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 해적당 로고 ⓒ Wikimedia Commons
올해는 국내외적으로 정치혁명이 있었던 해로 기억될 것이다.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의 민주화 운동을 비롯해 국내외 수도권에서도 선거를 통한 정치혁명이 있었다. 국내에선 10월 26일 서울시장선거에서 소위 무당파 박원순 후보가 젊은 세대들의 절대적 지지를 얻어 당선되었고, 그 이전 9월 18일 독일 베를린 주 지역선거에선 해적당(Piratenpartei)이 8.9%의 표를 얻어 베를린 주정부 의회의석 총 149개 중 15석이나 차지하는 쾌거를 거두었다. 정당정치 경험이 없는 젊은 인터넷 세대로 구성된 해적당이 그야말로 혜성같이 나타나 기존 정당정치를 뒤흔든 것이다.

국내 일부 언론에서도 보도되었듯 독일 해적당 당원들의 평균나이는 약 29세다. 20대와 30대의 지지기반을 축으로 이미 전국적으로 시의회의 의석을 161석이나 차지하고 있다. 이번 베를린 선거에서 이러한 성공을 거두리라곤 해적당원 지도부들조차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더욱이 기존의 정당들에겐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며, 우익보수 연립정부의 자민당(FDP)은 한 개의 의석도 차지하지 못하는 치욕을 당했다. 주류 언론들 또한 해적당을 컴퓨터 해커들의 모임쯤으로 간주하고 주목하지 않았던 터라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해적당의 등단은 마치 30년 전 녹색당의 출현이 재현되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했다. 글로벌 환경운동을 기반으로 권위주의를 거부하고 생태계보호, 반핵운동 및 평화주의와 시민권 강화 등의 이념을 주창하며 등장한 녹색당은 벨기에와 독일을 비롯한 유럽을 중심으로 국제적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당시 후기 68운동 세대로 일컬어지는 신세대를 주축으로 한 녹색당은 기존 정당과 비교할 때 지나칠 정도의 급진적인 평화주의 이념들과 함께 당원들의 겉모습 또한 자유분방해 ‘카오스군단’이란 별명까지 얻었다. 녹색당이 정식으로 창단되기 전인 1970년대 녹색운동의 움직임은 민주주의의 위험요소로까지 인식되기도 했다. 누구도 녹색당이 기존의 정당정치체제에서 그리 오래 생존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으며, 녹색당의 출현은 단지 일시적 현상으로 간주되었다.

마치 히피족들의 모임과 같은 카오스적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독일 녹색당은 사민당(SPD)과 함께 1998년부터 2005년까지 2차에 걸쳐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하지만 녹색당의 근본이념인 반핵 및 평화주의와는 달리 코소보 및 아프가니스탄 전쟁개입 반대와 핵발전소 폐쇄 등을 확고히 지키지 못해 기존 정당들과의 차별성을 잃어버렸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또한 정당의 존립에 대한 심각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계속되는 패권전쟁에도 불구하고 녹색당은 미국의 압력 속에서 평화주의를 실현시키지 못한 채 딜레마에 빠져버렸다. 원전의 안전성을 내세워 원전폐쇄기간 연장을 주장하는 에너지 기업들의 로비와 권력을 잡은 보수파 정당들의 논리에 귀 기울이는 시민들을 설득시키지 못했다.

지난 일본 대지진 및 쓰나미로 인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방사선 유출로 체르노빌 악몽이 되살아나면서 반핵운동이 다시 주요 글로벌 이슈로 대두되었다. 이는 녹색당의 정체성과 존재의미를 되묻는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일본 원전사건으로 핵의 위험성에 대한 세계시민의 경각심이 다시 부활했고 녹색당과 시민운동은 다시 활력을 되찾았다. 반핵을 비롯한 환경운동과 평화주의는 더 이상 한 세대의 소수정당인 녹색당만의 주장이 아니다. 녹색당의 이념들은 일시적인 현상을 넘어 어느덧 시민의식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 터키출신의 독일 녹색당 대표 외츠데미어ⓒ한수경/마이그린뉴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을 막을 수 없듯이, 녹색당은 이제 젊은 신세대당이 아니다. 독일의 경우 녹색당원들의 평균연령은 46세로 다른 정당들의 평균연령보다 여전히 젊고, 여성당원들의 비율도 37%로 상대적으로 높으며, 당대표도 남성과 여성의 비율이 1대1로 동등하다. 또 열린 이주민정책에 어울리게 터키출신의 외츠데미어(Cem Özdemir)가 로트(Roth) 여성 당원과 함께 당대표를 맡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진보적이지만, 진보당의 이미지가 이제 ‘역사 속의 신세대 당’으로 변화되고 있다.

1960년대 태생들이 주축을 이루던 녹색당은 1984년에서 1989년 당시 당원들의 평균연령은 28세였다. 그 후 25년이 지난 현재 당원들의 평균연령은 거기에 거의 20세가 더해졌다. 당원들의 평균연령의 변화만 보더라도 과거의 신세대 혁명인 녹색당은 더 이상 뉴미디어 세대를 대변하지 못하고, 기존의 정당들과 마찬가지로 20, 30대 젊은 층을 흡수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세대 간의 공백을 메우기라도 하듯, 혹은 30년 전의 정당정치의 혁명을 재현하기라도 하듯 다시 새로운 신세대 당이 출현했다. 바로 해적당이다.

▲ 세계 해적당 활동지역. 검정색: 정식 등록됨. 파란색: 미등록 정당. 빨간색: 국제해적당 논의함 ⓒ Wikimedia Commons

해적당의 등장과 그 의미

해적당은 2006년 1월1일에 ‘Piratpartiet’란 이름으로 스웨덴에서 처음 창당됐다. 당의 이름인 ‘해적’은 저작권법에 위배되는 불법복제를 지칭하는 ‘해적판’에서 유래한 것으로 국제적으로 강화된 저작권을 비꼬기 위한 것이다. 정보의 자유, 저작권법과 특허법의 개혁, 개인정보와 사생활보호의 강화와 국가 행정부의 투명성을 주장하면서 해적당이 등장했지만, 이 당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컴퓨터 해커들의 모임 정도에 불과했다. 스웨덴 해적당을 모델로 곧 오스트리아, 덴마크, 핀란드, 독일 등 유럽지역에서 연달아 해적당이 창당되면서 세계가 주목하지 않았던 사이에 유럽 전역으로 확산됨과 동시에 세계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2006년 10월엔 국제해적당 조직인 PPI(Pirate Parties International)가 비정부기구(NGO)로 탄생했고, 현재 40개가 넘는 수의 해적당들이 각 국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그 수는 점차 늘어나는 추세이다.

현재 정식 등록된 해적당들 대부분이 유럽에 집중되어 있지만 캐나다와 호주를 제외하고도 브라질, 칠레, 멕시코, 러시아, 모로코, 튀니지, 네팔 등의 국가에서도 해적당들의 활동은 활발하다. 2009년 스웨덴 해적당은 스웨덴의 유럽의회 선거에서 7.1%의 투표율을 기록하면서 현재 2개의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이번 베를린 선거에서의 활약은 해적당이 기존의 정당정치를 단순히 약 올리는 수준을 넘어 주정부 의회에 진출함으로써 정책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놀랍게도 IT 강국이라 자부하는 한국의 경우 해적당이 알려지긴 했지만, 해적당 창당에 대한 논의는 활발하지 못한 실정이다. 유럽에선 30년 전에 등장해 이미 ‘중년당’이 되어버린 녹색당도 국내에선 이제야 창당준비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래 전부터 유럽에선 정당정치의 쇠퇴가 선거 때마다 이슈화되면서, 정치학에서는 그 대안을 모색하고 있었지만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한 상태였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벌어진 상황들을 관찰해보면 지지계층이 확고했던 중도우파와 중도좌파당인 소위 국민당들이 이젠 소수당으로 전락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는 기존 정당들이 더 이상 시민들의 요구를 대변하지 못함으로써 생긴 불만들이 쌓이면서 일각에서는 시민민주주의가 아니라 정당들의 횡포로 점철된 정당독재정치로 치부하는 시각도 있다. 시민들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하는 정당정치에 대한 식상함과 진부함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은 정치참여 거부로 표출되었고, 이는 투표율을 낮추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간 저조했던 투표율은 시민들이 민주주의의 대의정치에 대한 회의와 관심을 상실했기 때문으로 분석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해적당 등장이 던지는 의미는 정당정치에 등을 돌린 젊은 세대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을 대변해주는 마땅한 정당이 없다는 데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뉴미디어시대에서 성장한 컴퓨터세대들은 기성정당정치에 대한 더 이상의 기대를 접고 자발적으로 그 대안을 찾았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대의정치의 몰락과 더불어 참여정치를 요구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 본 칼럼은 2011년 한국정치평론학회 추계심포지엄에서 필자가 발표한 <뉴미디어시대의 정치혁명과 그 의미> 일부내용을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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