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와 박원순 홈페이지에 대한 디도스 공격이 분수령을 넘고 있다. 결정적인 두 가지 사실이 언론에 공개됐다.

첫째는 디도스(분산서비스거부ㆍDDoS) 공격을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는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의 9급 비서 공 모씨가 긴급체포 되기 열흘 전쯤에 지인들과 가진 술자리에서 "내가 한 일이 아니다"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한 가지는 공격을 ‘실행’한 강 모씨가 “나경원을 도와야 한다”는 부탁을 받고 일을 벌였다고 시인했다고 것이다. 앞선 것은 <민중의 소리>의 단독 보도이고, 두 번째 사실은 <한겨레>의 단독 보도다.

정리해보면 이렇다. ‘지시’한 이는 억울해 하고, ‘공격’한 이는 부탁을 받았다. 억울하단 얘기는 자신이 ‘진범’이 아니란 얘기고, ‘공격’한 이는 자신은 수동적 존재였을 따름이라고 항변하고 있는 셈이다. 한낱 9급 비서일 뿐인 이가 어떻게 경찰의 발표가 있기 열흘 전에 이미 수사의 방향을 알았는지, ‘실행’한 이는 ‘지시’한 이로부터 사업적 이해관계인 “온라인 도박의 합법화” 언질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 언질을 준 의원의 이름은 각각의 상상에 맡기자.

▲ MBC 화면 캡쳐

각설하고, 이 사건이 민주주의의 뿌리를 흔드는 ‘부정선거’인지 아니면 객기에 찬 어느 누군가가 저지른 ‘사이버범죄’인지를 가늠할 중요한 갈림길이 아닐까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디도스 공격이 어떤 형태의 것인지 잘 알지 못하고, 선관위의 로그파일 공개가 기술적으로 어떤 부분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인지도 가늠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물론, 객관적 증거주의에 입각하기 위해선 두개의 사실들이 명확해져야겠지만, 핵심적 ‘피해자’인 선관위가 그걸 안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그것이 없더라도 맥락적으로, 논리적으로 이번 사건의 얼개를 맞춰보자.

6일 <PD수첩>이 추적한 선관위의 석연치 않은 투표소 위치 변경을 위의 사실들과 맞물려 생각해보면 확실한 그림이 떠오른다. ‘가카는 그러실 분이 아닌데...’라는 요새 유행어도 염두에 두어보자.

서울시장 재보선 내내 한나라당의 선거 전략은 초지일관이었다. 묻지마 네거티브 공세를 통해 정치적 회의감을 확산해 투표율을 떨어뜨린다는 것이었다. ‘투표율이 몇 % 이상이면 지고 몇% 이하면 이길 수 있다’는 예측을 내놓는 것이 당시 한나라당 당직자들의 주요한 언론 행위였다.

그래서 우선적으로 확인되어야 하는 것은 선관위의 투표소 위치 변경이 한나라당의 이러한 선거 전략과 어떻게 조응하느냐의 문제이다. ‘나경원을 돕기 위해 선관위 홈페이지를 공격했다’는 진술이 완결되기 위해선, 공격을 통해 투표소 정보를 확인하지 못하면 한나라당이 유리하다는 전제가 반드시 필요하다.

여기서 유념해봐야 할 것은 그 동안 이 정부가 어떤 일을 도모해온 방식이다. 예컨대, 한나라당의 승리를 위해 투표율 하락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선 당의 노력뿐만 아니라 정부 차원의 협조가 절실했다고 했을 때, 청와대(혹은 선관위)가 ‘투표율을 하락시키기 위한 방안’을 당과 논의 하진 않았을까? 이건, 굳이 범죄 음모가 아니더라도 행정적 영역에서 발휘할 수 있는 어떤 ‘꼼수’를 통해 한나라당에 유리한 상황을 정부가 도모해주자 뭐 이런 식의 협조 체계가 가동되었을 가능성은 없느냔 말이다. 공교롭게도 공 씨를 데리고 있던 최구식 의원은 그런 협조 체계가 가동되었더라면 필수 멤버였을 한나라당의 홍보 전략의 총괄자였다.

▲ 강경근 중앙선관위 상임위원ⓒ연합뉴스

확인할 순 없겠지만, 단초는 있다. 재보선 당시 선관위는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투표 지침으로 사회적 조롱의 대상이 됐었다. 투표 독려를 막기 위한 일종의 꼼수였는데, 조롱이 차고도 넘쳐 기관의 위상에 현격한 저하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선관위는 묵묵부답으로 상황을 버텨냈다.

왜 그랬을까? 여기서 주목해야 할 인물이 한 명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강경근 상임위원이다. 위원장을 제외하면 유일한 상근 위원으로 실제론 선거관리 사무를 총괄하는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강 상임위원의 이력은 중앙선거관리위원의 그것과는 좀 맞지 않는데, ‘나라선진화·공작정치 분쇄 국민연합, ’선진화국민회의‘, ’바른사회시민연합‘ 등에서 부의장과 공동대표 등을 역임한 대표적 뉴라이트 편향 인사다. 고려대 출신이기도 하다. 궁금하다. 강 상임위원은 재보선에서 누가 이기길 바라지 않았을까?

선관위는 디도스 공격의 피해자이면서도 사건 발생 수일이 지나도록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힐 로그파일을 내놓지 않고 있다. 않고 있을뿐더러 별다른 입장 표명 역시 하지 않고 있다. 복잡한 사정이 있는지,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현재까지는 회피하고 있단 인상인데, 잘 납득이 가질 않는다. 기관의 가장 핵심적 업무가 여당 비서관에 의해 마비됐는데, 일언반구도 없는 건 아무래도 이상하다.

관련해 경찰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아직까지 선관위 직원이 연루되어 있다는 근거는 찾지 못했다”고 했다. 행간의 의미는 ‘아직’에 있다고 읽어야 할 것이다. 아직 찾지 못한 것이고 경우에 따라선 영원히 찾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담 찾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대중의 핵심적 의혹은 이런 거다. 9급 비서가 그런 일을 할 순 없다. 상식적 눈높이의 의문이다. 그렇다면 공 씨가 강 씨는 모두 꼬리일 뿐 실체는 따로 있을 것인데, 그게 누구냐는 것이다.

이 대중의 의혹을 가장 빠르게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하다. 선관위에 왜 투표소 위치를 그렇게 임의로 변경한 것인지를 확인하면 된다. 특히, 선관위 실무를 총괄하는 강경근 상임위원에게 관련 결정을 내린 배경과 이유에 대해 자세한 답변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선관위의 답변이 불충분하다면, 의혹 해소 차원에서 강 위원의 통화 내역을 한 번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혹시 최구식 의원과 통화를 했는지 아니면 박희태 의장과 자주 통화를 한 건 아닌지 말이다. 행여, 혐의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선관위 상임위원의 통화내역 확인이 어렵다면 혐의가 있는 공 씨나 혹은 최구식 의원의 통화 내역 중에 선관위 직원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부디 이번 사건이 최구식 의원의 비서 공 씨의 단독범행이거나 공 씨와 범행 전날 술을 마신 박희태 국회의장의 비서 차원에서 진행된 일이길 바란다. 그렇지 않고 뭔가 당 차원의 당정 차원의 조직된 범죄, 계획된 범행이라면 그건 너무 끔찍한 일이 아닌가? 설마,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사실상 25.7%’겠지만, 괜한 노파심이겠지만 정부와 여당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상식적 눈높이에 기반 한 ‘괴담’이 자꾸 더 퍼질까 단지 그게 염려스러울 뿐이다. 어찌되었건, 지금까지의 경찰 수사만으로도 이미 분수령을 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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