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지역방송 활성화 논의가 국가균형발전과 생존을 목표로 공공·민간투자, 규제완화 등으로 흐르는 가운데 지역 자치분권과 공공재로서의 지역방송 의미부터 제대로 되새겨야 한다는 쓴소리가 나온다. '국가'의 균형발전을 위해 지역방송의 역할이 제고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이 고르게 발전할 수 있도록 국가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개념부터 정립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 "지역방송은 국가발전을 위해 있는 게 아니다"

14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한국언론학회 봄철 정기학술대회'에서는 방송통신위원회 후원으로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지역방송의 역할과 활성화 방안' 토론회가 개최됐다.

이 자리에서 토론자로 나선 김희경 성균관대 교수(방통위 지역방송발전위원)는 "반대되는 얘기를 하겠다"면서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지역방송이 무엇을 할 건인가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다들 말씀하시는데, 이 전제 자체가 틀렸다"고 밝혔다.

김희경 교수는 "국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지역이 중요한 것"이라며 "지역자치와 분권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지역방송이 그 안에서 역할을 할 수있도록 기반을 마련해달라는 차원에서 국가균형발전 개념과 지원 논리를 얘기해야 하는 것이다. 지역방송은 국가발전을 위해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희경 성균관대 교수가 14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한국언론학회 봄철 학술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국언론학회 유튜브 방송화면)

김희경 교수는 "지역방송은 지역민을 위해 존재한다. 지역민의 토착적 문화와 그들이 향수하고 있는 사회적 가치들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지역방송이 있는 것"이라며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여기에도 사람이 산다는 걸 중앙에 얘기할 수 있고, 중앙에 있는 사람들이 지역과 나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를 생각할 때 지역방송이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라고 지역성의 의미를 강조했다.

김희경 교수는 정부가 추진하는 국가균형발전, 방통위가 추진하는 매체균형발전이 '지역균형발전'인지 돌이켜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지금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얼마나 기만적인 행태로 운영되고 있는지 보라"고 말했다. 행정부 장관과 수도권 교수 중심으로 구성된 국가균형발전위에 7개 분야 전문위원 중 지역언론 전문가는 전무하고, 3개 실무부서 공무원은 부서당 2~3명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방통위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며 "지역미디어정책과 사무관은 지역방송 일보다 시청자위원회 일을 더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희경 교수는 "방통위는 어떻게 하면 OTT와 지상파를 활성화시킬 것인가에만 관심이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지역방송은 '매체균형발전'이라는 기만적 구호, 허위적 수사 속에 놓여있다"고 지적했다.

김희경 교수는 지역방송이 시청자 선택을 받기 어려운 가치재라는 점을 강조하며 전폭적인 공적지원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지역방송은 OTT 등 사적 미디어처럼 재미있어서 선택하는 소비재가 아닌 공공재·가치재다. 사람들의 선택에 의존해 지역방송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지역방송의 공공재적 특성을 배제시킨다"며 "지역에 있는 작은 이야기들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막대한 공적재원을 투자해야 한다. 생각의 단초를 지역방송의 공공재적 특성이라는 본질에서 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14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한국언론학회 봄철 정기학술대회'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지역방송의 역할과 활성화 방안> 토론회 (한국언론학회 유튜브 방송화면)

이날 첫 발제를 맡은 이진로 영산대 교수는 수도권 집중현상으로 인한 사회국가적 문제를 지역사회 활성화로 해결할 수 있다며 지역방송에 대한 공적지원 확대를 강조했다. 이 교수는 "지역방송이 없다면 지역소멸론이 힘을 얻을 수 있다"면서 "지역균형발전론은 지역의 삶 보장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발전, 수도권의 성장기반을 유지·발전시키는 차원에서도 필수적"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지역방송 생존을 위해 기업의 민간투자도 이뤄져야 한다며 지역방송 구성원들이 돈을 가려받으면 안 된다고 하기도 했다.

두 번째 발제를 맡은 김대경 동아대 교수와 허윤철 부산대 박사는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지역방송 역할 제고 방안으로 '부·울·경 동남권 메가시티' 추진에 맞는 지역방송발전전략, 지역차원의 공영포털 논의, 지역방송 광역화 논의에 대한 정부 지원 등을 제시했다.

토론자인 최세경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역방송 육성의 당위를 인정하더라도 시민 입장에서 지역방송은 이미 많고 그것을 다 지원해야 하느냐는 생각을 할 수 있다"며 "지원도 중요하지만 지속가능한 모델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최세경 연구위원은 지역 민영방송 소유규제 완화와 소유주 투자, M&A 활성화, 광역화 등을 지역방송 생존방법으로 제시했다.

고흥석 한국IPTV방송협회 정책기획센터장은 지역방송 광역화와 예능·교양 프로그램 '지역 특화 콘텐츠 허브'를 구축 등을 언급했다. 고 센터장은 "지역이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는데 제대로 된 유통망을 통해 국민들에게 알려지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며 "예를 들어 광주에 있는 분들도 부산맛집에 대한 궁금증이 있고, 부산에 있는 분들도 광주맛집에 관심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 '지역방송' 확대 아닌 '지역제작' 확대

최선욱 KBS공영미디어연구소 박사는 '지역방송'과 '지역제작'을 달리 봐야한다며 지역에서의 제작 확대를 지역방송 정책의 목표로 삼는 방안을 제시했다.

최 박사는 "방송이라고 하면 키스테이션에서 보내는 방송프그램을 중계하는 것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데 지역제작은 상당히 많은 자원을 소요하게 된다"며 "지역방송을 얘기하면서 지역제작 얘기가 구분되지 못하면 정책적 목표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최선욱 KBS 공영미디어연구소 박사 (한국언론학회 유튜브 방송화면)

최 박사는 "콘텐츠 산업 통계를 보면 국내에 큰 문제가 있는 게 사실이다. 2019년 기준 서울에 전체 사업체의 69%, 종사자의 81%가 서울·수도권에 몰려있고 매출액으로 보면 85%까지 올라갈 것"이라며 "국가균형발전으로 볼 때, 지역 방송사들에게 제작기능에 얼마만큼의 비용을 줄 것인지, 그것이 얼만큼의 효과성을 지니게 될 것인지 근본적인 고민을 갖게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 박사는 영국 사례를 들어 국가 미디어제작 체계의 지역 분산 거점화를 설명했다. 최 박사에 따르면 영국은 맨체스터 샐포드 지역에 BBC, ITV 네트워크, 위성사업자, 스튜디오업체, 포스트 프로덕션(후반작업) 업체, 호텔, 스튜디오 렌탈업체 등이 참여하는 '클러스터'(산업집적단지)를 조성해 미디어 제작체계 분산을 단계적으로 강행했다.

최 박사는 "서울·수도권 미디어산업 집중도를 볼 때 시사점이 크다"며 "그냥 지역방송서비스 확대 문제가 아니라 지역에서의 제작확대를 어떻게 거점화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 논의된다면 균형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는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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