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전쟁이다. 전문성은 물론 도덕성도 낙제점 게다가 공영방송의 미래 비전조차 제대로 갖추지 않은 인물이 방송통신위원장 자리를 기어코 차지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형님 인사’니 여론의 반발이니 하는 소리는 이제 정치권이나 글쓰기 즐겨하는 이들에게 맡겨 두자. 오늘, 우리가 단단히 각오하고 준비해야 할 일은 바로 큰 싸움이다.

조합원들이여!

최시중 씨의 머릿속에 있는 방송의 미래 그림이 보이지 않는가? 방송의 공영적 가치가 있어야 할 자리는 민영화가 차지할 것이다. 방송독립은 우리의 명줄을 쥐고 흔드는 개입으로 대체될 게 분명하다. IPTV와 MMS 그리고 신문방송 겸영 그 어떤 주제가 도마에 오르더라도 결정을 가늠하는 원칙은 오직 한 가지, “돈벌이가 되느냐?”일 뿐이다. 소중한 공론의 장이 돼야 할 방송은 이제 국민의 품을 떠나 권력을 쥔 자와 돈을 가진 자의 놀이터가 되고 말았다.

20년 동안 피땀 흘려 쌓아온 방송독립의 역사가 일순간에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불과 지난 석 달 동안 벌어진 일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대통령의 발아래 떨어질 때, 숱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정부조직법 패키지에 묶어 이를 어물쩍 통과시켜 버렸다. 그 결과 대통령의 ‘정치적 형님’이 초대 방송통신위원장으로 그리고 공영방송의 ‘공’자도 모르는 방통위원들이 임명되고 말았다. “부적절하다”고, “최소한 대통령의 최측근이 아닌 다른 사람이 와야 하는 자리”라는 간곡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래서 대통령의 방송통신위원장 임명은 이제 이 나라 공영방송인들과 공영방송의 미래를 놓고 한 판 전쟁을 치르자는 선전포고에 다름 아니다.

조합원들이여!

조금이라도 더 정확하게 보도하고 한 장면이라도 더 진실에 가깝게 제작하기에 여념이 없겠지만 이제는 세상으로 눈을 돌리자. 우리가 만든 뉴스, 우리가 제작한 프로그램이 권력의 압박 앞에 발가벗겨질 수 있음을 직시하자. 대통령의 ‘정치적 형님’이 바로 그런 자리, 공영방송 KBS를 규제하는 기구의 수장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의 목소리는 이제 더 이상 방송 전파를 탈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지상파 방송을 쪼개고 팔아 치우겠다는 생각은 당연히 자본의 품에 방송을 안겨주고 이른 바 돈이 되는 방송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우리가 더 이상 “방송독립 쟁취, 공영방송 사수”를 목 놓아 외치지 않아도 될 날이 올 것이다. 다시금 반독재 민주화와 대통령 직선제 쟁취가 지상 목표였던 20년 전을 떠올려 보자. 그러나 2008년 3월은 아직까지 우리의 구호가 서슬 퍼렇게 날을 벼리고 있어야 함을 웅변하고 있다.

조합원들이여! 이제 큰 싸움을 준비하자!

2008. 3. 26.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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