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노조의 파업 때문에 한 고등학생이 서울대 면접에 늦었고, 이 때문에 대학 진학의 꿈을 접어야 할 위기에 몰렸다”는 <중앙일보>의 2009년 12월4일 보도가 결국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관련 기사는 중앙일보 홈페이지에서 모두 삭제된 상황이다.

▲ 2009년 12월4일 중앙일보 1면 '파업으로 열차 멈춘 그날 어느 고교생 꿈도 멈췄다' 기사
중앙일보는 2009년 12월4일치 1면 <파업으로 열차 멈춘 그날 어느 고교생 꿈도 멈췄다> 톱기사에서 “경기도 시흥시 소개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이희준군이 철도파업으로 대학 진학의 꿈을 접어야할 위기에 몰렸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 군이 서울대 면접을 보기 위해 길을 나서 오전 7시 경 소사역에서 전철을 기다렸으나 철도파업으로 모든 열차가 지연되면서 늦게 서울대에 도착해 면접이 불허됐다는 게 보도의 핵심이었다.

중앙은 이 기사 뿐 아니라 <“파업으로 멈춘 희준이 꿈 철도가 책임져야”> <파업으로 멈춘 ‘서울대 진학’ … “희준이 대학에 보내자” 각계서 성원 이어져> <철도 파업으로 대학 꿈 멈춘 이희준군 구제 방법 없나요> 등 기사를 연달아 쏟아내며 ‘철도노조 파업으로 인한 피해’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중앙일보 보도의 파장은 어마어마했다. 여러 언론이 이를 인용하면서 철도노조의 파업을 문제 삼았고, 인터넷 상에서 노조 파업을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허준영 철도공사 사장 또한 “철도파업으로 멈춘 이희준군의 꿈을 살려주기 위해”라며 이 군에게 6백만원을 전달하기도 했다.

중앙, 반론보도문 싣고 관련 기사 홈페이지에서 스스로 삭제

▲ 중앙일보 2011년 11월26일치 30면
그러나 결국, 해당 보도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중앙일보는 해당 보도가 나간 지 2년만인 지난 26일, 30면 하단에 해당 보도를 반박하는 철도노조 주장이 담긴 반론보도문을 게재했다. 중앙일보는 이와 함께, 관련 기사 4건을 홈페이지에서 스스로 삭제했다.

“전국철도노조는 이희준 군이 소사역에 도착한 7시 20분경까지 열차는 정상적으로 운행되고 있었고, 전국철도노조는 노동관계법에 따라 필수유지업무를 담당할 근로자를 한국철도공사에 통보하고, 철도 운행에 필수적인 업무를 정당하게 유지하면서 쟁의행위를 하였으며, 대체인력 투입과 인력 배치는 한국철도공사의 결정에 의한 것이었으므로, 철도 사고의 발생과 이희준 군이 면접에 늦은 것이 노조의 파업 때문이라고 볼 수 없다는 반론을 제기하여 왔으므로 이를 알려드립니다.”

중앙일보가 반론보도문을 게재하게 된 과정은 복잡하다.

먼저, 철도노조는 2009년 중앙일보에 보도된 기사 내용 가운데 학생이 이동한 시간, 역사 이름, 열차 운행 상황 등에 대한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조사에 들어갔다. 그 결과 보도 내용 가운데 상당수가 사실이 아닌 점을 발견했다.

이에 철도노조는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고, 언론중재위는 2010년 3월5일 “해당 수험생이 서울대 면접에 늦어 불합격한 것과 철도노조 파업사이에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있는지 밝혀진 바 없다”며 중앙일보에 정정 보도 할 것을 직권으로 결정했다.

▲ 철도노조 파업으로 인한 이희준군의 피해 사례를 보도한 중앙일보 기사 목록(윗쪽). 그러나 해당 기사를 클릭하면 "기사가 없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뜬다.
그러나 중앙은 이에 불복했고 법적 소송을 진행했다. 그 결과 2010년 10월, 1심 재판부는 중앙일보에 “정정 보도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중앙은 이후 ‘바로잡습니다’를 통해 일부 보도 내용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철도노조 파업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피해갔다.

철도노조는 이에 대해 “중앙의 보도 의도가 ‘철도파업을 공격하고자 했던 것’으로 이미 2백명 해고, 1만2천명 징계, 100억 손해배상 등 막대한 피해를 입은 입장에서 사과 한마디 없는 어정쩡한 정정보도문을 수용할 수 없다”며 항소했다.

이후 2심 재판부는 양 쪽 당사자가 참여하는 조정 회의를 소집, 사건 발생 2년 만인 지난 8일 반론보도문을 게재하라는 조정안을 양 쪽에 통보했다. 철도노조와 중앙일보 모두 이를 수용했고, 결국 중앙일보 26일치 30면 하단에 반론보도문이 실렸다.

중앙일보 기사에 실린 ‘사실이 아닌 부분’을 바로 잡기 까지 언론중재위와 법원을 거치는 등 약 2년이 걸렸다. 당시 1면 톱기사를 비롯해 연일 관련 기사를 쏟아내며 철도노조의 파업을 맹비난하던 중앙일보. 그러나 2년 만에 관련 기사를 홈페이지에서 내리면서, 자신들이 사실이 아닌 보도, 즉 ‘허위’ 보도를 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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