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크루엘라>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미디어스=고브릭의 실눈뜨기] 디즈니의 신작 <크루엘라> 주인공의 풀네임이 크루엘라 드 빌(Cruela De Vil)이라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이 곡이 나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며 마음을 졸였다. 바로 롤링스톤즈의 Sympathy for the devil. 다행히 곡은 쿠키영상이 시작되기 전에 깔리고 ‘‘Please allow me to introduce myself’라는 가사의 첫 문장에 호응하듯 크루엘라의 담담한 자기소개로 영화가 시작된다.

흑발, 백발을 갖고 태어난 에스텔라(엠마 스톤). 반으로 나뉜 머리색만큼이나 자기주장이 강한 그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엄마 캐서린(에밀리 비샴)과 함께 런던으로 패션 디자이너 교육을 받으러 간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엄마를 떠나보내고 홀로 런던에 입성한다.

순식간에 고아가 된 에스텔라는 재스퍼(조엘 프라이), 호레이스(폴 월터 하우저)와 함께 소매치기로 삶을 꾸려가면서도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버리지 않는다. 그리고 운명처럼 런던 최고의 디자이너 바로네스(엠마 톰슨)과 일할 기회를 갖게 된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 바로네스의 과거를 알게 된 에스텔라는 크루엘라로의 변신을 선언한다.

영화 '크루엘라'

디즈니의 선택, 오이디푸스 왕

<크루엘라>가 어딘가 익숙한 이야기라는 점에는 대부분 동의할 것 같다. 그렇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친부모가 자녀를 버린다. 버려진 아이가 양부모를 친부모로 알고 살아가지만 타고난 재능을 살려 서서히 성공가도를 달린다. 장성한 뒤에 친부모와 대립하고 감춰진 진실을 알게 된다는 점까지. 어떻게 보면 <크루엘라>는 성별이 바뀐 현대의 오이디푸스 이야기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크루엘라>와 <오이디푸스 왕> 사이에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오이디푸스는 괴물 스핑크스를 처치하고 테베의 왕이 되는 영웅이다.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파국을 눈치 챈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는 인간적 한계를 보이기도 하지만 제우스의 저주는 본인의 노력 여부와 상관없이 정해진 파국을 향해 그를 몰아부친다. 오이디푸스의 진가는 모든 사실이 밝혀진 후 더 빛난다. 앞으로 쏟아질 비난과 모욕을 감내하겠다는 듯 스스로 눈을 찌르면서 정해진 운명에 맞서려는 한 인간의 처절한 숭고함이 <오이디푸스 왕>을 인류가 만들어낸 최고의 이야기 중 하나로 격상시킨다.

크루엘라는 이런 면에서 오이디푸스와 다르다. 런던에서 도둑질을 하게 된 계기를 설명하는 오프닝을 보자. 겉모습이 튄다는 이유로 시작된 친구들의 괴롭힘과 꽉 막힌 교장의 일방적 퇴학 조치 탓에 에스텔라는 고향을 떠나 런던으로 향한다. 이 과정에서 정당한 저항과 꿈을 향한 도전은 빌런보다는 영웅에 가깝다. 고아들끼리 모여 좀도둑이 되는 불운한 환경에 처하지만 이는 바로네스의 오만하고 자아도취적인 성격과 천륜을 져버린 결정 탓이지 절대 바꿀 수 없는 운명이라고까지는 보기 어렵다. ‘모두가 원한다면 빌런이 되어주겠다’고 외치지만 공허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부당한 일에 맞서 싸우기도 하며 타의로 비극적인 운명의 주인공이 됐지만 결국 정해진 역할에 고분고분 따르기도 하는 순응적인 캐릭터에게 악당이라는 뜻의 빌런이 착 달라붙는 수식어는 아니다.

영화 '크루엘라'

플레이리스트에도 메시지가 필요하다

<크루엘라>는 귀가 즐거운 영화다. 비틀즈에서 딥퍼플을 지나 클래시와 블론디까지. 팝음악의 황금기를 관통하는 1960~70년대 음악을 폭넓게 활용한다. 화려한 화면과 잰걸음으로 빠르게 치고나가는 전개에도 이질감 없이 녹아드는 선곡은 영화를 준비하며 2,000여 곡을 들었다는 감독의 노고에 절로 박수를 보내게 만든다. 그러나 이 선곡이 결국에는 영화의 근본적 한계로 이어진다. 시대상을 반영한 건 좋으나 하드록에서 스탠다드 팝, 소울, 펑크까지 뒤죽박죽 된 사운드트랙은 영화가 전달하고픈 메시지가 무엇인지 혼란스럽게 한다.

팝음악사를 간단히 살펴보자면 레드 제플린, 퀸처럼 엄청난 기타 속주와 고음역의 보컬로 대표되는 테크닉이 밴드음악의 정석처럼 받아들여지던 1970년대 초중반. 이에 반발하여 단순한 기타코드와 자유분방한 보컬이 중심이 되는 펑크가 등장한다. <크루엘라>에서 바로네스와 크루엘라의 패션도 퀸과 섹스 피스톨즈 차이만큼 극명하게 드러난다. 바로네스가 최고급 백화점 명품매장에서도 가장 품격있는 하이패션을 추구한다면, 길바닥에서 옷을 만들어온 크루엘라는 누가 봐도 펑크에 영향을 받은 게 분명한 파격적이고 거친 패션이 테마다.

에스텔라에서 크루엘라가 되기로 선언한 뒤 목걸이 훔치려 파티에 잠입하는 씬을 살펴보자. 이때 흐르는 곡은 Electric Light Orchestra의 Livin' Thing이다. 제프 린이 이끄는 E.L.O는 유려한 멜로디에 화려한 현악구성을 더해 포스트 비틀즈로 불리기도 했다(제프 린은 훗날 조지 해리슨과 프로젝트 밴드 ‘트레블링 윌버리스’를 결성한다). 달콤하고 몽환적인 Livin’ Thing이야 의심할 여지 없는 명곡이지만 주인공과 친구들이 활약하는 씬에서 사용되는 건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이 든다.

영화 후반. 크루엘라가 선택한 복수의 방법도 설득력을 부여하기엔 부족했다. 바로네스의 올드함과 촌스러움을 부각시켜 패션계에서 자연스럽게 도태시키는 게 아니라 패션쇼 자체를 열지 못하게 만드는 테러였기 때문이다. 빌런이기에 충분히 도입할 수 있는 방식이라기보다 효과적이지 못한 탓이 크다. 백화점 매출이 줄어든다는 연출이 곧바로 덧붙여지긴 했으나 불의의 사고로 인한 실수가 그간 바로네스가 쌓아온 사회적 자산과 명성에 얼마나 흠집을 줬을지는 의문이다. 곧 이어진 파티에서도 주요 고객들은 바로네스에 대한 변치않는 브랜드 충성심을 보이며 파티에 참여하기도 한다.

마지막 파티에서 복수씬은 2시간 10분 동안 꼬여온 갈등을 해결하기에는 너무 간편하고 예상되는 연출이었다. 절벽 앞에서 드디어 두 사람의 진검승부가 펼쳐지고 오랜 원한이 해결되는 순간 등장한 건 경찰이다. 크루엘라가 바로네스에게 살인을 유도한 뒤 공권력을 개입시켜 사법적 정의구현을 하는 장면은 역시 빌런이라고 말하기에는 지나치게 사회친화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펑크의 등장배경처럼 구세대의 낡은 관행, 시대착오적 발상들을 겨냥하고 전복한 뒤 개인적 복수가 더해졌다면 지금보다 더 풍성한 콘텐츠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커다란 아쉬움을 남긴다.

영화 '크루엘라'

거창한 자기소개 뒤에 남은 건

사운드트랙에서 유일하게 두 번 등장한 뮤지션은 롤링 스톤즈다(한 곡은 런던 생활을 시작할 때 나온 She’s a rainbow). 앞서 소개한 Sympathy for the devil의 후렴구 첫 구절 ‘Pleased to meet you. Hope you guess my name(만나서 반가워. 내 이름을 한번 맞춰봐)’처럼 <크루엘라>는 빌런을 주인공으로 삼은 디즈니로서는 엄청난 핸디캡을 감수한 반가운 작품이다.

그러나 찬찬히 뜯어보면 2년 전 나온 <알라딘>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불행한 삶을 살아온 좀도둑이 뛰어난 재능과 믿음직한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신분이 상승한다. 이 과정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동료들과 삐걱거리기도 하지만 결국은 빌런을 퇴치하고 행복한 삶을 산다. <알라딘>은 원작 애니메이션에서 별 다른 활약이 없던 자스민 공주에게 speechless를 선물하며 시대의 변화에 맞는 메시지를 던지고 캐릭터 변신에도 성공했다.

크루엘라에겐 50여 곡에 달하는 곡이 있었지만 동물학대범이라는 오명에서는 탈출한 것 외에는 딱히 주목할 만한 메시지가 보이지 않는다. 단독 주연이라는 타이틀이 아쉬운 걸 떠나 달마시안 사냥도 하지 않는 유기견 보호자가 후속작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조커도 자스민도 되지 못한 크루엘라. Sympathy for the devil 후렴구의 마지막 문장이 목적이었다면 빌런으로서 성공이긴한데 그러려고 거창한 자기소개를 한 건 아니지 않을까.

“But what's puzzling you. Is the nature of my game(그런데 너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 나의 게임의 본질이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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