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평범한 봉급생활자 ‘장도리’는 26년 동안 대한민국의 ‘희로애락’을 지켜봤다. 그날그날 우리 사회의 모습을 네 컷의 그림과 짤막한 대화로 압축시켜온 박순찬 화백이 지난 5월 24일 경향신문을 퇴사했다.

26세에 청년 장도리를 탄생시킨 박 화백은 52세에 중년 장도리의 모습으로 독자들과 작별했다. 장도리 연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편을 꼽아달라는 요청에 “매일 그리다 보니 너무 많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며 한참을 고민했다.

그는 “근본적인 사회 문제를 끄집어내기 위해 모두가 아는 정치인의 모습을 활용했다”고 말했다. 2012년 그린 ‘산업화와 88만원 세대’가 대표적이다. 산업화세대로 대변되는 여당과 민주화세대로 상징되는 야당 정치인들 사이에 볼모로 잡혀 있는 88만원 청년세대를 다뤘다. 이 만화로 그해 ‘올해의 시사만화상’을 수상했다.

그가 왜 퇴사를 결심하게 됐을까. 그의 결심은 종이신문 몰락과 동떨어져 있지 않았다. 2013년 사회면에 연재되던 ‘장도리’가 갑작스레 오피니언면으로 이동했을 때 박 화백은 독자들이 현격히 줄었다는 걸 느꼈다고 한다. 경향신문에 항의하던 독자 대부분은 신문 구독자가 아니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장도리’ 소식을 접한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회가 다원화되면서 신문 만화를 그리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사람들의 관심사가 다양해져 관찰이 쉽지 않고 보편적인 현상을 다루는 게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1일 여의도 한 카페에서 박순찬 화백을 만나 앞으로의 계획과 26년간 관찰해온 사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아래는 1문 1답이다.

박순찬 화백 (사진=미디어스)

Q. 퇴사 이유가 궁금하다

연재를 그만둬야겠다고 마음먹은 지 몇 년 됐다. 오래 하기도 했고 다른 작업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시도를 안 해본 건 아니다. 매일 연재하던 리듬을 유지하며 다른 작업을 하기 힘들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언론환경이 많이 변해서 만화를 신문에만 연재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Q. 앞으로의 계획은

책 두 권과 웹툰을 준비 중이다. 카카오페이지에 연재되는 웹툰은 성남문화재단에서 추진하는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로 1년에 33명씩 선정해 3년 동안 100명을 만화로 그리는 작업이다. 독립운동가 한 명당 작가 한 명씩 배정됐는데 저는 최초의 만화가인 ‘이도형 화백’을 의뢰받았다.

누구나 캐리커처를 그릴 수 있는 교본을 만들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드로잉 책은 초심자가 보기에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는 교본이 없어서 대부분 만화가에게 도제식으로 배우는데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새로 만들고 싶다.

Q. 연재 노동자로서 26년을 어떻게 보냈나

3년 차에 22년 차 선배를 보면서 ‘한 회사를 어떻게 오래 다니나’ 궁금했는데 내가 더 오래 다녔다.(웃음) 하루하루 마감하다 보니 26년이 금방 지났다. 특히 마감 인생을 사는 이들은 마감 시간 때문에 시간을 열심히 붙잡다 보니 더 금방 간다. 26년이면 할 만큼 했다. 더 오래 하면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들어 지금쯤 그만두는 게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Q. 만화의 기본정신을 ‘현실풍자’와 ‘도전’이라고 했다

만화는 풍자를 인쇄물로 남기는 최초의 시도였다. 만화는 영화와 달리 많은 자본을 필요로 하지 않기에 작가 개인의 생각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다. 상업영화보다 독립영화가 감독의 생각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다. 또한 도전 가능성이 많은 장르가 만화이기에 이 장점을 이용하는 것이 만화가의 의무였다. 만화의 속성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저절로 풍자와 실험정신이 녹아 들어갈 수밖에 없다.

Q. 장도리 연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편이 있나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문재인 후보 사이에 첨예한 대결이 있었다. 여론은 반반으로 갈렸고 어느 편에 서느냐 외에 다른 목소리는 없었다. 만화가로서 한쪽의 주장을 담기보다 멀리 떨어져서 그림을 그리는 게 작가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진영 외에 다른 측면의 목소리를 담고자 했다. 양 진영에서 각각 자신들로 인해 사회가 발전했다고 주장하는데 정작 이들이 목마를 때 물을 떠주는 이를 88만 원 세대로 표현했다. 양쪽에서 욕을 먹을까 조심스러웠지만 의외로 반응이 좋아 그릴 때 감정과 이후 좋았던 감정이 교차돼 기억에 남는다.

Q. 이슈 선정은 어떻게 하는가

신문 연재만화는 특정 분야의 덕후들을 위한 그림을 그릴 수 없다. 신문 속성 때문에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러다 보니 정치문제를 다루는 게 제일 쉽다. 누구나 대통령과 정치인에 대한 소식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을 소재로 삼지 주제로 다루진 않는다. 정치인들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

정치인은 다른 사람들이 이루어낸 것을 바탕으로 조정하는 역할이지 창조해내는 직군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인을 통해 사회 문제를 얘기하려는 노력을 해왔다. 근본적인 사회 문제를 끄집어내기 위해 남녀노소가 모두 아는 것을 통했다. 예를 들어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당했지만, 한국의 모습이 투영된 인물이다. 대통령을 그린다는 건 그를 통해 투영된 우리 사회 문제들을 보기 위한 것이었다.

Q. 만화를 그리기 어려웠던 때가 있었는지

우리나라는 '다이나믹 코리아'로 사건·사고가 많고 정치적 격변도 많기에 소재는 항상 많았다. 그러나 점점 그리기 까다로워지고 있다. 신문 만화뿐 아니라 문화예술을 하는 이들이 모두 공감할 거다. 사회가 다원화되고 사람들의 관심사가 다양해지다 보니 관찰하는 게 어려워진다. 사회가 단순화된 시절에는 관찰이 쉬웠다. 관심사가 다양해지니 신문 만화처럼 보편적인 현상을 다루려고 하면 어려워진다. 갈수록 특정 분야를 선호하는 층이 만들어지다 보니 보편적인 작품을 그리기 힘들어진다. 보편적인 현상을 조명해온 언론이 어려워지는 것과 같다.

Q. 해학·풍자가 어려워지는 시대다

사회 변화에 발맞춰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옛날 방식으로 풍자해서는 안 된다. 과거처럼 사람들이 공통된 생각을 가지고 특정인을 풍자했을 때 좋아하는 시대가 아니다. 갈수록 어떤 사안에 대해 의견이 다양해지고 목소리는 강해지므로 특정 사안에 대해 공통적인 웃음을 유도하기 어렵다. 다른 방식의 웃음 코드를 고민해야 한다.

Q. '장도리'에는 정치인만큼 언론에 대한 풍자도 들어가 있다. 바른 언론이란

언론사도 하나의 기업이고 제대로 못 하면 망하고 제대로 하면 장사가 잘돼야 한다. 하지만 현재 신문의 경우 시장 논리와 다르게 간다. 사람들이 언론을 불신하는데도 신문사 매출이 늘고 있다. 언론 입장에선 먹고 살만하니 변할 필요가 없다.

대기업들이 언론 변화를 가로막고 있다. 변화하는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이를 악물고 노력해야 하는 데 어느 정도 먹고살 만한 상황에서 바뀌기 쉽지 않다.

Q. SNS 시대에 달라진 점이 있는지

상대 의견을 알기 좋은 시대가 됐다. 과거 신문의 소통방식이 일방적이었다면 이제는 독자 반응을 더욱 쉽게 알게 됐다. 신문도 독자들의 생각을 잘 반영하고 알아차려야 하는데 그게 늦다. 예전에는 신문을 사야 연재 변화를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신문과 상관없이 본다. 사람들이 매체와 상관없이 기사만 보는 것처럼 만화도 마찬가지다.

Q. 의도했던 것과 다른 반응을 들은 적이 있는지

그림에 글이 최소화되기 때문에 그림을 자세히 보는 이들이 있다.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의 손동작 등에 의미를 찾고 항의가 오기도 한다. 그럴 때 신중하게 그려야겠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김정은 위원장의 웃고 있는 표정을 그렸는데 왜 잘생기게 그렸냐는 항의 전화를 받았다. 대사가 최대한 압축돼서 들어가다 보니 단어 선정이나 뉘앙스에 민감하게 된다.

Q. 가장 많은 항의를 받았던 만화는

황우석 박사 사태에 항의 전화를 많이 받았다. 당시 경향신문 내에서도 기사와 칼럼이 각각 다른 입장을 낼 때였다. 당시 줄기세포 기술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애국주의가 팽배했다. 문제를 지적하면 한국 발전을 저지하는 세력이 돼버렸다. 당시 MBC 'PD수첩'이 황우석 박사를 둘러싼 의혹을 집중 조명했고 그쪽으로 만화를 그렸다가 독자투고가 빗발쳤다.

Q. 시간이 지날수록 갈등이 첨예해진다

과도기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계속 같은 상태로 가지 않을 거다. 우린 오랜 세월 일치단결의 문화를 경험해왔다. 이제 나뉘고 더 나뉘어서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껴야 소통해야 된다는 걸 깨닫게 된다. 조금 더 기다리면 서로 의견을 나누게 되는 때가 올 것이다.

26년 동안 만화를 그리며 사회를 지켜본 결과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한다는 걸 느꼈다. 여전히 산업현장에서 노동자들이 희생당하고 인권이 무시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린 속도로 진전하고 있다. 최근 여성 인권이 화두인데 결국 상식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Q. 만화 저널리즘이란 무엇인가

만화라는 장르가 인쇄 매체로 보이기 때문에 생각할 게 많다. 이제 더 종이 신문을 찾지 않으니 신문에 만화를 연재하는 시대는 지나가지 않았나 싶다. 대신 웹을 통해 만화를 본다. 웹툰도 저널로서의 책임이 있다. 기안84가 웹툰에서 부동산 문제를 다뤄 주목받은 적이 있다. 웹툰이 저널로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만화가는 자기 작품이 갖는 파장에 대해 책임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Q. 시사만화가 줄어드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 시사적 이슈를 표현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장도리는 신문에 연재하면서 굉장히 압축적으로 표현했지만 다른 식으로 표현하는 웹툰도 많다. 만화가들은 시사적인 이슈를 다룰 수밖에 없다. 예술문화콘텐츠로 사회문제를 다루는 걸 단속했던 7, 80년대는 신문이란 보호막 아래 신문 만화가 현실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유일한 통로로 인기가 많았다. 이제는 대부분의 드라마와 만화, 콘텐츠들이 현실 문제를 다루고 있다.

Q. 외압을 느꼈던 적이 있나

신문은 기업 광고를 받기 때문에 굳이 뭐라 하지 않아도 그 사정을 알 수밖에 없다. 삼성광고를 받을 때 이재용 부회장을 등장시키는 걸 굉장히 자제했음에도 많이 다뤘다. 광고 쪽에서 문제 삼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2013년 사회면에 있었던 장도리가 오피니언면에서 인물면 최하단으로 옮기게 됐다. 이에 다수의 네티즌은 ‘정권 눈치보기’ 아니냐고 항의했지만, 영문도 모른 채 몇 년간 그 자리에서 연재했다. (▶관련기사 : 경향신문 '장도리', 9월 개편부터 인물면 하단으로)

Q. 장도리를 통해 알리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

거창한 목표가 있었다기보다는 매일 새로운 사건, 정치적인 이슈들을 소재로 그때그때 생각났던 것을 그렸다. 사회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를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우리 사회가 가진 여러 모순점을 건드리고 싶었다.

Q. 퇴사 소식에 많은 독자들이 슬퍼했다

만화가로서 굉장히 고마운 일이다.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 이들도 있는데 그동안 연재를 열심히 봐주셨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다른 형식으로라도 사회 문제를 다루는 만화로 다시 찾아뵈어야겠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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