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K리그 신인 드래프트가 열린 지난 달 9일, 김호곤 울산 현대 감독은 선수 지명을 마친 뒤 가진 짤막한 인터뷰에서 6강 플레이오프 준비에 대해 "머리 아픕니다. 빨리 가야지. 경남 통영에서 합숙하는데 얼른 비행기 타고 가야 합니다"고 했습니다. K리그 챔피언십에 대한 나름의 고민과 노력을 엿볼 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울산 현대가 챔피언결정전까지 올라갈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재미없는 축구'를 한다며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기껏 잘해봐야 준플레이오프 정도가 한계일 거라는 예상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랬던 울산이었지만 김 감독의 고민만큼이나 선수들은 착실하게 준비를 잘 했습니다. 그리고 본 모습을 드러내며 챔피언십에서 완전히 달라진 팀의 면모를 보였습니다. FC 서울, 수원 삼성, 포항 스틸러스를 차례대로 꺾었고, 챔피언결정전에 올라 전북현대와도 대등한 경기를 펼치며 명승부를 연출해냈습니다. 비록 이들이 목표했던 우승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지만 적어도 늦가을에 보여준 울산의 성장 과정만큼은 큰 박수를 보내기에 충분하고도 남았습니다. 우승을 차지했던 전북 최강희 감독도 "울산과 김호곤 감독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고 말했을 정도였습니다.

▲ 울산 현대 (사진: 김지한)
울산이 보여준 저력은 대단했습니다. 정규리그에서 그들보다 순위가 높았던 팀들을 상대로 차례로 꺾고 AFC 챔피언스리그 본선 티켓까지 거머쥐었습니다. 무엇보다 내용이 있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 더욱 흥미로웠습니다.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에서 보여준 신예 골키퍼 김승규의 선방 능력, '골넣는 수비수' 곽태휘의 재발견, '설바우두' 설기현의 첫 K리그 정상을 위한 도전까지, 많은 이야깃거리들을 낳았습니다. 그동안 재미없는 팀이라는 비아냥을 완전히 씻어냈습니다.

단기전에 맞는 전략이 주효했던 것이 컸습니다. 서울과의 6강 플레이오프에서는 중원을 장악하고 고공 공격을 활용한 타점 높은 득점력으로 3골을 뽑아내며 이겼습니다. 수원과의 준플레이오프에서는 탄탄한 압박 수비와 함께 미리 승부차기에 대비하는 '디테일한 준비'로 또 한 번 승리를 가져왔으며, 포항과의 플레이오프에서는 두 차례 승리를 바탕으로 한 선수들의 높아진 자신감과 탄탄해진 조직력으로 체력 문제를 잘 극복하며 챔피언결정전 티켓을 거머쥐었습니다.

챔피언결정전에서도 울산은 체력적으로 힘든 상황에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했습니다. K리그 최고 공격력을 자랑하는 전북과 대등한 경기를 펼쳤습니다. 한골을 먹은 상황에서도 동점골을 넣으며 따라붙었고, 불리한 원정에서 먼저 골을 뽑아내며 전북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습니다. 두 경기 모두 전북이 이기기는 했지만 울산이 보여준 저력에 자극받아 더 멋진 승부가 펼쳐질 수 있었던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5경기를 치르는 동안 보여준 울산의 경기력을 놓고 보면 충분히 '아름다운 2등', '우승만큼 값진 준우승'이라는 칭호를 붙이기에도 손색이 없습니다.

한 달 전만 해도 울산은 '미운 팀'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실력으로 무언가를 보여주었고, 어느 정도 이전 이미지를 바꾸는데 성공했습니다. 이제 챔피언십에서 보여준 인상적인 스토리들만큼 앞으로 더 발전된 면모를 보여줄 일만 남았습니다. 충분히 이 분위기를 내년에도 그대로 이어간다면 1990년대 후반 고재욱 감독 시절 최고 전성기를 맞았던 르네상스를 다시 맞을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K리그 통산 최다승을 자랑하는 울산의 새로운 전성기, K리그의 또 다른 흥밋거리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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