의 탓이 명백히 크다.

그래서 깊은 반성과 긴 숙고 끝에 새로 답을 제출하니,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해체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겪은 사정과 앞으로 예상되는 정황을 따져본 바, 통신 ‘심의’가 불가능 하도록 사회적으로 조치해야 하는 데, 그게 유일하게 현실적인 안이다. 근본적이고 제도적으로 통신 검열이 불가하도록 만드는 거다. 방통심의를 그냥 둔 채 통신 심의만 못하도록 하는 게 쉽지 않을 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기구를 완전히 뜯어 심의 즉 숙의의 정치가 제대로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재조립하는 것이다, 창의적 파괴다.

‘심의’를 가장한 검열의 방통심위 꼼수에 대해서는, 진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원성이 높다. 김성훈 한나라당 디지털위원장의 말을 들어보자. “실효성, 공정성, 위헌소지 등 많은 문제점과 논란이 발생할 수 있는데 시대착오적인 단속을 하려는가”라고, 바로 자신의 트윗터를 통해 비판했다. 그런 시대인 것이다. 민주공화제 헌법 정신에 맞지 않는 여론 검열을 당장 멈추라는, 대중 공통감각을 정확하게 옮기고 있다. 비상식적이고 반사회적이며 초헌법적인 검열 의사에 대한, 시중 여론을 간결하게 대변하고 있다.

통신 ‘심의’에 대해 보수화된 국가인원위원회도 일찌감치 의견을 내놓았다. 현행 정보통신제도 자체가 검열에 가깝다고, 인터넷 상 표현의 자유를 중대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심의 대상과 심의 기준의 불명확하게 규정된 사실을 지적하면서, 행정기관이 인터넷 게시물을 통제하는 점 자체를 문제로 삼았다. 정보 심의권과 시정 요구권을 민간자율심의기구로 이양하는 내용의 관련 규정 개정을 권고할 때, 인권위는 통신 심의의 포기를 권고하고 있었지만 궁극적으로는 현 방송통신심의위의 해체까지도 암시한다.

맞다. 국가 질서와 정치 단속을 위해 마련된 통신 ‘심의’였다. 자유로운 대중교통의 단속과 자율적인 시민 저널리스트의 위압을 노린 치안 스테이트 장치에 불과한 방통심위였다. ‘헌정질서 위반’, ‘범죄 기타 법령 위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 위반’, ‘국제 평화질서 위반’ 등을 검열과 통제의 명분으로 내세웠다, 국가주의와 전체주의의 자취, 파시즘적인 것의 잔재가 흉흉하게 묻어난다. 이런 구닥다리 대중교통 방해물, 대중정치의 단속의 완장을 몇 년 동안 마음대로 내버려 두었던 것이다.

박정희가 무소불위 권력을 행사하던 70년대, 전두환이 말 그대로 공포의 통치권을 구가하던 80년대에나 어울릴 물건이다. 일개 행정기구에 불과한 방통심의가 대중교통을 단속하고 교통대중들에게 끊임없이 딱지를 날리는 사태는, 3년의 악몽 같은 시간으로 충분했다, ‘사회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복구를 위해, 저 설치물을 걷어내는 일이 당장 시급하다. 푸코가 던진, ‘사회는 보호되어야 한다굽쇼?’라는 조롱을, ‘사회질서 보호’를 앞세워 발기한 저 오만의 조직, 방통심위로 돌려야 한다. 시계를 다시 앞으로 돌려야 한다.

미디어 기술 진보의 놀라운 속도를 따라가기에 현저하게 후진 발상에서 만들어진 방통심위다. 그렇게 설립된 방통심위가 지독히 낡은 수사와 현저하게 도태된 이데올로기를 갖고 전혀 새로운 미디어, 기술, 정치 환경을 통제하려 드는 무리수를 보이는 것은, 따지고 보면 당연할 결과라고 하겠다. 민주주의 “헌정질서”를 스스로 위반하고, 시민 자율의 “사회질서”를 심각하게 위배하며, 국경 없는 99%들 사이의 말 그대로 “평화질서”를 괜히 위협하는 방통심위는, 신보수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딱 한번 실험으로 그쳐야 할 시대의 불행이다.

‘헌정질서’와 ‘사회질서’, ‘평화질서’를 진정으로 생각하는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집단이라면, 손발 벗고 나서야 한다. 개인의 당연하게 사적이면서 동시에 공적일 수 있는 통신을 위해, 그리고 통신 공간과 매체의 당연한 진보를 위해, 국가의 통치와 행정적 편의, 검열과 통제는 불가능해져야 한다. 그게 정답이다. 시민의 민주정치를 다시 가능하게 하기 위해, 사회를 진정으로 보호할 책무가 있는 시민 모두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루어내야 한다. 방통심위 해체. 민주주의 이후 재민주화 프로젝트의 핵심 내용이다.

“아동 포르노처럼 유해성이 명확한 표현물이 아닌 한 내용을 이유로 함부로 표현물을 규제하거나 억압하면 안” 된다고 법원은 판정했다. 이를 이어받아 헌법재판소도 최소 규제의 원칙을 재확인하는 수준일지라도, 곧 인터넷 검열에 관해 입장을 정리할 거다. 이런 정황이 방송 ‘심의’, 방통심의를 도와줄까? 아니면 인터넷 표현물 검열과 뉴미디어 전단 통제 팀 신설은 옳지 않다는 시민의 판단을 강화시켜 줄까? 부당한 통신 차단은 “안돼~!”라는 풍자의 우스개가 <개그콘서트>에서 곧 터져 나오지 않을까?

크리스마스와 연말로 들뜨기 시작한 12월, SNS와 살고 <나꼼수>와 노는 사람들에게 찬물을 끼얹은 방통심위는, 그 과한 행동으로 인해 도리어 자기 존재 기반을 더욱 무너뜨린다. 치명적 오류다. 지금 여론은 헛된 망상과 후진 오식을 두고 비웃는 소리, 킬킬대는 웃음으로 시끄럽다. 방송통신심위위원회는 이제 공포가 아닌 조롱의 대상일 뿐이다. 네트워크 대중들에게 행사하던 위세는, 오직 공포의 권력을 배후에 깔 때 가능했다. 그런데 그 배후가 허깨비 같이 무너졌을 때, 그 전면 설치물의 추락은 너무나 당연한 일.

그래서 방통심위 해체는 벌써 진행 중이다. 외부 비난이 아닌, 자초한 탓으로서 그러하다. 겨울 지나며 방통심위를 둘러싼 시중 분위기는 더욱 냉랭해진다. 그리고 마침내 따스한 봄이 오면, ‘방통심위 해체’는 유령처럼 떠도는 소문이 아닌 생생한 여론의 음성으로 정리된다. 해체. 해체. 해체. 그 이후는? 거기 관해, 방통심위 안락의자의 당신들은 그냥 편히 입 다물고 계시면 된다. 삭발을 유보한 본인을 포함해, 통신의 자유로운 놀이와 통신을 통한 자율적 교제의 기본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벌써 답을 찾기 시작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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