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방송스태프 노동자들과 언론시민사회단체가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에 ”장시간 노동을 중단하고 근로계약서를 도입하라“고 촉구했다. 드라마제작사협회로 인해 빠르면 내달 현장 적용될 예정이었던 '제작환경 개선 가이드라인' 제정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앞서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이하 드라마제작사협회)는 2019년 4월 드라마제작현장의 표준근로계약서 도입을 위해 만들어진 ‘4자 협의체’에 함께했다. 당시 드라마 제작현장에 관행으로 지적된 턴키계약, 개인도급, 프리랜서 계약행태를 바로잡기 위해 지상파 3사와 드라마제작사협회, 전국언론노동조합, 희망연대노동조합 방송스태프지부가 손을 잡았다.

하지만 최근 4자 협의체가 파행됐다. 방송스태프지부에 따르면 드라마제작사협회는 2019년 논의가 시작된 지 6개월 만에 방송스태프지부가 자신들의 제안을 공개했다는 이유로 4자 협의체를 거부했다. 다음해 언론노조의 중재로 협상이 재개됐지만, 지난 1월 4자 협의체 논의결과에 대한 스태프지부의 게시물을 문제 삼으며 4자 협의체를 무한 연기했다. 또 드라마제작사협회는 지난 17일 장시간 노동 중단을 위한 스태프지부의 기자회견을 허위사실 유포로 문제 삼으며 최종 합의를 거부했다. (▶관련기사 : 달라진 것 없는 드라마 제작현장의 장시간 노동)

18일 서울 상암에 위치한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사옥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사진제공=방송스태프지부)

스태프지부가 18일 기자회견에서 공개한 ‘지상파방송 드라마 제작환경 가이드라인(안)’에 따르면 스태프지부(노조)안과 제작사협회안은 하도급 계약 여부 등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근로계약 체결시 노조 측은 협의체가 마련한 '드라마스태프 표준근로계약서'를 사용하되, 방송사와 제작사는 법인사업자로 등록된 상시 근로자 5인 이상의 기술 전문 업체와는 하도급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제작사협회는 ‘법인사업자 외에 개인사업자로 등록된 업체와 하도급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고 적었다.

스태프지부가 법률 자문을 구한 윤지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제작사 안은 5인 미만 개인사업자와 하도급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해 사실상 하도급계약 체결의 상대방에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도록 했다“며 ”개인사업자와의 하도급 계약 체결 가능성을 열어 둔 것은 드라마스태프의 근로자성을 부정하는 것과 연결돼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시간을 규정하는 데 있어 노조는 ‘1주 근로시간은 52시간까지 할 수 있다. 1일 근로시간은 12시간을 넘지 않되, 스태프대표와 합의해 14시간까지 연장할 수 있다’고 명시한 반면, 협회는 ”1일 근로시간은 1주 52시간 범위 내에서 최대 14시간을 넘지 않도록 한다 (식사, 휴게시간 제외)"고 적었다.

윤 변호사는 “1일 근로시간이 12시간을 넘을 경우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합의가 있어야 하며 제작사안은 스태프대표와 합의하지 않은 경우에도 12시간을 초과하여 근무할 수 있도록 정했다는 점에서 근로기준법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계약 기준을 변경할 경우 노조는 “스태프 대표와 합의해 조정할 수 있으며 스태프 대표는 전체 스태프들과 충분히 협의해야 한다”고 명시했지만 협회는 “스태프 대표와 협의해 조정할 수 있다”고 적었다. 윤 변호사는 “제작사 안대로라면 전체스태프들의 의견을 반영할 기회가 없으며 스태프 대표를 누구로 할지가 중요해지는데 제작사는 스태프 대표 선정기준 삭제를 요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도 하위직급 ▲스태프 처우개선 현장협의체 운영 스태프 대표 선출안 이행점검안 분쟁 상황 발생 시 해결방안 표준인건비체계 도입방안 마련 가이드라인 적용시점 등에서 스태프지부와 제작사협회 입장은 차이를 보였다.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민주노총 서울본부,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 대책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언론개혁시민연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는 4자 협의를 무력화한 드라마제작사협회에 책임을 물었다.

이들은 “드라마제작사협회는 ‘현재 도급계약서상 하루 14시간 노동을 잘 지키고 있다’, ‘스태프 다수가 근로계약서 체결을 원하지 않는다’, ‘정부의 예술인고용보험 적용도 원하지 않는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되풀이하면서 드라마제작현장의 표준근로계약서 도입 합의를 전면 부정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비판했다.

특히 스태프지부는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의 장시간·불법적인 노동 행태에 대해 법적책임을 강력히 물을 것"이라며 "근로계약서 도입과 장시간 노동근절은 법적권리를 이행하는 것으로 지금이라도 방송사와 드라마제작사협회는 제작현장에 근로계약서 도입과 근로기준법 준수, 기본적인 노동기본권을 보장할 것"을 촉구했다. 고용노동부에는 전면적인 근로감독을 통한 불법적 실태를 바로잡을 것을 요구했다. 스태프지부는 20일부터 점심시간 전후로 드라마제작사협회 앞에서 1인 시위 및 피켓팅을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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