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더불어민주당 미디어혁신특별위원회 8대 과제에 꼽힌 미디어바우처법 제정안은 주요 내용을 포괄적으로 시행령에 위임하고 있으며 구체적 방법론을 담고 있지 않다. 제정안인 만큼 구체적인 시행 방향을 제시해야 하지만, 현재 미디어바우처법은 정부광고를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다.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8일 미디어바우처법 제정안을 발의했다. 미디어바우처법은 국민이 직접 언론사 정부광고비를 정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미디어바우처법에 따르면 국민은 자신이 원하는 언론사에 미디어바우처를 제공하고, 언론사가 받은 바우처를 기준으로 정부광고가 집행된다. 미디어바우처 제도는 지난달 31일 출범한 민주당 미디어혁신특별위원회의 8대 과제에 꼽혔다.

미디어바우처법 제정안, 정부광고법 개정안에 나온 시행령 위임 조항

미디어바우처법을 살펴보면 주요 내용이 시행령에 위임돼 있다. 구체적으로 ▲미디어바우처·마이너스바우처 지급 절차 ▲미디어바우처 지역신문 분산이용 방법 ▲미디어바우처 대상 사업자 요건에 대한 구체적 내용 ▲미디어바우처 등록심사위원회 관련 사항 ▲미디어바우처 지급 결격사유 등이다.

일반적으로 법안에 모든 내용을 담을 수 없으므로 세부적인 내용은 시행령에 위임된다. 하지만 위임입법을 할 때는 구체적인 범위를 정해야 한다. 헌법 75조는 위임입법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받은 사항”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조정찬 전 법령정보관리원장은 <위임입법의 범위·기준> 보고서에서 “포괄적인 위임은 권력분립과 의회입법의 원칙에 반하고 국회가 입법부로서의 기능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 되어 금지된다”고 설명했다.

미디어바우처 제도는 정부광고를 배분하는 내용을 담고 있고, 이는 언론사 수익과 직결된다. 즉 수익적 행정행위(권리·이익을 부여하는 행정행위)와 침익적 행정행위(의무를 과하거나 권리·이익을 제한·박탈하는 행정행위)가 공존하는 제도다. 법률적으로 법안이 침익적 성격을 가지고 있을 경우 더 엄격한 구체성이 요구된다.

미디어바우처법 제정안 중 시행령에 위임된 침익적 행정행위는 미디어바우처 지급 결격사유, 마이너스바우처 지급절차, 대상사업자 요건 등이다. 어떤 국민에게 미디어바우처가 지급되는지, 언론사가 미디어바우처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선 어떤 요건을 갖춰야 하는지 등 세부적인 사항이 행정부 소관으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김승원 의원이 미디어바우처법과 함께 발의한 정부광고법 개정안 역시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정부광고법 개정안에 미디어바우처 결과를 정부광고와 어떻게 연계할지에 대한 방법이 담기지 않았다.

정부광고법 개정안에 따르면 문체부 장관은 미디어바우처 최종 산정액 비중에 따라 정부광고비를 결정해야 하는데 구체적은 기준은 대통령령으로 정해진다. 또한 미디어바우처 수급액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금액에 미달하는 경우 홍보매체 선정에서 배제된다.

김승원 의원이 미디어바우처법 제정안을 발의한 배경에는 한국ABC협회 부수 조작 논란이 있다. 한국ABC협회 부수 공사 결과를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이를 미디어바우처 제도로 대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광고 매체 선정, 광고비 책정 과정에서 ABC협회 부수 공사 결과는 참고 사항에 불과하다.

미디어바우처 제도를 국내에 처음 소개한 김선호 한국언론진흥재단 책임연구위원은 10일 열린 토론회에서 “(정부광고법에 ABC협회 부수 공사 관련 내용이 담긴 것은) 아무런 기준 없이 정부광고를 집행할 수 없으니 ABC협회에 등록이라도 하라는 뜻”이라며 “정부광고는 ABC협회 부수 공사 결과에 따라 집행하는 게 아니다. ABC제도가 정부광고의 핵심이 아니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마이너스바우처가 이용자의 확증편향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마이너스바우처는 ‘불호의 의사표시’로 언론사가 마이너스바우처를 받으면 해당 금액만큼의 미디어바우처가 환수된다. 이준형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연구원은 10일 토론회에서 “마이너스바우처는 특정 언론인이나 이슈에 대한 공격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은령 서울대 SNU팩트체크센터장은 8일 기자협회보 칼럼에서 “‘좋은 언론’이 누군가 ‘좋아하는 언론’이 아닐 경우 마이너스바우처를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한국 언론은 다른 견해를 적대시하는 확성기 역할에 안주해왔기에, 좋아하지 않는 언론이더라도 옳은 말을 할 때는 ‘좋은 언론’으로 인정해 줄 수 있는 시민적 관용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고 지적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블록체인을 규정한 조항 역시 문제로 꼽힌다. 우선 법적으로 블록체인 기술이 무엇인지 규정된 사례가 없다. 또한 미디어바우처법 제정안에는 블록체인 기술을 미디어바우처 제도에 도입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이 나와 있지 않다.

김승원 의원은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미디어바우처를 지급해야 한다며 ‘블록체인’을 “중앙 서버가 아닌 분산화된 네트워크에 참여자가 공동으로 정보를 기록하고 관리하는 원장을 구현하여 누구도 정보를 임의로 수정할 수 없고 누구나 정보의 변경 결과를 열람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라고 규정했다. 미디어바우처법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미디어바우처 사업의 운용을 위하여 블록체인기반시설을 마련하고 블록체인 등 전자서명수단의 이용 활성화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했다.

미디어바우처법에 따르면 언론사가 정정보도를 할 경우 미디어바우처 일부가 환수된다. “정정보도가 인용된 보도는 가짜뉴스”라는 논리다. 김승원 의원은 “가짜뉴스를 보도한 경우 바우처를 환수한다”며 “가짜뉴스는 정정보도 신청이 인용되는 경우다. 이를 통해 기사 질을 높이고 가짜뉴스를 예방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모든 정정보도를 가짜뉴스로 규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지난해 2월 서울서부지방법원은 극우성향 기독교단체가 한겨레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가짜뉴스’가 무엇인지 개념을 규정했다. 재판부는 “가짜뉴스의 핵심적인 요소는 ‘내용의 진실성 여부’, ‘정보의 전달 과정에서 의도성’”이라고 밝혔다. 즉 의도적인 허위사실이 담겨 있어야 가짜뉴스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정보도는 의도성이 없더라도 인용될 수 있다. 김승원 의원은 “모든 정정보도를 가짜뉴스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는 지적이 나오자 “가짜뉴스는 악의적 왜곡 보도를 뜻하는 것이기 때문에 관련 조항을 수정하도록 하겠다”고 입장을 선회했다.

미디어바우처 제도 취지는 좋으나 이를 정부광고와 연계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지방자치단체가 미디어바우처 제도 전용 재원을 마련하는 대안을 제시했다. 미디어바우처 제도가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신문 위주로 진행돼야 하며 지자체가 재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선호 연구위원은 네이버·카카오 등 국내 플랫폼 기업과 구글·페이스북 등 글로벌 플랫폼 기업에 재원을 징수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정연우 세명대 교수는 미디어스와의 통화에서 “미디어바우처 제도는 한국 저널리즘을 복원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정부는 수신료처럼 미디어바우처 재원을 별도로 조성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 미국의 ‘조지 스티글러 경제 국가 연구소‘는 2019년 미디어바우처 제도를 제안하며 “미국 재무부가 성인 1인당 연간 50달러의 바우처를 발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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